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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ed away
게시물ID : animal_1448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파울로코엘료
추천 : 6
조회수 : 37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11/01 11:28:23
오늘 아침 초코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

사실 저는 초코가 귀찮았습니다
초코 똥 오줌 때문에 해야했던 계단청소도 달갑지 않았습니다
하도 짖어대는 탓에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불평소리도 싫었습니다

초코는
제가 군대가기 전에 할머니가 외로워 하실까봐
입양해온 새끼 강아지였습니다
할머니가 참 좋아하셨습니다
손바닥만 했던 강아지는 곰 새끼마냥 커졌고, 그 세월이 햇수로 9년입니다

초코도 사람을 좋아해서 그랬는지 유독 관심받는 걸 좋아했습니다
제가 담배피러 나가거나, 전화를 받으러 나가거나, 집을 나설 때
초코를 보면 보란듯이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마치,
"나 지금 밥 먹고 있어. 귀여워 해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비오는 날 배달을 시키면 초코때문에 배달하시는 분들이 2층으로 오지 못했고
비를 맞으며 1층으로 내려가서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비싼 돈 들여 설치한 마루의 샤시와 방충망을 죄다 못쓰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제가 먹던 음식을 늘 탐내서 한 입만 달라며 방방거릴 때, 반쪽 쪼개어 주면 허겁지겁 먹곤 했습니다
배부르지는 않았지만, 괜찮았습니다

그 세월이 9년입니다

그랬던 녀석이 어제는 식욕이 없었습니다
평소에 좋아하던 간식과 삶은 감자를 눈 앞에 두고도 몇 입 먹지 않았습니다
종종 구름이를 더 예뻐하면 투정하며 밥을 안먹던 녀석이라
좀 지나면 괜찮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할머니가 놀라며 저를 찾아 부른 곳으로 가보니
피를 토한채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허망하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는 귀찮던 계단청소 안해도 되고
배달시키면 현관에서 받을 수 있고
대문을 꼭 꼭 잠그지 않아도 됩니다
상상할 때는 편하고 좋을 것 같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앓던 이가 빠질거라 생각했는데
어금니였습니다
갑자기 빠진 그 자리의 입 안 공백이
생각보다 큽니다

초코야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할머니도 나도..
허망하다

맛있는거 많이 먹고
너무 짖지 말고
똥 오줌 아무곳에나 지리지 말고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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