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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가 침공했다 13화 (외계공포소설)
게시물ID : panic_988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폭풍처럼쓰자
추천 : 6
조회수 : 638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8/07/10 22: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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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어머니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주저앉으며 손을 뒤로 뻗어 바닥을 반사적으로 짚었다. 손에 만져지는 감촉이 축축한 수건과 옷가지 같았다.

어머니의 시야에 점점 더 자세하게 여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입가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려했다. 어머니는 반사적으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잠시 주저앉은 채로 멍하니 옆집여자의 시체를 보고 있다가 얼른 바깥으로 나왔다.

어머니는 아파트 복도 난간에 손을 짚고 뛰고 있는 가슴을 진정 시켰다. 그러다가 자기 손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희미한 달빛이 비쳐 손에 뭔가 묻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붉은 액체였다. 피 같았다. 이 피가 언제 묻은 거지? 라는 질문과 동시에 어머니는 아까 주저앉으며 손을 짚을 때 옷가지 같은 것을 짚었던 것이 생각났다.

 

어머니는 조심스레 옆집의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달빛이 현관으로 좀 비치게 했다. 현관 한켠에 있는 종이박스 안에 재활용쓰레기가 담겨 있었고 어머니가 만진 것으로 보이는 옷가지들도 그곳에 담겨 쌓여 있었다. 정확히는 옷가지와 수건들이었다. 모두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옷은 아이들 것이었다. 그 옷을 보자마자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저 옷들은 아이들이 감염되어서 출혈을 하는 바람에 피가 묻은 옷이고 애엄마가 피가 묻은 옷을 벗겨 갈아입히고 여기다가 모아놓은 것이다. 애엄마가 저렇게 스스로 목을 맸다는 건 아이들이 죽어서다.

그러고 보니 거실 쪽에 두 아이가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두 아이 다 죽은 것처럼 보였다. 그냥 잠든 아이들 바로 위에서 목을 매고 죽을 어머니는 없을 테니까.

 

어머니는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걸 느꼈다. 전염병에 옮을세라 얼른 그 집을 나와 피 묻은 장갑 한 겹을 조심스레 벗었다.

괜찮아, 장갑을 꼈으니까 괜찮아. 스스로를 안심시키는데 그 순간 아까 손으로 입을 막았던 게 생각났다. 소름이 돋았다.

괜찮아, 마스크를 끼고 있었잖아. 마스크로 덮은 면적 외의 얼굴에 직접적으로 피가 묻진 않았는지 어머니는 확인하고 싶었지만 거울이 없었다. 어머니는 핸드폰을 꺼내 플래시를 켜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 흰 마스크에 새빨간 피가 분명히 묻어 있었고 마스크가 덮지 못한 볼과 광대뼈 피부 위에도 피가 묻어있었다.

 

어머니는 다시 다리에 힘이 풀리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감염되었어... 감염되었을 거야. 어떡하지? 이제 어떡하지?’

현기증이 몰려왔고 눈앞이 아득해졌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몇 분이 지나 어머니는 간신히 이성을 되찾았다. 그리고 일단 복도를 빠져나와 아파트 중앙계단을 내려갔다.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바이러스가 묻었을 자신이 들어가 현민이 생활할 곳을 오염시킬 순 없었다. 어머니는 아파트 중앙계단을 터덜터덜 걸어 내려가다가 중간에 아우디 차주인과 투블럭 일당 한 명의 시체를 발견하고 잠깐 깜짝 놀랐다. 방금 전의 충격들이 너무 컸고 자신이 이제 곧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시체들이 그리 놀랍지 않았다.

 

아파트 건물에서 나와 어머니는 그 앞 벤치에 앉아서 달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멍한 채로 새벽까지 해가 뜨는 것을 기다렸다. 해가 뜰 때 어머니의 눈에서 피가 흘렀다. 혹시 감염되지 않았을 지도 몰라 하고 속으로 가지고 있던 일말의 희망마저 꺾이자 어머니는 오히려 담담해짐을 느꼈다. 이제 할 일이 명확해졌다. 아들한테 바이러스를 옮길 순 없었다. 아들을 떠나야 한다.

 

어머니는 벤치에 앉아 가만히 피를 흘렸다. 피가 멈추고 나자 어머니는 다시 아파트 안으로 들어와 중앙계단을 올라왔다. 그리고 옆집여자의 집 앞으로 와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시 여자의 시체가 보였다. 어머니는 시체를 보며 미안해요, 라고 속으로 말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들 방인 듯 장난감들이 많이 널려 있었다. 어머니는 한겹 남은 비닐장갑을 마저 벗고 깨끗한 손으로 종이와 펜을 찾았다. 어머니는 종이 한 장을 찾아 그 위에 글씨를 써내려갔다. 아들에게 쓰는 편지였다.

 

편지를 다 쓰고 난 다음 어머니는 편지를 옆집여자의 현관문 바깥에 붙였다. 그리고 거실로 돌아왔다. 해가 떠서 아이들의 모습이 더 잘 보였다. 아이들 얼굴의 눈 코 입가에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오래 굶었는지 통통하게 귀엽던 볼이 홀쭉했다. 병에 걸려서 소화를 못 시켜 여윈 건지 원래 여윈 상태에서 병에 걸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거실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의자를 옆집여자의 옆에 놓고 의자에 올라갔다. 그리고 옆집여자의 목을 매달고 있는 줄을 가위로 끊었다. 옆집여자의 몸이 쿵 바닥에 떨어졌다. 어머니는 그녀의 목에 묶인 줄을 풀어 낸 다음 아이들의 옆에 뉘어주었다. 옆집여자를 가운데 눕히고 아이들을 엄마 양쪽에서 안기는 모양으로. 그리고 한 이불을 덮어 주었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어머니는 집을 나왔다. 아파트 복도에 서서 자신의 집 현관을 바라봤다. 집안에선 현민이 아직 자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들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대신 어머니는 현관문을 현민이라고 생각하듯이 하염없이 쳐다본 뒤 무거운 발걸음을 떼고 중앙계단으로 사라졌다.

 

 

현민은 잠에서 깼다. 외계생명체 침공 이후 항상 깰 때마다 느꼈지만 기분이 엿 같았다. 절망스런 현실, 목표 없는 하루, 마음 졸이는 시간을 또 보내야한다고 생각하니 일어나기가 싫었다.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현민은 방문을 열고 나왔다. 거실을 가득 채운 정적이 왠지 평소와 다르다고 느꼈다. 평소보다 기분이 더 더러웠다. 왜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며 현민은 거실로 나와 물을 조금 마셨다. 물을 마시고 베란다 창틀에 항균 스프레이를 뿌렸다. 바이러스 창궐이후 현민의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현관문 쪽으로도 가서 스프레이를 뿌린 다음 안방으로 가 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없었다. 어디 갔나? 어리둥절해진 현민은 안방을 나와 집 안 이곳저곳을 확인했다.

“엄마!”

베란다도 다시 나가보고 화장실도 확인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무 데도 없었다. 현관에 어머니의 신발도 없었다. 설마 옆집에 식량을 주러 간 건가? 이런 아침에? 만약에 식량을 주러 나간 거라면 어머니가 바보가 아닌 이상 아침에 갈게 아니라 자신이 잘 때 갈 터였다. 그럼 어머니가 밤에 나갔다가 뭔 일이 생긴 건가?

 

현민은 얼른 방역마스크와 고글을 쓰고 바람막이 후드자켓을 입고 얼굴에는 후드를 덮어썼다. 그리고 집밖으로 나갔다. 현민은 바로 옆집여자의 현관문으로 향했는데 현관문에 뭔가 붙어 있었다. 글씨가 적힌 종이였다. 현민은 불안한 예감으로 글씨를 읽어나갔다.

 

현민아,

이 종이 만지지 말고 멀리서 봐. 만지면 감염될지도 몰라.

미안해, 엄마가 네 말 안 듣다가 이 집에서 감염되었어. 여기 아이들이 감염되어 죽었거든. 새댁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미안한데 엄마는 먼저 갈게. 살 가망도 없는데 같이 있다간 너한테 병 옮기게 될 거야.

네가 엄마 찾아다니다가 바이러스 감염될까봐 엄마는 너 모르는 곳으로 가.

혹시 엄마 시체 찾겠다고 돌아다니지 마. 너한테 옮기지 않겠다고 네 얼굴도 못 보고 떠나왔는데 너 밖에 돌아다니다가 바이러스 옮으면 엄마는 그건 상상도 하기 싫어. 절대 엄마 찾지 마.

엄마 여기 없으니까 이 안으로 절대 들어오지 말고. 알았지? 헛수고만 하고 괜히 병만 옮을 거야.

엄마가 너한테 너무 못해줘서 미안해. 고생한 우리 아들 이제 인생 피나 했는데 세상이 이렇게 되어버려서 엄마는 너무 속상하다.

엄마 이렇게 되었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고 그래도 너는 꼭 살아.

사랑해, 아들.

 

어머니의 글씨가 맞았다. 어머니의 글씨체는 익숙했다. 나이에 안 맞게 또박또박 초등학생 같이 쓴 글씨체. 국 데워먹으라고 냄비뚜껑 위에 붙은 포스트잇 위에 자주 쓰여 있던 글씨. 평소에는 따뜻한 내용을 전달하는 글씨였다. 그러나 그 또박또박 쓴 글씨들이 모여 지금은 이렇게 끔찍한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현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문구는 언제 쓴 걸까? 엄마는 아직 근처에 있지 않을까? 현민은 그 생각에 빠르게 아파트 중앙계단을 내려갔다. 아파트 건물 입구로 나와 현민은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현민은 어머니를 크게 소리쳐 불렀다.

“엄마!”

아무 대답도 없었다. 현민은 평소 어머니가 잘 가는 뒷산의 산책로 방향으로 무작정 뛰었다.

“엄마! 엄마!”

뛰면서 엄마를 계속 불렀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다. 현민은 다른 쪽도 가봤지만 그곳에서도 소득은 없었다.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녔지만 아무도 없었다.

현민은 차를 타고 더 멀리 가보려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자신의 차의 주유구가 이미 열려있었고 기름이 하나도 없었다. 지난 번 그 오토바이를 탄 양아치 놈들 짓일지도 몰랐다. 현민은 주먹으로 차유리창을 세차게 쳤다.

“왜 가!!! 왜! 죽더라도 내 앞에서 죽지!”

 

어머니는 학력에 비해 머리가 좋았다. 배운 기술이 없어서 크게 성공하지 못했을 뿐 배움이 뒷받침 되었다면 분명 다른 인생을 살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생각했다면 현민이 자신을 찾게 놔둘 리가 없었을 것이다. 자기 시신을 발견하고 이성을 잃은 아들이 감염된 자신의 몸을 껴안고 오열할 상황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아직 자신에게 돌려받을 것이 많았다. 그러나 현민은 어머니를 이제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신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그 무거운 사실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 무게감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정신이 아득해진 현민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현민은 바닥에 주저앉아 미친 사람처럼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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