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의 글은 피마새를 읽은 뒤의 망상을 정리한 것입니다.
걍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봐주세요.
엘시는 밤의 따님인 꿈이 관여하기 힘든 사람이었습니다.
옆에서 볼 수는 있지만 알아차리게 할 수 없었죠.
왜일까요?
여기저기서 묘사를 하지만
엘시는 '자유의지'로 행동한 적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네, 선악과를 먹기 전의 아담. 그런 존재였던 것이죠.(성경의 표현을 빌려온 것은 제 지식의 한계 때문입니다. 딱히 피마새를 성경 수준으로 비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라세는 그런 엘시를 '알고'있었지요. 그녀는 어찌 되었건 간에 '정신억압'을 할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요.
물론 라세의 정신 억압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라는 명령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엘시는 그 명령을 받고 '당신이 바랄 만한 것'을 하는 것으로 행동했지요.
이는 라세의 정신 억압을 받은 이들이 그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뭐 그렇기 때문에 엘시는 자유의지를 따른 행동을 하지 않은 -네, 자유의지를 가지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허락한 것이기 때문에 '보유'는 죄가 되지 않지만 그것의 '행사'는 죄가 됩니다. 뭐 간단한 신학적인 논리이긴한데 이에 대한 논의는 뭐 아우구스투스, 아퀴나스 시절 때부터 있던 것이니까 패스- 그래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인간이었습니다.
마지막 즈음에 엘시가 자유의지를 따라 행동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그래서 그후 라세가 엘시에게 '너도 잃었다.'라고 표현했지요.
뭐 그냥 그렇다구요.
아, '부끄럽다'라는 표현을 엘시가 하기는 했지만 엘시는 거기에 해당 사항이 없는 사람이었죠, 그때까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