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렸을 때 부터 여러 만화를 탐독해왔습니다.
운좋게도 제 청소년기가 한국만화 부흥기와 맞물려서 한창 감수성 예민할 때
양질의 좋은 만화를 많이 접할 수 있었죠. 드래곤볼 슬램덩크를 비롯해서
아르미안 네딸들, 호텔아프리카, 노말시티 등등.. 이상하게도 한국만화는 순정만화가 더 많이 기억나네요.
아무튼 이러다가 98년인가 99년쯤에 만화계에 대란이 터집니다.
선정성, 폭력성 논란이 일이서 굉장히 많은 만화가 대여점에서 사라지고 최초로 만화책에 19금 딱지가 붙게 됩니다.
연령제한 자체는 사실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만화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적, 선정적 묘사를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문제시 삼는 시절이었습니다.
모든 창작물은 그 나름의 이유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치가 없는 창작물이라고 해도 창작할 자유는
보장되어야 합니다.
라스 폰 트리에라는 감독이 있습니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묘사로 세계적으로 이름이 높은 감독입니다.
그의 영화를 보다 보면 꼭 이렇게까지 표현했어야 하나.. 싶은 장면이 한 두 개 씩은 꼭 나옵니다.
인간으로서 본능적인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면들 말이죠. 자세한 묘사는 하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에도 그런 감독이 있죠. 박찬욱 감독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이미 확보한 명성 때문에 작품 전반이 몇 장면에 매몰되어 평가당하지 않습니다.
물론 논란이 되죠. 하지만 영화계에서 이런 논란 때문에 감독이 사과를 한 전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또한 영화계에는 이러한 폭력 그 자체가 목적인 영화도 있습니다. 흔히들 슬래쉬 고어물이라고하는 장르지요.
이런 영화들은 불쾌감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이런 영화들에 대해서 그 창작행위를 검열하려는 움직임은 없습니다.
저는 이번 사태에서 남녀대결을 떠나 지난 98년 99년 쯤의 만화검열 시대를 떠올립니다.
그 시대에는 만화란 문화장르에 대해서 사람들 인식이 상당히 박했습니다. 애들이나 보는 것으로 치부했죠.
만화란 장르가 이룰 수 있는 문화적 성취에 무지했습니다.
그렇기에 모든 장면 장면이 해체되어 불건전 불온건의 심판대에 올려졌죠.
많은 시간이 흐르고 몇몇 만화의 화제성과 수익성이 상당한 수준에 올랐음에도 아직도 그런 인식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그 검열의 주체가 정부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는 점에서 더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