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날이 밝으면 저의 반려견은 안락사를 당합니다.
게시물ID : animal_1382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한글여섯자다
추천 : 14
조회수 : 954회
댓글수 : 43개
등록시간 : 2015/08/19 03:17:29
내일 날이 밝으면 지난 10년 가까이 저와 함께 지낸 우리 가족의 반려견은 우리의 결정을 통해 죽게 됩니다.

안락사를 결정하는게 쉽지는 않았지만 만성신부전 3기말에 발견한 증세는 우리가 무언가를 하기에 너무나도 늦은 시간이었고

지난 4개월동안 어머니를 중심으로 가족들은 나름대로 노력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가엾은 생명을 그 생명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로 빼앗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하다고 생각하지만 만성이 급성으로 돌변하면서 숨쉬는 것 조차 괴로워하는 반려견의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나도 괴로운 일 입니다.

생전 코 고는 일이 없던 녀석이 고롱고롱 숨을 쉬기 시작하고, 이따금씩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것 마냥 발작을 하며 눈이 뒤집어지며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가 풀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이제는 가냘프게 이어간 생명의 끈을 놓아주어아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목소리조차 닿지 않는지 괴로워하며 한걸음조차 내딛지 못하는 녀석은 생전 처음 듣는 소리로 울면서 자신의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먹지 못해서 지나치게 야윈 몸은 가죽과 뼈 밖에 만져지질 않았고 생기 가득했던 눈은 충혈된 채 퀭하게 변하며 크게 튀어나왔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옆에서 먹을 것을 나눠달라고 보채던 모습이 선한데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생기를 잃어갔습니다.

지금은 진통제를 먹고 어머니 옆에서 고롱거리는 숨을 내뱉으며 잠든 모습을 보니 마치 아프기 전으로 돌아간 듯 해서 내일 녀석을 죽이러 간다는 것이 체감이 되지 않습니다. 그냥 이대로만 지내주면 얼마나 좋을까, 내 손가락 하나씩 자를 때 마다 1년씩 더 살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보지만 녀석은 내일 저희 가족의 결정 하에 죽게됩니다.

이 글을 적으면서도 눈물이 나지만 그래도 내일 녀석을 보내고 난 뒤에 그날 새벽 제가 잠 못 이루고 이렇게라도 저의 반려견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슬퍼었고, 녀석으로 인해 참 많은 행복을 알아갔다는 것과 그 받은 행복의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적어봅니다.


17살 무렵에 처음 만난 녀석은 조그마한 털뭉치에 불과했지만 개라는 동물을 처음 접해본 저에겐 너무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제 한주먹보다 작은 녀석에게 겁을 지례 먹고 슬쩍 만져보고 좋아하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녀석은 점차 저와 저희 가족의 일원으로써 스며들었습니다.

녀석과 가장 오래 붙어있던 때는 한창 가벼운 우울증을 앓던 21살때였습니다. 군 문제를 앞에 두고 휴학을 한 저는 거대한 무기력함 앞에 매일같이 집에서만 지내는 생활을 반복해왔고, 그런 저의 옆에 꽤 오랜 시간동안 녀석이 붙어있었습니다. 눈을 뜨면 녀석과 함께였고, 어영부영 지나는 하루를 지나치는 것도, 낮을 삼켜가며 지나오는 밤도 녀석과 함께였습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을 녀석과 함께 보내며 군입대를 하게 되였고 휴가 때 마다 저를 반겨주는 녀석은 저의 소소한 행복 중 하나였습니다. 나올 때 마다 어떤 때는 털이 깎여있고, 어떤 때는 털이 길어진채로 있고.. 하지만 바뀌는 모습과는 달리 늘 한결같이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전역을 하고 난 뒤에 녀석은 익숙함이라는 잔인함 속에 묻혀 차츰 신경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늘 집에 있으니까.. 늘 볼 수 있으니까 라는 명목 하에 제가 보고싶을 때만 이뻐해주고 제가 할 일 하기 바빴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산책도 늘 다음에, 다음에라는 기약없는 약속으로 미루고 미루다가 4~5일에 한번씩 가고 흐르는 물 아니면 잘 안마시는 녀석을 뒷전으로 하고 놀고, 어머니가 자릴 비우셨을 때 줘야하는 간식도 까먹고 주지 않아서 어머니가 오셨을 때 허겁지겁 먹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언제까지나 늘 곁에 있을꺼라는 허무맹랑한 익숙함 속에 속은 저는 결국 지금 이렇게 후회합니다. 하다못해 처음 아플 때로 돌아가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3기 말 판정을 받았을 때 조차 하루 1~2번 놔주는 수액 말곤 무관심했었고, 조금이라도 걸을 기력이 있을 때 나가자고 보채는 녀석을 늘 뒤로 한 채 '언젠가 조금 나아지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늘 뒷전이었습니다.

한번이라도 더 안아볼껄, 공 한 번이라도 더 던져줘볼껄, 한 번이라도 더 만져줄껄..

나를 알아볼 수 있을 때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걸 더 많이 얘기해줄껄이라는 후회밖에 남지 않습니다. 삭막한 세상 속에서 실소가 아니면 웃을 일 조차 없던 저의 생활에서 참 많은 웃음을 주었습니다. 엉뚱한 행동도, 그냥 쉬고있는 모습도, 으르렁거리는 모습도 녀석의 몸짓 발짓 하나하나는 저에게 있어 행복으로 새겨졌습니다.

그런 커다란 행복을 익숙함에 파묻혀 뒤로 하다가 막상 내일 당장 녀석을 떠나보낸다고 하니 그제서야 덜컥 겁이 납니다. 

무섭습니다.

다시는 그 눈망울을, 모습을, 향기를, 체온을 느낄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무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녀석을 편하게 해주기로 맘먹었습니다. 이 밤이 지나고 해가 뜨면 이별하는 녀석이 너무나도 미우면서 보내기 싫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은 이제 온전히 녀석 옆에서 보내려 합니다. 이제와서 이러는 제 행동이 미련스럽지만 지금에서라도 하지 않으면 분명 나중에 또 후회할거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옆에 있어주려 합니다.

포동아
형은 지난 9년이라는 시간동안 너를 참 많이 사랑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해준 적 없는 못난 형이지만 이런 나에게 왔다가 가줘서 정말 고맙다.
거기 가서는 아프지말고 행복하게 지내면서 먹고싶은거 다 먹고 재밌게 놀면서 기다려줘.
시간이 지나도 네가 준 행복들은 잊지 않을게
고맙고 사랑한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