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 새벽, 문득 생각이 나서 털어놓을 겸 적습니다.
제가 그 아이를 만난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었어요.
우연하게 짝궁이 된 게 첫만남이었지요.
솔직히 말하면... 첫인상은 정말 별로였어요.
그 아이는... 공부는 잘하지만, 자신보다 못한 애들을 무시하곤 했었거든요.
굉장히 못되고 이기적인 아이였어요.
언제부터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된지는 저도 몰라요.
분명한건, 어느 순간부터 계속 그 아이 뒷통수만 쫓고있더군요.
초등학교 때는 그나마 서로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였지만,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저와 그 아이의 사이는 달라졌습니다.
처음부터 서로 몰랐던 사이인 양 인사도 대화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지요.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우연하게 같은 조가 되었던 적이 있었지만, 끝내 전 그 아이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어요.
그래도 계속 그 아이가 좋았어요.
저는 아직도, 외출할 때마다 우두커니 선 채 옆단지를 바라보는 버릇이 있어요.
그 아이가 저희 집 옆단지에 살았거든요.
중학교 시절, 혹시 우연하게 마주쳐서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고 바라보던 것이 버릇으로 고착화 되어버린거겠죠.
고등학교 졸업 이후, 저는 그 아이를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었어요.
공부를 유별나게 잘했던지라, 좋은 대학에 합격하여 이사를 가게 되었거든요.
전 이제 사회인이에요. 연애도 여러번 겪었지요.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넌 정말 나를 남자친구라고 생각하는거니?'
전 남자친구으로부터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어요.
아, 나는 어느 누구도 그 아이 이상으로 좋아할 수 없겠구나.
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정말 너무 보고 싶어서 혼자 엉엉 울 때도 있어요.
그냥 이유 없이, 그 아이의 하얀 얼굴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어렸을 적부터 일찌감치 포기한 탓일까,
사실 우연히 다시 만나서 사랑이 이루어진다... 따위의 전개는 꿈도 꾸지 않고 있어요.
그냥 그 아이는 행복하게 살았으면 해요.
본인이 바랐던 대로, 그 아이는 좋은 대학 졸업하고 좋은 직장 취직해서 좋은 여자랑 행복하게 살길 바랄 뿐이에요.
저는 무언가에 절박해본 적이 없었어요.
단 하나 간절해 본 적이 있다면, 바로 그 아이일거에요.
제가 그 아이에게 바라는 건 단 하나에요.
훗날 제가 당당하게 '안녕' 이라 인사를 건낼 수 있게 되면,
그 아이로부터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라는 말 한마디만 듣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