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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말의 본질
게시물ID : phil_111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감의향연
추천 : 0
조회수 : 75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4/09 21:33:25



<라캉, 지젝에 관련한 상징에 대한 글을 읽고>

 


현실이 상징화된 개념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현실은 ‘감지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그 존재를 감지하여 상징화 체계에 대입한다. 그 대상을 주변과 구분하고 분리한다.

 


핸드폰을 핸드폰이라 부르는 것, 다시 말해, 특정한 모양새와 크기, 용도 등을 종합하여 규정된 핸드폰이라는 개념은 핸드폰이라고 부르는 대상에 대한 감각적 지식의 상징 그 자체이다. 따라서 이 작업은 일종의 구분 작업이다. 책상 위에 핸드폰이 있다면 우리는 책상 위에 핸드폰이 있다고 표현할 수 있고(인식할 수 있고) 핸드폰이 책상 밑으로 내려지게 되면 우리는 핸드폰이 밑으로 내려갔다고 표현할 수 있다(인식할 수 있다). 고로 우리는 핸드폰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다른 존재와 핸드폰을 구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안다’는 말은 곧 ‘구분이 가능하며 구분되었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이 상징이란 것은 어떤 구분된 개념(현실이든, 추상이든)을 지칭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지만 실제로는 각자마다 의미가 상대적이다. 핸드폰이 보편적으로 상용되는 국가에서는 핸드폰이라는 상징은 상당한 공통성을 가지고 있겠지만, 원시적 생활을 하는 집단에 핸드폰 없이 가서 핸드폰이라는 것을 설명해줘 봤자 그들은 실제 핸드폰을 봐도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핸드폰이라는 것을 모른다. 설령 핸드폰을 보여주고 만져보게 한다 해도 그들이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핸드폰이라고 말할 때 떠올리는 것과는 현저히 다르다. 이를 개개인으로 따져본다면, 개개인마다 상징화된 개념이 가지는 의미의 범위, 범주는 제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냐에 따라서도 상징은 상대적으로 적용된다. 위의 원시집단의 예를 계속해보자면, 이 원시집단 중 누군가가 ‘이것이 저자들이 사용하는 핸드폰이라는 것이란다!’ 하며 통상적인 핸드폰 크기만한 돌덩이를 손에 쥐어 보였다고 하자. 처음에는 장난이었지만 이것이 점점 퍼지고 퍼져 결국 돌덩이는 핸드폰이라는 상징화된 개념을 가지게 된다. 이는 상징화된 개념이 현실에 맞춰지는 것이 아닌 우리의 의식 속에서 부유하는, 변질적이고 상대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핸드폰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핸드폰이 세상 어딘가에 위치한 좌표값을 모른다. 즉, 공간상에서 구분할 수 없다. 또, 핸드폰이 용암에 녹아버렸을 때, 우리는 핸드폰을 구성하던 성분을 더 이상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상징하는 개념의 본질은 우리가 감지하는 현실을 주변과 ‘구분’한다는 의미이며, 구분이 불가능하면 상징화될 수 없거나 상징화되었던 그 개념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만 만들어지는 성질을 가진 특정한 것을 지칭할 수밖에 없게 된다. 외부로부터 감각적으로 구분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핸드폰이라고 부르는 것은 주위환경과 구분된 것이지, 정말로 상징 자체가 현실을 나타낸 것이 아니다. 이에 따르면, 핸드폰은 관념상으로 핸드폰이지,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기준을 떠나 실제적으로는 핸드폰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분 가능한 ‘존재’다. 감지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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