(주의 : 우리나라 맥주가 맛이없는 상식적이고 뻔한 내용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술 좀 안다는 분은 걍 다른글 읽으시면 됩니다.)
우리나라 주세법은 솔직히 맥주에 대해서는 대단히 불리했던게 사실입니다. 예전에는 140 % 인가가 세금이었다고해요. 지금은 70 % 인가, 소주하고 같습니다. 참고로 막걸리는 5 %.
왜 처음부터 맥주의 세금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하면은 우리나라 맥주가 맛이 없었던 이유의 시작은 저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세금이 걍 폭탄이에요. 덕분에 비슷한 시장에서 경쟁해야하는 소주나 막걸리에 비해 매우 불리할 수 밖에 없었죠. 뭐 저런 이유도 있고해서 우리나라의 맥주는 원가를 절감해서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정해진 세금은 어쩔 수가 없으니 원가를 낮춰서 출고했던거죠.
마케팅 비용과 같이 맥주의 품질 외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맥주의 원가를 절감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대충 중요한것만 따지면 아래와 같이 요약됩니다.
1. 맥아의 사용량을 줄이고 옥수수, 또는 전분이나 쌀가루 등으로 술을 빚음.
2. 홉의 사용량을 줄이거나 저렴한 홉을 사용.
3. 하이그래비티 공법을 도입.
1 번의 경우는 모르시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맥주를 만드는데 보리를 덜쓰겠다는 겁니다. 아니 맥주가 보리로 만들지 뭘로 만드냐고 물으실 수도 있는데 맥주가 사실 보리가 좀만 들어가도 됩니다. 밀로 만들어도 되고 옥수수나 쌀을 섞어도 됩니다. 다만 독일의 경우는 16 세기에 '맥주순수령' 을 선포하고 맥아와 물, 홉 이외의 것으로 술을 빚으면 철컹철컹이었다지만 그것도 근래에 와서 철폐되었고 (심지어 20세기 후반까지 유지됨) 하여간 보리가 좀만 들어가도 맥주로 인정됩니다.
사실 맥주에 보리를 덜쓰고 쌀이나 옥수수 등을 넣으면 맛이 dry 해진다고는 합니다. 대체 저 dry 하다는 느낌이 뭔지 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맛이 밋밋해지긴합니다. 이게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먹히는 맛이랩니다. 이해는 안되는데 하여간 저런 맥주가 잘팔리는것도 사실이에요.
그래도 하여간 기왕 마시는거 맥주에 보리가 얼마만큼 들어갔는지 알 수 있으면 그래도 덜 속는 기분일것같은데 일본에서는 아예 보리 쫌만 섞고 맥주라고 판매하는걸 막기 위해 맥주의 제조공법을 이용한 주종을 세세하게 구분합니다.
https://mirror.enha.kr/wiki/%EB%B0%9C%ED%8F%AC%EC%A3%BC요약하면 맥아(보리를 싹틔운것)의 함량이 67% 미만이면 맥주가 아니라 '발포주' 라는 카테고리에 포함이 됩니다. 그쯤되면 아예 맥주도 아니라는거죠.
참고로 우리나라의 맥주들은 일본에서 발포주로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또 덧붙이자면 우리나라는 맥아가 10% 만 들어가도 맥주로 인정됩니다 (다만 그쯤되면 아예 보리맛이 안나는지라 우리나라 맥주제조사들은 적어도 60 % 이상의 맥아함량은 유지 중인듯합니다. 뭐 그래봤자 일본기준으로는 맥주도 아니고 걍 발포주).
2 번의 경우는 좀 애매한데 홉이라는 놈이 최초에는 일종의 방부제 역할을 한 첨가제에요. 성질이 그렇다보니 씁쓸한 맛이 나는데 이게 어떻게 보면 적응하기 쉽지않은 맛이거든요. 그니까 술을 쓰게 만든다는거에요. 하지만 이 홉이라는 놈은 맥주에서 맥아가 주는 풍성한 맛에 독특한 향을 부여하는 향신료이기도 합니다. 맥아의 텁텁한 느낌에 느낌표 하나를 준달까, 맥주의 아이덴티티를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라 할 수 있어요.
근데 우리나라 맥주는 홉에 큰 신경 안씁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는 그렇습니다.
아, 사실은 일년에 한번은 신경씁니다.
맥스가 일년에 한 번 특별한 호프로 한정판을 판매하죠. 2009년 스페셜 호프를 드셔보신 분은 호프 하나가 맥주의 맛 전체를 극적으로 상승시킨 기적을 떠올릴 수 있을겁니다 (다만 그 이후의 스페셜버전은 그닥 스페셜하지않았다는게 함정).
3. 하이그래비티공법은 공법 그 자체는 보통 맥주가 5도 근처에서 형성되는걸 10도 근처로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쓰입니다. 대단한 공법은 아니고 일반적인 맥주는 5도 근처에서 발효를 멈추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맥주를 발효시키는겁니다. 사실 발효주는 그냥 두면 무난하게 13도 근처까지는 발효됩니다. 영양분만 충분하면 효모는 열심히 먹어치워서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를 배설합니다. 이 한계가 13도 근처이고 그 이상이되면 효모는 더 이상 번식하지 못해요. 왜그러냐면 근처에 지가 싼 똥(에탄올)이 잔뜩인데 어떻게 더 번식을 하겠어요? 하여간 하이그래비티공법은 맥주를 10도 근처까지 발효시켜 독한 맛을 뽑는건데 우리나라 맥주는 대부분 저 하이그래비티 공법을 씁니다.
근데 왜 맥주 도수는 5도 근처일까요? 하이그래비티로 하면 독한 맥주가 될텐데요?
뭐 독한 맥주 그냥 마시면 몸상할까봐 8도 근처까지 발효시킨다음 물을 타서 5도로 낮춰서 병입하기 때문이죠.
그니까 맥주에 물을 탄다는겁니다.
뭐 우리나라만 그러는건 아니고 미국맥주도 그렇고 일본맥주도 그렇고 가벼운 맛을 내기위해 저렇게 하이그래비티 이후에 물을 타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근데 우리나라 맥주는 좀 물을 많이 타는것 같긴해요.
이와중에 롯데에서는 '오리지널 그래비티' 라는 공법을 들고나왔습니다.
대단한 공법은 아니고 걍 하이그래비티 안하고 걍 병입했단뜻입니다. 그러니까 물을 안탔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맥주에 물을 안탔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광고가 됩니다.
우리나라 맥주는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1번부터 3번까지 다 씁니다. 아, 클라우드 빼구요. 그동안 진로하이트와 오비맥주가 얼마나 한심하게 맥주를 만들어왔는지 후발주자인 롯데가 정석대로 맥주를 만들었다는 심플한 방법으로 업계 탑 퀄리티의 맥주를 뽑아냈습니다. 솔직히 롯데라는 기업을 상당히 안좋게 봅니다만 클라우드는 도무지 욕을 할 수가 없어요. 기업이 나쁘지 술이 나쁜가요? 만약에 술이 나쁘면, 먹어서 없애버려야죠.
물론 근래들어 진로하이트와 오비맥주에서 고품질의 맥주를 출시하고 있습니다만 가성비로 따지면 수입맥주와 비교조차 가소로울 수준입니다. 맛좋은건 알겠는데 수입맥주가 더 싸고 맛있어요. 예전에 주세가 140 % 수준일때 하던 원가절감을 70 % 일때도 유지하다보니 그런것도 같고 아니면 걍 국내소비자를 봉으로 봐서 그런것도 같고...
기존 맥주 메이커가 국내소비자를 보는 시선은 아래의 링크가 정확하게 평가하지않았을까 싶어요.
http://www.fnnews.com/news/201009011830504611요약하자면 '일본에서는 '발포주' 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데 이것만 봐도 맥아함량이 맥주 품질을 결정하는건 아니다.' 라는 거죠. 물론 맥아함량만이 맥주의 품질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중대한 기준이 되긴 합니다. 아울러 일본에서 발포주가 인기를 끈건 발포주가 진짜 맥주보다 훨 저렴해서 그런거구요.
예전에 읽던 책에 비슷한 늬앙스인것같은 글귀가 있어서 옮겨 적어봅니다.
"줄리오 체사레 크로체의 '베르톨로' 에서는 궁정 의사가 베르톨도라는 농민 환자를 치료하는데, 일부러 농민의 위에는 전혀 맞지않는 귀하고 섬세한 음식을 주는 충격요법을 쓰려고했다. 그 환자는 "재 속에서 익힌 양파와 순무, 콩 한 접시만 가져달라" 고 애걸복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신의 '자질' 에 맞는 음식을 먹었어야 병이 나았을텐데 사람들이 그의 애원을 들어주지않자 그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 죽었다.
-유럽의 음식문화, 맛시모 몬타나리, 새물결. 139 페이지 중 계급별로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이 따로 있다는 중세~르네상스 시대의 인식을 인용한 내용.
첨언 : 우리나라사람들의 취향이 가볍고 목넘김이 좋은 맥주를 선호해서 그런 맥주가 팔린다는 주장도 있지만 막걸리라는 걸출한 민속주가 여전히 절찬리에 판매중인 현실을 어떻게 그렇게 외면하고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갈 따름입니다. 걸죽하고 입자감이 강하기로는 맥주 싸대기를 두어번 왕복할 수준의 술인데 말이죠.
희석식 소주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 :
http://todayhumor.com/?soju_47359청주를 청주라 부를 수 없는 사연 :
http://todayhumor.com/?cook_143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