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나리를 기르기로 결심한 것은 '안락사'라는 선택지가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연하게도 고양이를 기르던 누나가 외국을 떠나기 전 각종 용품들을 "나 대신 버려줘"하고 떠넘겼던 시기였다. 나는 큰 돈 안 들이고 고양이를 기를 수 있겠다 싶어 결정한 충동이었다.
처음 집에 데리고 왔을 때는 나리가 울던 "쀅"하는 소리는 짜증이 나는 소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소리를 없애기 위한 노력이 나를 조금 바꿨던 것 같다. 굳이 표현하자면 '아... 말은 안 통하지만, 내 정성은 통하는구나' 정도다.
이후 이름을 지어준 순간부터 친해지기 위한 갖은 노력을 했다. 내 정성이 통할 것이라고 믿었다. 다행히 나를 볼 때마다 "쀅"하고 기겁하며 울고 바둥바둥 거리지 않았다. 정말 신기했다.
그러나 나리는 내 옆에 있는 것을 무서워했다. 우리는 2주 넘게 함께 보냈지만, 내가 다가가면 나리는 도망갔다.
▲ 침대 밑에 있는 나리
목욕 후 케이지 밖을 벗어난 나리는 나를 피해 요리조리 집을 돌아다녔다. 주로 숨기 좋은 장소 위주로 움직였고 가장 좋아하는 곳은 침대 밑이었다.
내가 손을 뻗으면 나리는 침대 속으로 쏙 들어갔다. 그리고 내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침대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나는 억지로 나리를 잡고 나오는 것보다, 나리가 직접 침대에서 나오게 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장난감을 들고 나리에게 다가갔다. 역시나 나리는 침대 밑으로 숨었다. 그래도 장난감을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침대 앞에 장난감을 나뒀다. 그랬더니 나리가 침대 밑에서 손만 내밀며 장난감을 툭툭 건드렸다. 그리고 장난감을 침대 밑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이때다 싶어서 나는 손일 내밀었는데, 나리는 장난감을 두고 침대 구석으로 쏙 들어갔다.
▲ 침대 밖을 나온 나리
나리를 만지지 못해 아쉬웠지만 한편으로 장난감을 좋아한다는 큰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은 기회였다. 나는 장난감을 침대 앞에 두고 나리를 조금씩 나오도록 유도했다. 마찬가지로 나리는 손만 내밀고 장난감을 가지고 들어가려고 했고,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장난감을 잡아 밖 침대 밖으로 뺐다. (이 장면도 영상으로 촬영했으나, 파일이 에러로 열리지 않네요)
몇 번 반복하자 나리는 완전히 침대 밖으로 나왔다.
▲ 장난감과 노는 나리... 다가가는 나
나리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은 너무 귀여웠다. 불과 몇 주 전에 나리를 내가 귀찮아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다. 조금 더 가까이 보기 위해 나는 조심조심 나리에게 다가갔다. 너무 즐거웠던 것일까. 나리는 내가 가까이 가도 아무렇지 않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 아이패드를 가지고 노는 나리
이후 나는 나리를 즐겁게 해줄 다양한 방법을 생각했고, 나리가 즐겁게 놀 때마다 항상 곁에 있었다. 내가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어느 순간 나리는 나로부터 도망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