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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단편] 99퍼센트와 100퍼센트
게시물ID : readers_194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자류
추천 : 1
조회수 : 36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5/03 23:25:55
오늘도 어김없이 일을 마치고 사라진 영혼을 찾듯 축 처진 몸을 끌며 집으로 향한다. 광장을 지나 곧 집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광장은 무척 소란스러웠다.  뭔 좋은 일을 하려고 동네 시끄럽게 저런 짓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렇게 안쓰러운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겨우 집에 도착할수 있었다. 쉴세도 없이 어머니와 단둘이 좁은 단칸방에서 저녁을 먹는다. 저녁을 먹는 동안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그저 틀어져 있는 TV를 보며 꾸역꾸역 밥상에 있는 밥과 반찬을 입에 쑤셔 넣었다. 
뉴스에서는 국회의원 아들이 강간과 폭행으로 기소되었다는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리고 메모리로드를 신청하며 일체 외부와의 접촉을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메모리로드?'
문득 밥을 쑤셔 넣은 입속에서 생각으로 있어야 할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거 이번 대통령님이 개발 지시했다던 기술인데. 사람의 기억을 들여다봐서 사실관계를 바로 알 수 있다고 하더라. 무려 적중률이 99퍼센트래~"

TV만 보던 어머니께서 입에 있던 밥과 침을 튀겨가시며 설명해주셨다.

"역시 우리 보다 똑똑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나라가 발전한다니깐 엄마는 저분이 대통령이 되셔서 너무 좋단다. 이제 우리 살림도 나아 질거야"

정치는 하나도 모르겠다. 어머니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그런 것 이겠지. 내 나이도 서른이 넘었지만, 아직 투표라는걸 해본 적도 없다. 누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다 나쁜 사람들이라는 말만 들리니까. 누가 되든 상관없는 일이지.
더 정치 이야기를 하시기 전에 얼른 남은 밥을 입에 구겨 넣고 자리를 일어났다. 얼른 씻고 자야 더 잘수 있을 테니까.





일요일이 오기 전까지 야근을 계속했다. 처리해야 하는 서류가 책상 서랍을 가득 채웠다. 인수인계 받을 때도, 야근을 반복해도 줄지 않았다. 나는 회사가 원하는 인재는 아닌 모양이다.

겨우 찾아온 일요일 점심 늦게 일어나 어머니와 밥을 먹는다. 어머니도 오늘은 쉬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항상 뉴스를 보신다. 머리기사만 보고 넘겨도 될 일을 왜 끝까지 다 들으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일전에 봤던 그 일이 다시 뉴스에서 나온다. 결국은 국회의원 아들은 죄가 없고 여자가 날라리라는 부류라서 한몫 챙기려고 이런 거짓말을 한 것이라는 거였다.

"거봐라 우리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의 아들인데 남들한테 그렇게 피해 주고 그러는 몰상식한 사람일 리가 없지. 그것보다도 저 메모리로드라는 저거. 저거 덕분에 억울한 사람이 줄어든다니. 이게 바로 선진국이지."

어머니의 대통령 칭찬을 또 얼마나 들었을까. 목이 막혀 침도 나오지 않는 텁텁함에 옆에 있는 보리차를 밥그릇에 붓고 김치랑 대충 말아 먹고 자리를 일어났다.

"선진국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사는 건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이내 생각을 접고 게임을 하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사냥하러 필드로 나갔지만 모두 사냥 실패. 장비가 안 좋은것 같아 캐시를 샀지만 모두 꽝이었고 강화는 모두 실패했다.
"오늘은 운이 안 좋네"
어쩔 수 없이 레벨이 낮은곳이라도 남들 가는 곳 따라 사냥을 해댄다. 그러나 그나마도 캐릭터의 직업이 안 좋은 것이라 탈퇴 당하기 일쑤 였다.
몇번 안 한것 같은데 벌써 밤이 찾아왔다. 오늘의 일과도 이게 전부구나. 애인이 있었다면 나도 더 밝은 인생이겠지 라는 망상과 함께 하루를 마쳤다.





오늘도 정신없는 하루였다. 겨우 막차를 탈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의 광장에서는 더욱더 소란스러웠다. 문득 왜 저러는지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무언가 팻말을 흔들어대는데 뒷면만 보아왔었다. 난 그들의 앞으로 가서 팻말에 무어라 적혀 있는지 보았다.

"메모리로드 폐지"

참 어이없는 사람들이 맞는 것 같다. 억울함을 씻어주는 기술을 버리자고 하다니. 아마 이들은 범죄자일 것이다. 자신들이 무언가 거짓말 하는 것이 있으니까 이런 집회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만 집으로 돌아가려 발걸음을 돌렸다. 그 집회장소를 거의 벗어나려고 할 때 갑자기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우리를 에워 쌌다. 

"나는 그냥 지나가던 길이에요. 비켜주세요!"

라며 애원했지만, 주변 시위대가 큰소리로 외치는 욕설 때문에 내 목소리는 전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들 틈에서 나도 그들과 한 무리가 된 체 흠 신 두들겨 맞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구치소 안이었다. 뭔가 끈적한 것에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그것보다 이곳에서 나가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되었다. 쇠창살을 붙잡고 내보내 달라고 소리 질렀다. 누군가 들었는지 내 앞으로 와서는 쇠창살을 쳐대며 조용이 안 하면 죽이겠다고 했다.  두려움에 조용히 앉아 있을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절차를 모두 진행하고도 그대로 얼이 빠져 쭈그려 앉아 무릎을 양팔로 껴안고 그 안에 머리를 파묻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어머니가 보였다. 어머니는 눈물범벅으로 메모리로드라는거 해보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라며 계속해서 호소하셨다. 그렇게 실랑이가 계속되던 가운데 누군가에게 호위를 받으며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 낯이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의 어머니를 보더니 두 손을 맞잡고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라고 안심시켰다. 이내 경찰들이 가져온 서류를 보더니 메모리로드를 받게 해 드리겠다고 안심하라고 하였다.





시간은 흘러 그 메모리 로드 라는 것을 받게 되었다. 전선 같은 것을 내몸에 붙이고서는 몇 가지 간단한 질문들이 오갔다. 
모두 중요한 증거들이라고 나에게 말해줬다. 그 증거들은 이후 판사에게 전달되었고 나는 국가전복을 꿈꾸는 반역가가 되있었다. 모두 메모리로드라는 것에서 나온 증거를 강력하게 믿었다. 나는 더는 손쓸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울부짖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30년이 지나고나서 나는 자유가 될수 있었다. 왠지 그리웠던 공기를 한껏 들이켜자 알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처 없이 걷고 또 걷자 예전에 살던 집 근처에 다다랐다. 그곳에 있던 광장은 참 깨끗했다. 내가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기술의 발달이 무엇이든 깨끗히 만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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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월호 유가족 진압에 대해 보고 핸드폰으로 끄적이다가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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