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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 비스무리한 녀석을 발견하였습니다.
게시물ID : animal_1866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ynousia
추천 : 0
조회수 : 83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8/26 08: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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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60

하루가 또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해는 뉘엿뉘엿 저편으로 마지막 붉은 빛을 쏟아내며 사위어가고 있었고, 집사는 오늘따라 조금 늦게 길냥이 녀석들을 만나 식사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언제 봐도, 게걸스럽게 먹는 그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냠냠 쩝쩝거리는 그 소리 또한 참으로 듣기 좋습니다.
어느덧 봄은 색색의 물감을 우리 주위에 뿌려대고 있었고, 그 알록달록한 세상 가운데서 우리네 생명은 그렇게 뭉쳐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시름없이 앉아 있노라니, 시나브로 해가 떨어지며 땅거미가 어둑하게 깔리고 있었습니다.
이젠 일어서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그네들 또한 배부르게 먹은 탓인지 집사 주위에서 널브러져, 몸단장을 하거나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습니다. 
딱 봐도 저네들은 집사에게, 집사야 오늘도 니 할 일은 무사히 끝났구나. 이젠 니 볼 일 보거라, 하는 식으로 데면데면하게 굴고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런 모습들이 버르장머리 없고 은혜도 모르는 녀석들처럼 보여 꽤나 속상했을 터인데, 이제는 그런 모습조차도 그네들의 인정 내지 배려로 보일 만큼 우리는 돈독해져 있습니다.
소위 고양이와 함께 하는 인간을 '집사'라고 하는데, 그 '집사' 중의 하나인 이 집사는 종종 그 '집사'의 의미를 망각해버릴 때가 많았음을 지금에 와서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로만 '집사', '집사' 그러지, 정말로 집사가 '집사'로서 고양이와 함께 지냈는지 톺아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느니, 만물의 척도라느니, 인간을 여러 동물 가운데서 고귀한 인간으로 드높일 때, 우리는 다른 동물들을 아래로 떨궈내고 있었음을, 그리고 그런 관습적 사유와 행태가 이 집사에게도 여전히 각인되어 실행되고 있었음을, 집사는 고양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종종 그 불편하고 불안한 감각으로 감지하곤 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고양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러한 감각들을 조금은 자연스럽게 떨어버릴 수 있게 되어, 집사는 그 특유의 인간중심주의랄지, 인간주의랄지 하는 이데올로기들을 조금은 버려두고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딱 그만큼 집사는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더욱더 만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녀석들끼리 뒤풀이를 하도록 내버려 두고, 집사는 어느덧 어둠이 사락거리며 떠돌고 있는 골목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습니다.
무언가가 저기 어디쯤에서 움직이는 듯했습니다.
집사가 사는 곳과 바로 맞댄 빌라 뒤꼍으로 나 있는, 매우 협소한 통로 그 끄트머리에서였습니다.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그쯤 걸린 채, 이젠 자기를 쳐다보는 집사 때문에 얼어붙은 듯 사뭇 그 움직임조차도 놀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저, 종전의 움직임이 남긴 그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주위를 살금거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집사는 본능적으로 그쪽을 향해 조심스레 다가갔습니다.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대는 야옹이를 잃어버리고 난 뒤 유감없이 수행되는 집사의 반복 패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이런 패턴에 속절없이 당했었던가 깨닫는 순간조차도 지금은 잠시 버려두고, 집사는 또 다시 그 무망한 기대로 혹시나? 하며 다가갔던 것이었습니다.
아.
분명한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그 녀석은 야옹이와 비슷한 색깔의 삼색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색깔만 아스라이 분별할 정도로 다가갔을 때에도 이미 그 색깔의 주인은 달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집사 또한 곧장 뒤쫓았습니다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끄트머리에서 꺾인 저 어둠 속으로 그 녀석은 이제 전혀 보이질 않았습니다.
야옹이였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돌아오다가 다시금 돌아가서 주저하며 기다려보길 몇 차례, 하지만 그 미련은 매번 허탕일 것이 뻔했고, 그래서 그것은 또 다시 뻔한 집착으로 매번 묻힐 뿐이었습니다.
한 번 놀란 녀석이 허투루라도 그 날 다시 되돌아올 리는 없었습니다.
차라리, 이젠 그저 조용히 집으로 되돌아가는 게 현명하리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되돌리면서, 집사는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하였습니다.  
어차피 그 녀석이 야옹이라면 아직은 살아있다는 말이었고, 또 다행스럽게도 이 근처 어딘가에서 숨어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그 언젠가, 아니, 이제는 향후 멀지 않은 앞날에 곧, 그 녀석을 다시 볼 확률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말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설령 그것이 야옹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집사는 더 이상 실망하지 않기로 다짐하였습니다.
이미 야옹이를 잃어버린 지 2-3주가 지나가고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사실 더 기대할 것도, 그래서 더 실망할 것도 거의 남아 있질 않은 형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엔 기필코 그 녀석이 야옹이이진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집사는 지레 접어버릴 순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한 건 아니지만, 거의 그 녀석의 색깔이 삼색이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삼색이는 최소한 이 동네에서만큼은 매우 희귀한 색깔이었습니다.
집사가 야옹이를 잃어버리고 그 녀석을 찾아 동네방네 다 돌아다닐 때, 삼색이를 띤 고양이는 야옹이 어미밖엔 보질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종종 집사를 뒤따라오던 야옹이 어미를 집사는 야옹이를 찾은 것인 양 착각하며 기뻐하던 해프닝 또한 벌어지곤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그 녀석이 정말로 삼색이었다면, 조금은 더 희망을 가질 여지가 충분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ha_eun_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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