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가 죽었다
주위의 몇몇 또는 대다수의 여성들은 원한다.
진실과 진짜가 아니라 거짓과 가짜를, 오로지 마음의 평안과 상황의 원만함을 위해서 억지를 부린다. 편을 나누고 논리를 개잡소리로 듣는다.
주위의 몇몇 또는 대다수의 남성들은 원한다.
이런 여성들과의 육체 또는 연애관계를,
이딴 연애는 매춘과 다름없다.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진실을 덮고 편을 들며 서로 이용하고 당하며 거기서 서로 얻을 것을 얻는다. 위안 쾌락
그런데 너네들은 매춘을 터부시 한다. 적어도 존재는 부정하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난 매춘을 옹호하고 이런 남녀의 연애관계도 부정하지 않는다.
배려라는 단어에 대해서 논해보고 싶다.
무엇이 배려인가?
말기암에 걸려 살 확률이 없는 사람에게 '당신은 건강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하는 의사의 행위가 배려인가?
동심을 가진 아이에게 '산타클로스는 없어'라고 말하지 않는 행위가 배려인가?
얼굴이 못생긴 사람에게 '넌 못생기지 않았어'라고 말하는게 배려인가?
이딴 배려는 다 버려야 한다.
거짓이 포함된 배려는 안하는만 못하다.
거짓으로 위로한다며 입을 놀리지 말라, 진실을 말할 수 없다면 입을 다물어라
그딴 거짓으로 범벅댄 위로와 배려가 얼마나 사람을 뿌리부터 썩게 만드는지 아는가. 이는 쾌락에서 파멸은 걷는 마약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거짓으로 포장된 위안과 배려를 좋아한다. 마약이니까
원래 주사기는 아프고 보약은 쓰다
최대한 안아프고 덜 쓰게 해줄 수는 있다.
그래도 그걸 삼키는건 그대 목이다.
받아들이건 그대 몫이다.
숲속을 나가 도시에서 똥을 싸던 당나귀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