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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readers_192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가관스님
추천 : 0
조회수 : 42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4/17 12:02:12

내가 어렸을 때에는 수의 크기란 참 엄청난 거였지. 

4살때에 겨우 기억이란걸 할만한 무렵에는 정말 5라는 숫자도 대단한 숫자였거든.

그땐 겨우 있다, 없다만을 구분했을 때니까.

물건이든 뭐든 있으면 1, 없으면 0.

그 땐 내게 숫자란 그 두가지가 전부였다고 생각해.

누가 몇살이냐 물어보면 억지로 손가락을 네개 피며 내밀어 보여줬지만, 사실 그걸 이해한 건 아니었거든.

그냥 엄마가 시키니까 그대로 한 것 뿐이야.

그야말로 있다, 없다만 구분했던 단순했던 시절이었지.

옆집에 한살 많은 누나가 살았는데, 그 누나는 4를 가지고 있는 나보다 무려 1이 더 큰 5라는 숫자를 가지고 있었고, 1의 무게만큼이나 나보다 키도 더 크고, 무게도 더 나가고, 힘도 더 쎘으니까.

그 5라는 숫자는 정말 대단한 숫자였고 늘 탐내하던 그런 숫자였지.

하지만 내가 5라는 숫자를 가지게 되었어도 그 누나는 6이란 숫자로 항상 그 1의 간극은 전혀 좁아지질 않았어.


그러던 어느날 그 누나가 유치원이란 걸 가게 되었고 10이란 숫자를 내게 가르쳐 준거야.

물론 그 전에도 10이란 숫자는 알고 있었지만, 그 숫자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원리는 알지 못했거든.

10이란게 단지 10이라는 숫자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닌, 1이 여러개 모인 조합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의 신비함이라니!


그리고 몇 주뒤에 그 누나는 100이란 숫자를 가르쳐 주었는데 그 100의 광대함이란!!

그 누나는 숫자 100을 내게 어떤 식으로 가르쳐 줬냐면 손가락 열 개를 쫙 펴서 내게 보여준다음 그 손가락 열개를 내게 하나! 둘! 셋! 큰 소리를 외치며 내게 열번 내밀었더랬지.

뭐 100이란 숫자의 위대함도 놀라웠지만, 그 누나의 압도적이고 위대해보이던 모습에 더해 손가락 열 개가 열 번 눈 앞에서 현란하게 왔다갔다 하던 모습에 받은 충격은 정말 아마 아무도 알지 못할꺼야.


나 역시 유치원에 들어가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더 큰 수를 배웠지만, 그 백을 처음 배웠던 때의 기억은 잊지 못해.

물론 나중엔 백이란 건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렇게 커다란 수는 아니란 걸 알게 되었고, 혼자 백과사전을 보며, 억, 조를 넘어 무량대수니 뭐니 하는 더 큰 수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단지 더 큰 수란 단순히 0을 더 붙히는 것이란 걸 알게 된 난 좀 더 현실적인 숫자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

현실적인 숫자란 그냥 우리가 평소에 늘 접하는 그런 숫자들 말야.

그리고 자연스레 그 숫자를 빨리 셈하는 법에 관심을 갖게 됐지.


아마 그 시절 즈음에 주판을 이용하는 주산을 배운건 당연한 일일꺼야.

그 당시 그 즈음엔 아마 누구라도 주산학원에 다녔을꺼라고 생각해.

주산은 5진법을 이용한 셈법인데 암산으로 계산하는 것보다 몇배는 빠르고 큰 수를 계산하더라도 정확도도 높았어.

그리고 주산을 이용한 손가락 셈법도 배우게 됐지.


새로운 손가락 셈법은 단순해.

주산과 마찬가지로 엄지를 5로 생각해서 5진법으로 계산하는 거야.

왼손은 십의 단위 오른쪽은 1의 단위

즉 기존에 단지 10까지 밖에 셀 수 없었던 것을 99까지 확장한거지.

난 이 새로운 셈법으로 학교에서든 어디서든 꽤 빠르고 정확하게 숫자에 관해 답을 할 수 있었어.

대부분의 숫자는 내 양손안에서 계산할 수 있었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이나 군대에서도 내 양손으로 이뤄지는 계산에는 문제가 없었어.

모든 숫자는 내 양손에서 해결이 가능했고, 마치 내 세상은 우주에서 내 양손안에 들어온 것과 마찬가지였지.


모든 것은 얼핏보면 문제가 없어보였지만, 다만 문제는 내가 내 손에 세상을 가뒀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게 아니라 내가 내 손 안에 갇힌것과 마찬가지였어.

난 내 손을 벗어나는 수에는 무기력했지.

누구나 알다시피 세상이란 온통 숫자와 숫자로 이뤄져 있는데, 양손을 넘어서는 수에는 무기력했던 거야.


물론 나 역시 이를 극복하고자 계산기나 컴퓨터와 같은 것을 이용안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계산기 컴퓨터 자체를 이해한 것은 아니거든.

역시 그것들은 내 양손의 밖, 즉 내 세상의 밖이었지.

세상의 법칙, 규모와 내 손은 맞질 않아.

어찌보면 근본적인 계산 방법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99뿐인 내 손의 수를 확장하기로 마음을 먹었어.


난 기존 10진법에서 5진법으로 셈을 바꾸며 더 많은 수를 양손에 넣은 걸 이미 경험했지.

그래서 내 손에 더 많은 수를 담기 위해 2진법 계산을 손에 장착하게 된 거야.

손가락 하나는 기존 1을 가리키는 거에서 2의 n곱을 가리키는 것으로 논리를 바꿨어.

그럼으로써 난 2의 9곱까지 수를 얻게 되었지.

기존보다 간단하며 더 많은 수를 셀 수 있게 된거야.


단지 손가락을 구부리면 1

피면 0

그것 뿐.


어정쩡한 다른 숫자는 필요가 없게 되었어.

그냥 내게 남은 숫자는 0

그리고 1


없거나 혹은 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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