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관저에 드디어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 가을은 초록에서 노랑으로 빨강으로 갈아입는 계절이다. 저 푸르른 녹음이 한창인 5월에 청와대 관저에 입성한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이번 단풍이 남다른 단풍이다. 벌써 9년 전에 봤던 그 단풍을 9년 후에 또 다시 볼 수 있게 돼서 가슴은 뛰었다.
관저는 그렇게 단풍으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오는 여유였다. 그동안 여러가지 업무로 상당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창문을 쳐다볼 여유조차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창문을 통해 단풍을 느끼겠노라 마음 먹었고 그리고 단풍을 쳐다봤다.
똑똑똑
단풍구경의 단꿈을 깬 것은 노크소리였다. 시계를 쳐다봤다. 불과 몇 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참으로 오래 느껴진 그런 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으로 무아지경에 이르면서 단풍구경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들어오세요"
임종석 비서실장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단번에 무슨 일 때문에 임종석 실장이 들어왔는지 눈치를 챘다.
"이번에도 똡니까?"
"네, 이번에도 캐비닛에서 나왔습니다"
"어허, 도대체 전임 정권 의혹은 언제까지 나오는 겁니까?"
임종석 실장은 할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청와대 내부의 캐비닛이란 캐비닛은 다 뒤진 듯 했지만 아직도 나오지 않은 비밀은 저 한쪽 구석에서 스물스물 기어나오고 있었다. 내일 지나면 또 다른 문건이 나올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시 창밖을 쳐다봤다. 그리고 2012년 대선을 추억했다.
(2012년 12월 어느날)
쾅쾅쾅
"이봐요. 다 알고 왔습니다. 문 열어주세요"
여자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상부에서 얼마 전에 야당 의원들이 첩보를 입수했으니 조심하라고 했지만 설마 진짜로 들이닥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당신이 국정원 여직원인거 다 알고 왔습니다. 그러니 문 여세요"
여자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어디론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상부의 지시가 내려왔다. 상부에서 내려보낸 암호명은 '셀프 감금'이었다. 그렇게 박근혜정부의 서막은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