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했어요 근데 작년보다 등급이 많이 떨어졌어요 사년동안 모의고사 보면서 이런 숫자를 보는것도 처음이에요 삼수를 하려면 미적분을 다시 공부해야 된데요. 집에는 고3동생이 재수를 생각하고, 재수도 눈칫밥먹으며 했던 저는 삼수얘기는 꺼내지도 못해요 그리고 삼수할 기분도 없어요 이번처럼 더 망할까봐 용기를 못내겠어요 입으로는 죽고싶다고 말하면서도 그렇다고 죽지도 못해요 찌질이라서 용기도 없거든요 대학다니는 애들은 스무살 티내며 예뻐지는데 난 만년 고삼 스트레스성 위염, 여드름, +15kg 달고살고 남자들은 군대갔다와서도 용기있는 사람들은 다시도전해본다는데 넓게보면 시간낭비 아닐수도 있다고 그러는데 난 내 증발한 스무살이 아까워요 남들은 재수하면서 인생에 대해서 많이 배웠다고 하는데 난 배운거라곤 하나도 없어요 그냥 인생이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아요 집근처학원 다니다 때려치고 집에서 버스로 30분 세개 구를 왔다갔다하며 노량진 단과반에 다니면서 독서실에서 열심히 입다물고 친구도 안사귀고 수업만 들었어요 그래서 말도 가족하고밖에 못해 말수도 줄고 성격도 바꼈어요 대학이 전부가 아니란거 넓게보면 그렇겠지만 사실은 알죠 , 출발선이 다르다는거 내 사촌들은 거의 다 잘나가서 연대 경영학과 나온 오빠는 명함도 못내밀어요 남서울대 착실하게 다니는 사촌오빠는 학교얘기를 꺼내지도 못해요 아빠는 내가 중1올라갈때부터 '교복입을땐 다 똑같지만 스무살 땡치면 다 달라, 강한사람만 살아남고나머지는 다 도태되는거야'
성적표 받고 엄마한테 전화했어요 미안하다고 집에오면서 차한테 치여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보험처리 되면 그동안 나한테 쏟았던 학원비 과외비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