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잉여력이 폭발했을 때의 나. 오전에는 알바, 저녁에는 꼭 겜방을 들려 새벽까지 시간을 죽이던 20대 초쯤으로 기억한다.
그 날도 평소처럼 겜방에 들려 항상 앉던 구탱이자리를 찾았으나 마치 내 고정석 같던 그 자리엔 나보다 훨씬 잉여력이 폭발하는 아우라를 풍기는 그 분이 계셨다.
그 당시 그 분께서는 리니지를 하고계셨으며 모니터 주변으로 라면과 음료수의 잔해... 그리고 이미 담배로 수북한 재떨이까지... 나는 감히 그 분의 얼굴을 직접 뵐 용기가 나질않아 곁눈질로 흘깃거릴 뿐이었다.
나 또한 리니지에 접속해 나름 자부심을 느꼈던 나의 장비들을 하나하나 찍어가며 감상을 하는데... 계속 가지미 눈을 해가며 그 분 모니터를 보지 않을 수 있었으랴...
지존, 상위 0.1%, 피와 살이 난무하는 아덴월드의 최상위 피라미드 꼭대기 층에서도 꼭짓점... 무엇으로 그 분을 형용할수 있었을까?
"거기도 리니지하네?"
그 분이 친히 먼저 말을 걸어 주셔서야 정신을 차린나 는
"네, 그렇습니다!!!" 군기가 바짝오른 이등병의 그것처럼 겜방이 울리게 대답하곤 민망함에 아찔해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그렇게 몇 마디 대화가 오고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 분은 내가 꿈 꿀 때나 들고 설치던 극 상위템을 모두 장착하였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한 쿨함과 시크함, 하지만 같은 게임을 하는 겜방 유저에겐 한없이 따뜻한 마치 귀족의 풍모른 지닌 분이셨다.
새벽이 깊어갈 무렵 화장실에 가기위해 나서는데 겜방 사장이 날 쫓아왔다.
그 분이 무려 5만원 정도의 금액이 발생하시었기에 혹시나 하는 불안으로 옆자리에 있던 단골인 나를 찾은 것이다.
나는 그 분을 감히 의심조차 할 수 없으메, 그 분 모니터 안에는 수천이 들어있으니 사장또한 염려치 말라 타일렀다.
그러나 사장은 내 말을 믿지 못하고 중간 정산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 분은 당당하게 날이 밝으면 현금을 인출해 드리리니, 나와 옆자리의 동료에게 과자와 음료를 더 쌓으라 명하셨다.
이때부터 였을까??
나와 사장은 모두 불안함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장은 급기야 경찰을 부를 생각을 하시기에 이르렀다.
나 또한 염려말라 거든 것과 과자부스러기 줏어먹은 죄로 도의적 책임감에 위축되었던 그 때...
그 때...
그 분은 역시 범상치 않은 분이셨음을 사장이 알아차려 버렸다.
사장은 경찰을 부르되 겜방비가 없음이 죄가아닌...
'부산 일대 카드 복사범'의 최종 도주자를 신고하심이었다.
10여년 전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전국구 카드 복사 사건의 일당 중 최종 용의자가 검거되던 순간!
형사들이 나와 그 분의 주위를 둘러싸고 그 분께 쇠고랑을 채워 끌고가는 그 순간!
사장은 겜방비 5만 여원 중 우수리빼고 5만원 정산을 요구하였다.
그 때 그 분은 날 바라보시며 "내 금방 다녀올 터 경찰들과 함께 가는데 동료른 속이겠는가?" 하시며 5만원을 꿔 사장에게 던지신 것이다.
그러고 그 분은 돌아오지 않으셨다.
근데 생각해보니 이놈의 사장놈이 지가 카드 복제 사건 용의자로 경찰에 신고했는데? 난 상황자체를 겜방비 미정산으로 끌려가는 줄 알고 템하나만 팔아도 한달치 겜방비 이상이 나오시는 분이 설마... 하고 빌려준 것 뿐인데? 뻔히 돈이 없는 거 아는 사장놈이 경찰서 끌려가는 놈한테 정산을 요구해? 내가 돈 꿔 주는 걸 보고 헤헤거리며 그 돈을 챙겨?
당연히 따졌으나 빌어먹을 사장놈이 2.5만원씩 부담하자며 나에게 반띵을 제시하였다. 무기력한 나는 이에 응해 반이나마 돌려 받았으나, 하루에 만원이상씩 가져다 바치던 단골 겜방을 옮길밖에 달리 수가 있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