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게시판이었어야 하는데...그렇죠? 임시로 만들어놓고 아이들 돌아올때까지, 다 잘 마무리 돼서, 해결 해서...
그래서 다시는 이야기 안 나오고...그때 사고 나서 무서웠는데 지금 돌아보니까 그것도 추억이네, 야 우리 수학여행 진짜 스펙타클했다 그치?
그렇게 끝났어야 할 일이 사람 눈에서 피눈물을 뽑고 곳곳에서 노란 리본이 춤을 추게 만드네요.
4월 들어서는 검은 옷에 리본만 달고 다녔습니다. 외국에 있어서 리본은 혼자 만들었어요.
벌써 그 저주받을 날이 1년이 다 되어간다니, 그랬는데도 결국 바뀐 건 없다니....정말 미쳐버릴 것 같네요.
세월호라는 명칭도 그때는 몰랐고, 그냥 배 사고가 났다...고 들은 게 학교 기말 기간이었습니다.
대학 들어가서 처음 맞는 기말이라 정신도 없었고, 막 투어가 끝났던지라 따라잡느라 눈코뜰새없이 바빴죠.
전원 구조 됐다길래 안심하고...그랬었는데....
전 희생자들과 아무 연고가 없어요. 건너건너 아는 사람도 없고 그냥 아는 사람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더라고요. 저는 진짜....살면서 저보다 어린 생명이 그렇게 많이, 허망하게, 어처구니 없이 스러지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수학여행이었잖아요. 재밌게 놀다 왔어야 하는 거잖아요. 제가 투어 막 다녀와서 엄마한테 자랑도 하고 투정도 부리고 했듯이
그 아이들도 그렇게 했어야 했다고요. 저는 그 사실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데 사람들은 오히려 저한테 묻더라고요. 아는 사람이라도 있었냐고.
이보세요. 사람이 죽었어요.
참 더러운 건, 뉴질랜드, 일본 지진 났을 때는 모금운동하러 다니고 했던 주변 한인들이 세월호에는 다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는 거예요.
우리 엄마도 그랬어요. 왜 그렇게 유난을 떠냐고. 영사관에 간소하게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놨다고 해서 거기 가서 추모하고 왔을 때도...
오히려 저한테 괜찮냐고 물어봐준 건 이곳 교수님들이었고 이곳 애들이었죠. 한국 사람들 사이에선 입도 벙긋 못했어요.
1주년이라니 허허 1주년이라니..........저는 아직도 그 순간, 그 때에 머물러 있는 것 같네요.
잊지 말자, 잊지 말자 하는데...잊을래야 잊을 수야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