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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여자 그냥 살아온 시시한 이야기
게시물ID : gomin_9890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aWJpa
추천 : 11
조회수 : 445회
댓글수 : 71개
등록시간 : 2014/02/02 01:47:57
어릴때 난 내가 천잰줄알았다. 뭐든지 노력하지 않아도 알수있고, 할수있었다.
공부라곤 전혀 하지도 않았지만 성적은 그럭저럭 상위권이었고, 운동도 노력하지 않아도 그럭저럭잘했고,
얼굴도 그럭저럭 예뻤고, 집안도 그럭저럭 괜찮았고, 뭐든지 그럭저럭, 중상~상하 정도의 수준을 유지했다.
뭐든지 잘하는 탓인지 난 노력이란것도 할 생각이 없었고, 무엇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런내가 빠져든 것이 딱 하나 있었다. 그림이었다. 초등학교 아나바다 시장에서 우연히 "만화책" 이라는 물건을 
본 후, 난 그림그리는것에 열중했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행복했고 시간이 가는줄도 몰랐다.
보는것보다 그리는 것이 좋았다. 자연히 나는 더 나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미술학원에 보내달라고 엄마를 졸랐다.
하지만 부모님은 맹렬히 반대했다. 난 상당히 늦둥이로, 우리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생일 당시에도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고지식한 사람들이다. 예술은 배고픈거고, 빈티나는거고, 난잡한거고... 학원다니면서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다닐 수 있으니 안된다는것이었다.
내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던 부모님이 그때만큼은 완강했다.
아이에게 부모님은 하나님이고, 법이다. 난 울면서 포기했다. 중학생때도 애니메이션 관련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를 소망했지만.
씨알도 안먹힐 소리였다. 울고 떼써봐도 소용없었다.
난 그즈음부터 묘한 반항심에 물들었다. 내가 하고싶은 단 한가지를 반대하는 부모님이 미웠고,
내가 막나가는 모습을 보여서 상처입히고 싶어지기까지했다.
그때부터 상위권을 유지하던 성적을 곤두박질 쳤고, 난 학교에선 하루종일 자고, 집에선 방문을 걸어잠그고 밤새 그림만그렸다.
뭐, 난 소심한 인간이라 막나가는 모습이라고 해봤자 겨우 그정도였다.

난 평범한 인문계 여고에 진학했고, 아주 열렬한 사랑에 빠졌다.
상대방은 같은 중학교에서 진학해온 예쁜 여학생이었다... 그전부터 동성애에 거부감이 없긴했지만,
내가 바이라는 사실을 깨닫는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가만히 되돌아보니, 여자아이의 손을 잡는것만으로 두근거리거나,
반에서 제일 예쁜 여자애가 앉았던 자리에 몰래 가서 앉아보거나 하는 것이 기분좋았다거나... 그랬더랬다.
음, 과연 납득이 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사랑에 빠진 여학생도 날 좋아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바이란것을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것을 입밖으로 내어 이 여자아이와의 사이를 
공론화해도 좋은것이가, 인정해도 좋은것인가, 물론 내 간쓸개를 다빼주고싶을정도로 사랑하고있지만,
우리의 미래가 이대로괜찮은것인가 등의 고민에 빠져 이도저도 아닌 태도를 취했다.
또한, 그애에 대한 나의 과도한 집착이 너무 아프고 죄스러웠다.
그애를 밀어낼수도, 가까이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이년동안의 내 순정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고,
후에 크게 싸움이 번져 그애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리게됐다. 난 의외로 순정파인모양으로,
그렇게 그애에게서 지독한 말을 듣고, 눈물에 눈가가 짓무른상태로 등을 돌리면서도 그애를 사랑하고있었다.
그렇게 난 고3 말기를 맞았다.

적당한 대학에 붙었다. 뭐, 지잡대의 적당한 학과에 붙었다.
그리고 새해가 밝고 열흘 지난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누구보다 오래살것처럼 구시더니, 못난 자식 이렇게 버려두고 돌아가셨다.
자살을 시도했다. 너무 가슴이 아팠다... 단 한번도 예쁜 자식이었던 적 없는 것 같아서. 너무 아파서...
내 목을 조르고 손목에 칼을 들이댔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내가 가면 우리 엄마는 어떡하지..?
엄마도 날 따라오려할텐데... 엄마가 날 따라오면 우리 오빤 어쩌지..? 혼자남겨질텐데.
그 생각으로 지옥같은 대학생활을 버텼다.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수업말고는 밖에 다니질않았다.
대신 대학에서 절친한 친구를 만나서 많이 도움을 받았다. 친구와 있을때만큼은 우울증을 잊을 수 있었다.
거짓이라도 웃을 수 있었다. 비록 그 후, 혼자남겨졌을때 더큰 어둠이 날 집어삼킨다는것을 알면서도.

그즈음에 고양이를 분양받았다. 이유는 딱히.. 귀여워서였다. 반쯤 충동이었으니까.
금새 사랑하게 되었다. 집에가면 녀석이 반겨준다. 혼자 마음속의 어둠에 울부짖으며 내 목줄기를 손톱으로 뜯어내고있을때도,
녀석은 불쑥 내 시야에 나타났다. 하얀털이 보송보송 사랑스러워서 가만히 둘 수가 없는것이다.
파란 보석같은 눈빛이 날 쳐다보면 그거야 말로 황홀경이다.
자해하는 나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고있어서.. 어라 내가 지금 무슨 바보같은짓을하는거지? 어머 나 왜이렇게 오버하니 ㅋ
하면서 그만둘 수 있게 해줬다. 내고민이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만들어줬다.
게다가 이녀석, 나처럼 상처가있는 녀석이라 더욱 가만히둘수가 없었다.
이녀석은 겨우 10개월에 주인이 셀수없이 바뀌었다. 이유는, 고양이주제에 배변훈련이 안되기때문이다.
이불이고 물건이고 닥치는대로 싸대는통에 난 한겨울에 싸늘한 원룸방에서 가디건만 입고 덜덜 떨면서 잠든적도 있다.
화장실도 바꿔보고,모래도 바꿔보고, 여러가지로 시도했다. 어쩔땐 하루에도 수북하게 쏟아져나오는빨래,
집에서 진동하는 오줌똥냄새, 눈뜨면 발치의 뜨끈뜨근한 물체.
지쳐서 문열어놓고 "너 이따위로 할거면 나가!" 하고 소리지른적도 몇번인가. 울면서 때려놓고...
무서워서 벌벌떨면서도 먼저 용서를구하듯 다가와 내 발을 핥아주는 아이의 너그러운 관용에 감동받고,
내자신이 한심하고 미안해서 얼마나 껴안고 용서를 빌었던가.
여튼 녀석의 뒷꽁무니를 바쁘게 따라다니다보니 우울증은 어느샌가 증발해버렸다.
난 이 작은 똥싸개년에게 구원받았다.
그리고 나역시 이 똥싸개를 구원했다. 같이산지 일년반만에 녀석의 배변훈련에 성공했고, 녀석의 마지막 주인이 됐다.
이 똥싸개년은 지금도 내 발치에서 자고있다.

뭐, 그러고나서는 대학생활은 무난했다.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전공과목 성적은 거진 A+이었고,
뭐어... 교양이 엉망이었지만, 전공성적으로 굴곡을 메꾼셈이다.
여튼 적당한 성적을 받아 적당히 졸업해서, 적당히 회사에 들어갔다.

적당히 들어간 회사에서 나는 두번째 열렬한 사랑에 빠졌다.
근데 참... 이거, 안될년은 어디까지나 안되는것인지.
상대는 유부남은 아니지만, 중학생 애가 딸린 곧 40을 바라보는 남자였다.
아 젠장, 서른초반인줄알았는데... 뭐, 거기까진 내가 극복할 수 있었다. 난 순정파니까
사랑만으로 모든걸 극복할 수 있다. 나의 사랑에대한 인내심은 나조차도 놀랄만큼이니까.
나랑 몇살 차이도 안나는 중학생 딸? 내가 키워줄수있다. 좋은 엄마가 되어줄수도 있다.
그리고... 역시 행운인지 불행인지, 남자역시 날 사랑했다. 울며고백하는통에 이쪽까지 눈물이났다.
난이렇게 해피엔드인줄알았는데, 남자의 고백의 끝은, "만나지 않는것이 널위한일"이라는 말이었다.
난 극복할수있는데, 남자는 아니었나보다.
더 좋은남자 만날수있는데, 넌 아직 어리고, 예쁘고, 매력적이고... 더 좋은남자 만날 수 있는데...
왜하필 나같은 남잘 좋아했니, 너 우리나이차이가 보통인줄 아니? 지금은 좋아서 죽고 못살아도,
조금만 지나봐라, 너 서른이면 난 마흔중반이다. 우리 사이 오래못갈거다.
너도 조만간에 현실을 깨달을거다. 난 그런 커플 많이 봐왔다....
지멋대로.. 그런 쓰레기같은말을 늘어놓으면서 날 밀어냈다.

이젠 어떻게 해야할지모르겠다. 내 꿈도 실패했고, 내 사랑도 실패했다. 아버지 돌아가시는것과 동시에 집도 망했다.
사실 지금 집에 생활비대는것도 나다.
취직한지 이년됐는데 아직 오백도 못모았다.ㅋㅋ
빚갚는데 다써서 ㅋㅋㅋ
아... 사실 지금 되게 죽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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