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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아, 이젠 선택할 시간이란다.
게시물ID : animal_1771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ynousia
추천 : 13
조회수 : 706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7/02/27 20: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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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작년 가을부터였을 겁니다.
만고의 청명한 하늘 아래 눈부시게 쏟아지던 그 아름다운 빛들에 둘러싸여서는 온 동네가 각양각색의 잔치로 떠들썩할 때, 집사는 참으로 뒤숭숭하였습니다.
그런 자연의 볼거리, 인간의 축제들이 집사의 오감을 매 순간 즐겁게 하면서도, 정작 그런 순간을 함께 즐기지 못하는 야옹이를 생각하면 속이 상하였던 것입니다.
그저 일을 보러 간다거나 놀러 가면서 집을 비울 때면, 커다란 창문을 최대한 한 쪽으로 활짝 열어놓는 게 집사가 야옹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도리어 마음만 더 시릴 뿐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때쯤 해서는 야옹이와 같이 살게 된 지도 거의 한 계절 가까이 지나가고 있었고, 그래서 집사는 차차 마음을 가다듬으며 이것저것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원래가 길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던 녀석이었습니다.
순전히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상황으로 인해 지금 집사가 잠시 거둬들이고 있습니다만, 야옹이는 다시 그네들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순리일 것 같았습니다.
혹자는 이러한 생각을 두고, 어쩌면 야옹이를 위한다는 배려가 도리어 그 녀석을 위험에 빠트리게 되지는 않을까 우려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제까지 인간들의 세계에 밝혀진 고양이의 생태적 습성 등을 굳이 참고하지 않더라도, 환경의 급격한 전환이 야기할 다양한 부정적 측면들, 이를테면, 풍족한 먹이 감소, 급격한 추위 등으로 인한 생존 경쟁, 그리고 그에 따른 막대한 스트레스 등등이 이전부터 길에서 살던 녀석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욱더 암담하게 야옹이한테 드리울 것임은 명약관화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 고양이 관련 서적들에서 언급하듯, 고양이라는 동물은 집에서 키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혹시나 제 깜냥에 일말의 동정심 내지 배려가 솟구쳐 올랐다고 집 밖으로 내보내는 - 그것이 한시적이든, 영구적이든 -, 그런 바보 같은 짓 따위는 절대 하지 말라는 당부를 전면에서 부정하는 행위였습니다.
물론, 집사 또한 그 사실을 그저 눈 감으려고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 골방에서의 삶이 지금의 야옹이에게 행복할까?라는 질문엔 시나브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설령 한 발자국 물러나서, 물질적으로야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과연 그것을 진정 행복하다고 볼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배부른 생쥐가 되느니, 배고픈 고양이가 되는 게 낫다고 야옹이가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젠, 비록 여전히 뒷발을 잘 놀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씬 몸이 좋아진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오롯이 이 문제는 야옹이의 선택에 맡길 뿐이었습니다.
집사는 다만, 그 선택을 위한 제대로 된 준비에만 몰두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녀석이 길에서 태어나 산 게 대략 추정적으로나마 3-4개월, 그리고 우리 집 골방으로 들어와서 지낸 지가 대략 3-4개월이 지나가던 시점이었습니다. 
야옹이 자신이 앞으로 어디서 지낼 것인지 선택하기에는 지금이야말로 최적의 시기였습니다.
집사는 그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동등한 경험의 이력을 단순히 물리적인 날짜로만 기준으로 잡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것은 순전히 인간적인 해석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인바, 그것이 정녕 동등한 경험의 이력이 될 수 있는지, 또 그로 인해 야옹이의 중요한 선택을 위한 합당하고도 정당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집사는 감히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때쯤 해서 야옹이에게 직접 판단을 맡겨보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욱더 그런 결심과 용단이 서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그 순전한 물리적 시간의 등가는 야옹이에게서보다는 집사에게서 어떤 하나의 강력한 동기 부여로 작용하고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비루하고 어설픈 근거나마 만들어서 들먹이지 않으면, 집사는 감히 야옹이를 밖으로 내보낼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야옹이 본묘의 선택을 존중해야 할 시간은 마침내 다가왔고, 따라서 설령 그것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든 이뤄지지 않든 간에, 그 시간을 위한 오롯한 준비를 집사의 입장에서는 완전하게 마쳐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시원한 가을 저녁 날, 집사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매번 밥 주러 가는 길냥이들 간식을 싸고는, 저 한 귀퉁이에서 거의 쓸모없이 방치된 케이지를 다시금 집어 들었습니다. 
몇 달 만의 일인가, 참으로 싱숭생숭하였습니다.
그래도 이미 마음을 다 잡은 일이었으니, 차라리 빨리 처리해버리는 것이 속시원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 녀석을 케이지에 집어넣는 작업조차 원처럼 쉽게 되지가 않았습니다.
간만에 하는 것이라 집사가 서툴러서 그런지, 아니면 예전의 그 어둠 속 기억을 녀석이 도로 되찾아서 그런지, 그것도 아니면, 이 답답하게 빡빡한 케이지가 싸구려라서 그런지, 한동안을 그렇게 지리한 싸움으로 티격태격한 후 간신히 그 녀석을 케이지 안으로 집어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미 집사의 손에는 야옹이의 흥건한 피가 묻어버린 셈이었습니다. 
이젠 돌아볼 것도 없었습니다.
다시금 그 깊은 속울음이 터져 나오는 야옹이를 외면한 채, 밖으로 내달렸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길냥이들 밥터에 도착하였습니다.


오늘도 역시나, 길냥이들 가족은 차 밑에서 냥냥거리고 있습니다.
얼른 그 녀석들에게 밥을 풀어놓고, 옆에 놓아둔 케이지를 들여다봅니다.
야옹이는 여전히 계속 구슬프게 울면서 케이지를 팍팍 할퀴어대고 있고, 바로 옆에서는 길냥이들이 살짝살짝 눈치만 보다가 별다른 해가 없다고 판단되는지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밥만 먹어대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아예 인식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집사는 당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간 몇 개월이나 됐다고 이러는 거지? 설마 이 녀석들, 자기 가족들조차 누군지 다 까먹은 건가?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니, 이제는 차마 계속해서 번갈아 쳐다보기도 거시기한 상황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이산 상봉의 그 판타스틱하고 감동스러운 순간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듯 생뚱맞게 초연한 상봉은 차마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동안의 경험상, 주위에서 저렇게 울어대는 고양이가 있으면, 어미 길냥이를 비롯한 새끼 고양이들은 밥을 놓고서도 신경을 잔뜩 쓰고 경계 행위나 표시를 하는 것이 정상적 반응이었건만, 도리어 그런 것조차도 없으니 차마 이상할 노릇입니다.
야옹이가 갇혀 있어서 그런가?
하지만, 야옹이를 케이지에서 풀어낼 수는 차마 없었습니다.
어디로 도망갈지도, 또 무슨 일이 밀어닥칠지도 모르는 상황을 어둠 속에서 연출해내기엔 집사의 걱정과 우려가 너무나 컸던 까닭입니다.
지금은 서로가 알지도 못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으니, 풀어놓으면 더 큰 불상사가 발생할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계속해서 울어대는 야옹이를 옆에 두고 처음엔 무연하게 밥만 집어삼키다가 이제는 힐끗힐끗 쳐다보는 길냥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어미 길냥이었습니다.
새끼들은 여전히 무신경으로 밥만 퍼먹는 데 반해, 어미 길냥이는 자꾸만 야옹이 쪽을 돌아다보기 시작합니다.
무언가 낌새를 챈 건 아닐까?
집사는 극도로 정신을 집중하고 어미 길냥이를 살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어미 길냥이의 모습은 단순히 외부 침입자를 경계하는 태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다시 별다른 해가 없음을 확인하고서는 밥 먹는 데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미 길냥이가 그러거나 말거나, 야옹이는 이제 케이지를 뒤집어엎을 기세로 그 안에서 엄청난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집사는 더 참지 못하고 케이지를 곧장 집어 들고 후닥닥 집으로 뛰어들어왔습니다.


우리 집 골방에선 백열전구가 알알이 박힌 채 하얀 축복을 내려주는 듯 선명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야옹이는 다시금 자신의 그 평온함을 되찾아 잠들어 있습니다.
집사는 그런 야옹이를 보면서 복잡한 생각의 실타래를 점점이 풀어내고 있습니다.
어찌 됐든 한 가지 확실한 건, 야옹이를 당분간은 밖으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좀 더 다시 생각을 가다듬은 후, 좀 더 철저한 준비를 한 뒤 야옹이의 최종 선택을 기다려도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으로선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그렇게 개냥이짓으로 귀찮고 성가시게 하던 녀석은 어느새 제 마음속 울퉁불퉁한 모퉁이에서 깊숙한 뿌리를 내려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론 더 힘들어질지도 모르겠구나, 야옹아. 
다시금 그런 용기와 결단이 생길지, 그래서 행여나, 널 정말로 떠나보낼 수 있을지...
그래도 나는 네 선택을 존중할 거란다.
네가 선택한 것을 나 또한 선택할 것이므로.  



<한 동물을 사랑하기 전까지 우리 영혼의 일부는 잠든 채로 있다.   - 아나톨 프랑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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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blog.naver.com/ha_eun_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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