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얼핏 말한적이 있긴 한데.. 대학시절 라디오에 "꿈과 음악사이에"란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김창완이 DJ를 보았던 기독교 방송국의 라디오 프로그램. 제가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한적이 있지요. 엽서나 읽고 그러면서 말입니다. 그때 그시절, 한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한줄 적어보려 합니다. 청취자중에 초희라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항상 연필로 사연을 쓰고, 한줄 한줄마다 소녀의 감성이 한껏 묻어나는 그런 사연을 보내던 소녀였지요. 아주 자주 자주 사연이 오는 편은 아니었지만, 열흘에 1통 정도는 꼭꼭 오곤 했었지요. 그 아이의 사연이. 자기집 강아지 이야기며, 몸약한 자기를 이쁘게 얄밉게 구박한다는 언니이야기며, 퇴근길에 군밤을 사오신 아빠이야기며... ... 그 아이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곤 했지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느낀것인데, 그 아이의 글을 보고 있노라면 엽서에 적는 20줄 가량의 사연을 몇번 쉬었다, 적었다, 반복한 느낌을 받았드랩니다. 그것을 어떻게 아냐고요? 엽서속에 글들이 진행되면서 하단부로 갈수록 연필심의 굵기가 가늘어지고 글들의 떨림이 많아졌으니까요. 하지만 그뿐이었습니다. 그리 이상한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날 충격적인 편지를 하나 받았습니다. 그 아이의 언니로부터 온 사연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언니가 저희에게 사연을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자기 동생의 사연과는 별도로 몰래 말입니다. 백혈병이라고 하더군요. 초희라는 자기 동생이. 인제 약 2개월 정도밖에 못산다고 하더군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어서 밖에 나가지 못한것은 6개월이 넘었다구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약간의 생기가 돌고, 늦은시간 잠안자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인다구요.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피곤한테 빨리 자라고 라디오를 뺏곤 했다더군요. 그리고 초희의 유일한 친구인 다른 아이로부터 이 프로그램을 듣는다는 말을 들었다고요.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초희도 알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더군요. 밤 11시만 되면 얼마나 라디오를 듣기를 졸랐는지,,, 하지만 혼자서는 거동을 못해, 자기가 꼭꼭 초희를 안고서 라디오 옆에 앉혀 놓았다는군요. 그리고 마냥 좋아하는 자기 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겠지요. 그 아이가 라디오를 들을때면, 온 집안식구들이 자는척을 했답니다. 자기들의 방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자는 척을 했답니다. 하지만 무척이나 막내딸을 사랑했던 그 아버지는, 밤마다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서 엉엉 울었다는군요. 행여, 초희가 눈물 흘리는 아버지를 볼까봐서 말이죠. 그 아이의 아버지가 그려졌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기딸이 두달후면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늦은시간 술에취해 귀가하며 군밤을 사들고 오는 그 남자의 마음은 도대체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 ...... 놀랬습니다. 죽음을 앞둔 소녀의 글이 어찌 그리 곱고 아릅답던지. 그 사연을 읽고, 초희의 엽서를 보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김창완도, 김삼일 PD도, 저도 엉엉 울었답니다. 그 프로그램은 생방송이었는데, 잠시 짬을 내어 밖으로 나와 그 편지를 같이 읽은 김창완 아저씨가 얼마나 울던지.. 제법 긴 시간동안을 말을 못이어 음악으로만 프로가 진행되었답니다. 김창완 아저씨,, 그후.. 일부러 내색하지 않더군요. 평소와 같이 음악선곡 해주고, 사연을 읽어주고 그랬습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장난스럽게 사연속의 초희를 골리곤 하더군요. 하지만 사연을 읽으면서 안경너머로 두 눈을 껌뻑거리며 울음을 참는 모습은, 방송국의 ON AIR 빨간불 너머 유리창으로 너무나 확연합디다. 그렇게 1달이 지나고 몇일이 지났습니다. 초희의 사연이 안온지 20일이 지났습니다. 불안하고 무섭더군요. 우리 모두는, 나를 포함한 모든 방송국의 사람과 청취자들 모두는, 어느날 불쑥 올 그 아이의 부고장이 두려웠습니다. 한장의 관제엽서.. 그리 크지 않은 면적이었지만, 그 엽서를 힘들게 힘들게 채우던 그아이의 사연이 안오던 날부터, 우리모두는 그 아이의 부고장을 머리속으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차마 내색은 못하였지만 말입니다. 어느날 낮설고 굵은 글씨의 사연이 왔습니다. 초희의 아버지로부터 온 사연이었는데, 그 동안 고마웠다는 글과 함께, 하늘나라로 간 자기딸의 이야기를 한줄 적었더군요. 그날 "꿈과 음악사이에"는 눈물의 방송이었습니다. ...... ...... 김창완씨는 민초희의 사연이 담긴 엽서를 모아서 책으로 내었습니다. 그 책속 몇몇 구절을 보면, 김.기.경.아저씨라는 말도 간혹 나오곤 해서.. 가느다란, 약한 연필의 글씨체가 보는것만으로 아픔을 자아내게 하는 그 사연의 글들.. 25살의 청년은 그 글들을 보며 또한번 울음을 흘렸습니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모든걸 사랑한 그 꼬마아가씨는, 한점 부끄러움 없이 살다갔는지 모릅니다. 거짓과 위선속에서 조그만 일도 짜증내며 살아가는 그때의 나름대로 순박했던 청년은 아직도 살아있고 말입니다. 나름대로 순박했던 청년... 나름대로 순박했던 청년... 다뎀벼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