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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고모 이야기
게시물ID : panic_794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뺨맞은노예
추천 : 42
조회수 : 5185회
댓글수 : 26개
등록시간 : 2015/05/05 09:15:06
베스트에 올라와있는 이야기를 보고  
문득 떠오른 옛추억을 회상하며 쓰는  
저의 실화이자 어쩌면 꿈 일 수도 있는 
기묘한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때는 제가 유치원시절로 기억합니다. 

 그당시 저희 친가쪽 어른은 조부모님들과 
고모,고모부 큰아들인 저희 아버지,어머니 
작은아들인 작은아빠와 작은엄마 였구요 

 순수하게 조부모님들의 자식들로만따지면 
딸인 고모와 큰아들,작은아들인 삼남매로 
알고있었습니다. 

명절이나 제사를 지내기위해 할머니댁에 
갔던걸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재개발로 없어진 가락동의 
진X아파트가 할머니댁이라 오랫만에  
친가 친척들 모두 모여서 전을 부치고 
밤을 깎던 모습이 기억나네요. 

 저희 아버지가 큰아버지이지만 결혼을  
늦게하셔서 친가쪽에서는 제가 막내였구요 
어른들이 음식 준비하느라 바쁘실때에  

저는 친척형,누나들과 아파트 단지내에  
있는 놀이터로 놀러 나갔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형,누나들이  
이제 해지니까 들어가자고 하더군요  
저는 왜그랬는지 자세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좀 더 놀고싶었던건지 형,누나들을 따라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놀이터에 그 많았던 애들이 순식간에 
없어졌고 저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으니 
갑자기 무서워져서 저도 놀이터에서 
후다닥 뛰어나오는 찰나에 

아파트 입구 쪽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시면서 절 부르시더군요 
그 아주머니 뒤로 노을이 지면서 
굉장히 화사하고 따뜻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그 때문인지 저는 
처음보는 사람이었지만 경계를 하지 않고 
절 부르는 말에 대꾸했습니다. 

그분은 제 이름을 부르시면서 제 눈높이에 
맞게 쪼그려 앉으시며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XX이 많이 컸네~?" 라며  너무나 
환하게 웃으셨어요  그리곤 선물이라며 
경찰차 모형인  장난감을 제손에 쥐어주시며 
제 손을  붙잡고는 저와 함께 할머니댁으로  
걸어갔는데 그때의 그 따뜻한 온기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포근했었습니다.

그렇게 할머니 댁으로 들어왔는데  
저와 함께 제손을 잡고 오신 아주머니가 
어느센가 사라지고 없더라구요 
부모님은 왜 이렇게 저 혼자 늦게 오냐고 
하시며 손에 쥔 장난감은 어디서 냤냐고  
물으시길래 "어떤 아줌마가 줬어, 
나랑  같이 왔는데 어디갔지?"라고 말했다가  
엄청 혼났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거 받지 말라고 했는데 
말을 왜 안듣냐면서 절대로 모르는 사람이 
부르면 따라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그렇게 그날의 저의 기억은 끝이었습니다. 

그 뒤로 시간이 한참 지난 중학교 때에 
어머니와 같이 옛날 저 태어나기전에 
앨범을 보고 있던중 한장의 사진에 
눈이 가게 되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와 함께 사진에 찍혀있는 
두명의 여자가 있었는데 한분은 저희 고모였고 또 한분은 "어디서 많이 봤는데?" 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아!!!" 라며 저도 모르게 
소리치니 어머니가 "너 이분이 누군지 아니? 
이분이 네 큰고모야 처음보지?"라며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나 이 분 알아 나 어릴때  
장난감 선물 주셨던 분이잖아"라고 말했고 
어머니는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말라고  
콧방귀를 끼셨어요 

그래서 뭐가 말도 안되냐고 말하며 
"이분 안경쓰셨지?" 라고 말했더니  
어머니가 어떻게 아냐고 엄청 놀라시는거에요
(사진속엔 안경을 쓰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  
어떻게 알았냐고 저에게 되물어보시길래 
어떻게 알긴 어떻게아냐고 봤으니까 알지 
라고 대답한 저에게 되돌아오는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삼남매로 알고 있었던 저희 아버지의  가족은 
사실 큰고모,작은고모(제가 고모라고만 알고있던),아버지,작은아버지 이렇게 사남매였습니다.

그 중 큰고모가 결혼하시고 아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유방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구요 한쪽 유방을 다 잘라냈음에도 
불구하고 몇개월을 투병하시다가 
그렇게 가셨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큰고모 투병생활 뒷바라지를 
다했다고 하더라구요 낮엔 간병하고  
저녁엔 큰고모댁가셔서 큰고모부랑 그 아들 
저녁차려드리고 빨래하고 아침에 밥해먹이고 
회사보내고 아들 유치원보내고 다시 병원와서 간병하고..이렇게 몇달동안말이죠 

어린자식과 남편을 두고 떠나야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지 상상도 안가지만 

큰고모는 돌아가시기전에 저희 어머니 손을 
꼭 잡고는 정말 고맙다고 너한테 내가 죽어서도 꼭 빚을 갚겠다고 말씀하시고  그렇게 힘든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사실 저희 어머니는 20살에 임신하셨고 
출산 할 때가 다되어서 유산을 하셨습니다. 

그 후론 더이상 임신이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았던 상태구요 저희 아버지가 대를 이어야할 장남이었기에 어머니가 집안 어른들 사이에서 받았을 눈총은 얘기만 들어도 눈에 훤했습니다. 

고모가 돌아가시고 2년후에 어머니께선 
저를 기적적으로 임신하셨습니다.  

임신불가 판정을 받았던지라 집안에서는 
저희 어머니에게 온갖 정성을 다했고  
저는 그렇게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눈치채셨습니까?  

저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분을 
봤던거에요 그것도 몇년이지나고 나서도 
얼굴을 기억할정도로 아주 생생하게 말이죠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병든 자신과 자기의 자식을 지극정성으로  
돌봤던 스무살초반에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판정을 받고 시댁에서 핍박 받던 
저희 어머니에게 "내 죽어서도 꼭 빚을 
갚겠다."던  저희 큰 고모 덕분에 
제가 태어날수있었던건 아닐까 하구요  

저는 제가 어릴적 뵜던 큰고모가 
꿈인지 현실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건 저와 큰고모는 시간의 흐름상 
절대로 만날수가 없었다는 것과 
제가  큰고모에게 받았던 장난감은 실제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사진속(젊었을적)의 
모습과 달랐던 안경쓰셨던 모습으로 
기억하는 저의 기억은  무엇으로 
설명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그 온화했던 미소와 제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 그 따뜻한 온기를 
저는 아직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길고 횡설수설하는 글 읽어주시느라  
감사합니다!  글 재주도 없고 기억에만 
의존해서  쓰느라 정확한 이해를 도와드리지
못할수도있어서 질문은 댓글로 받겠습니다! 
출처 내기억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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