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변론 맡은 안동일 변호사 <10.26은 아직도 살아있다>에서 밝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죽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자신의 변호인에게 박 대통령의 여자관계를 털어놓은 정황이 밝혀졌다.
김씨의 변호를 맡았던 안동일 변호사(65)는 10.26 사건 26주기를 앞두고 사건 및 재판 과정을 담은 저서 <10.26은 아직도 살아있다>(랜덤하우스중앙)를 펴냈다.
안 변호사에 따르면, 김씨는 80년 2월 19일 변호인 접견에서 박 대통령의 여성편력과 큰 영애 박근혜양의 구국여성봉사단의 부정 등 민감한 현안들을 털어놓았다.
김씨는 79년 12월 11일 1심 공판에서 박선호 의전과장의 관련 진술을 제지하는 등 박 대통령의 사생활을 감싸려고 했지만, 1·2심에서 잇달아 사형선고를 받게되자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안 변호사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궁정동 안가에서 박 대통령을 거쳐간 여성이 200명 가량 되는데, 이 때문에 박선호가 무척 고생했다고 한다. 웬만한 일류 연예인은 대통령에게 다 불려갔었다. 당시 항간에 나돌던 간호장교 이야기, 인기 연예인 모녀 이야기 등이 모두 사실이었다."
92년 동아일보사가 펴낸 <정치공작사령부 남산의 부장들>이 "궁정동 안가를 다녀간 연예인은 100명 정도 된다"고 밝힌 것이 이 부분에 대한 정설로 굳어져있지만, 생전의 김씨는 두 배의 숫자를 제시한 셈이다.
김씨가 '거사'를 실행한 데에는 자식들의 문제에 냉정하지 못했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도 일정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근혜양이 관련된 구국여성봉사단의 부정을 조사해 보고하자 박 대통령은 "정보부에서 이런 것까지 하냐"고 몹시 불쾌해했다고 한다.
김씨는 "박 대통령이 근혜양과 지만군 등 자식들의 문제가 나오면 아예 처음부터 말도 못 붙이게 싸고도는 바람에 사태가 계속 악화되어가도 더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는 박 대통령이 77년 9월 중정의 보고를 받고도 근혜양의 구국봉사단 활동을 조건부로 계속 허락했다는 <월간조선> 최근호의 보도내용과도 일치한다.
▲안동일 변호사의 저서 <10.26은 아직 살아있다>표지
그러나 안 변호사는 "여기에 옮기기엔 부적절하고 더 심한 얘기도 있었지만, 변죽만 울리는 것으로 그치고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다"며 "나는 당시 이 이야기를 김재규의 부탁대로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옮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 변호사는 저서에서 김씨를 국선변호인으로 처음 만난 이후 1심부터 3심 재판, 사형집행에 이르는 과정을 관련 사진과 김재규의 상고이유서, 대법원 판결문 등과 함께 담담히 적고 있다. 법정진술 중 불충분하거나 누락된 부분은 수사기록과 관련자료 등을 참조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려고 애썼다.안 변호사는 "재판기록의 누락부분을 원본과 대조하기 위해 육군 법무감실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지만 거부당하는 바람에 다른 길을 통해 확인하느라 출판이 늦어졌다"며 "참여정부라지만 아직도 변호인이 청구하는 해당 재판기록에 대한 정보공개에 인색한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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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1974년 8월 15일 이후 더 심해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병우 구속
#이명박 구속
#다스는 누구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