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논술 방과후학교를 하는 애들에게 듣기를, 논술쌤께서 애들 모두에게 '금요일엔 돌아오렴' 이라는 책을 사주셨다고 합니다.
휴지를 읽다 다 써버렸다, 눈물이 끊이지 않는다는 말이 들려서, 빌리기에는 사서보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점에서 책을 사왔습니다.
하교 후. 느긋이 누워 책을 읽었습니다. 목차를 읽습니다. 목차만 읽어도 눈물이 납니다. 내새끼 읽은 부모들의 한맺힌 설움이 목차에서부터 절절히 느껴졌습니다.
결국 책을 전부 읽지 못하고 덮었습니다. 평소에 두꺼운 책도 1시간에서 2시간이면 읽지만, 도저히 한장 한장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내 자식이 떠나갔는데, 어찌 담담할 수 있습니까. 왜 담담해야 합니까. 물에서 뭍으로 나온 내 자식, 마지막 모습을 보아도 보지않아도 그건 그거대로 한이라 합니다. 내새끼 죽었는데 나는 살아있는것이 원망스럽다 합니다. 죽은 아이의 형제 자매가 남아있는데도 보이질 않더랍니다. 금지옥엽 고이 기른 아들딸 차마 죽었다는걸 인정키 싫어 몸으로는 아니라 부정해도 마음으로는 알고있다는 것이 더욱 괴롭다 합니다.
그들은 저와 같은 나이였고, 사는곳도 다르고 누군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심지어 1년이 지난 아직도 그 차가운 바다 속에 노란 꽃이 되어 묻혀있습니다.
학교에서 최근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학생이 늘어났습니다. 1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그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진상을 알지못해 비난만 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적어도 우리만이라도 그들의 무고한 죽음을 기억해주어야 합니다. 죽음이 죽음 그 자체로만 인정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