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와 권리의 명확한 차이는 '상대방에게 결정 권한이 있느냐, 없느냐' 차이일 겁니다.
기차에서 내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비켜줄 것을 '부탁'하는게 아니라 '요구'하는 것이고, 그 요구에 대해 앉아있던 사람에겐 거부할 권한이 없지요.
반면에 임산부 배려석이나 노약자석은 반대입니다.
앉아있는 사람에게 양보할 것을 '부탁'하는 것이고, 앉아있던 사람은 거부할 권한이 있지요.
그런 호의가 권리로 변질된 대표적인 사례가 지하철 노약자석입니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노인석이죠.
박X스의 병X같은 광고가 아니더라도, 언제부턴가 젊은이들은 지하철이 미어터져도 노약자석은 비워두게 되었죠.
결국 약자였던 임산부들이 노약자석에서 밀려나와 불만이 커지자, 미봉책으로 만든게 출입구 근처의 임산부 배려석입니다.
이 또한 본질은 '배려'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데, 극단적 성향의 단체들에 의해 권리로 변질되어가고 있죠.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는 남성의 사진을 찍어 조리돌림하고, 기관사에게 항의 문자를 날리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배려를 권리로 왜곡시키면, 결국 폭넓은 배려는 사라지고 작은 권리만 남을 겁니다.
그런 극단적 단체나 사람들의 근시안적인 태도에 기가 찰 뿐입니다.
더 큰 문제는 서울메트로 등 지하철업체의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공공기관의 주차장처럼 장애인전용, 여성전용을 만들고 안지키면 과태료를 물리면 됩니다.
아니면 아예 노약자석이나 임산부 배려석을 없애도 됩니다.
세상이 변했는데 미풍양속 운운하며 논란거리를 만들어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가 참 짜증이 납니다.
호의시스템이 권리시스템으로 변질된 노약자석의 실패에서 배운게 없는 저들의 무능함에 화가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