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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사람과 모르는사람 간의 평등
게시물ID : phil_99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솔의소리
추천 : 2
조회수 : 54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0/08 22:21:52
정의를 보려면 평등을 때고는 볼수 없다.
집단과 사회 전체의 행복을 찾으려면 평등을 논해야한다.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에서도 평등은 아주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이다.

그렇다면 아는사람과 모르는사람 사이의 평등은 어떠한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 받을 수 없다고 한다. 현대에서 모른다는건 거의 죄악이다. 
무지로 인해 입은 피해에 대해 동정의 눈길을 보낼 수는 있어도 구휼은 없다.
이게 이성적이라하는 인간이 만들어낸 비극적인 체제이다. 이러한 불평등은 법에서 특히 잘드러난다.
과연 모르는(무지한, 무식한) 사람들에 대한 권리는 지켜지지 않아도 되는가? 불평등하여도 되는가?
이에 대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범죄사건에 대해서 그의 잘못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야한 옷을 입고다녀 강간을 당했으니 가해자는 억울하고 피해자는 반성해라. 이딴 식의 논리인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꿔버린다.
모르는 사람은 오히려 더 견고하게 보호받아야 한다. 몰랐으니 피해를 입었다는 말은 무책임한 조직의 부풀어진 머리에서 나오는 변명일뿐이다.
그래서 앎과 무지에 대한 불평등을 조장하는건 대게 윗선들이다. 권력은 쥐고 싶고 책임은 지기 무서우니까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었다. 나는 역사를 잘 몰라서 아는 사실이자 전제가 이거 하나 뿐이다.
이 하나의 사실로부터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이유를 유추해보자면 그는 국민들이 무식함에서 벗어나서 좀 알았으면 했다. 왜? 아는게 없는 사람들은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한테 억울하게 이용당하고 피해를 입으니까. 세종대왕은 뜻은 좋았지만 방향을 잘못잡았다.(이글의 모든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고 한글창제가 거대한 도약임은 틀림없다.) 한글을 깨우친 우리는 아직도 억울하다. 무지와 무식으로부터의 구원이 직접적인 평등을 가져오지 못했다. 오히려 원래부터 아는사람들은 더욱 치밀해져 자기들끼리만 정보교환을 하게되고, 알고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정보유린과 허위정보유출을 하며 알권리를 무참히 짓밟고 있다.
잘못된건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 모르는 사람을 이용해먹는 놈들이 잘못된 것이다. 역시대착오적인 생각으로 나는 세종대왕이 방향을 왜 이쪽으로 잡았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어쩌면 인정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식의 접근으로부터 세종대왕은 내게 악한 사람은 시대가 변하고 흘러도 사라질 수 없다는 결론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그래도 잘못된건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잘못된게 없으면 그들도 아는사람과 같이 평등하게 보호받고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예외는 있다. 모르는 사람은 잘못이 없지만 알고자 하지 않는 사람들은 잘못이다.
예를 들어 외국여행을 가서 외국어로 써진 출입금지라는 글을 못읽고 출입을 하여 벌을 받게 된 경우, 이런 경우는 몰랐던게 아니라 생각이 없었다. 알고자 하는 생각도 없었고, 그곳이 왜 출입하면 안되는 곳인지에 대해 기본적인 눈치와 생각 자체가 없었다. 이들이 출입금지의 외국어를 알수없었던건 필연적이였을지 몰라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과 외부에 대한 무책임함에 크나큰 잘못이다.

우리는 모두 보편적, 배분적으로 평등할 권리가 있고 이것은 지켜져야 한다.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 지식의 평등과 억울함을 없애야 할것이며
모르는 사람은 호기심을 놓치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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