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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아, 이젠 너를 놓아줘야 되는 거니?
게시물ID : animal_1868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ynousia
추천 : 3
조회수 : 58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8/30 22: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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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63

시간이 지나가면서도 집사의 고민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야옹이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또 설령 기억한다고 하더라도, 이제 이미 적응해버린 곳이 좋다고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도 굳이 다시 데려와야만 하는가?
그러지 않는 게 낫겠다고, 한때나마 집사여도 좋은 집사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니, 일단은 야옹이에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 녀석의 아지트는 추적해낼 수 있었습니다.
저쪽으로 이어진 밭 너머 첫 번째에 보이는 폐가 안에서 그 녀석은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폐가가 대문까지 꼼짝없이 잠겨있는 통에 어떻게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이 막혀 있어서, 그 문 밑으로 녀석이 기어들고 기어 나가곤 하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로부터는 밥을 미끼로 꾸준히 녀석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날 이후로 계속해서
이 녀석은 집사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하였습니다. 
그 문 밑으로 간신히 밥과 물을 들이밀면, 귀를 앞이나 옆으로 숙이고선 몸을 착 아래로 가라앉힌 채 하아악, 하아악, 거리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 녀석으로부터 정말 간만에 들어보는 하악질이었습니다.
새끼일 때 데려다가 아픈 곳 치료하면서 들은 적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순둥순둥하던 녀석이 경계를 삼엄하게 한 채 하악거리니까 집사는 그 모습이 여간 생경하면서도 우습지가 않은데, 그래도 그 정황상 차마 웃지는 못하고, 야 이 자식아, 밥이나 먹어라, 얄궂게 핀잔을 주고는 멀찍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아직도 시간은 많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도 그렇게 녀석에게 밥을 들이밀면서, 몇 가지 수작질을 하여 보았습니다.
최대한 집사의 이목구비가 다 보이도록 대문 아래에 납작 엎드려서 그 녀석과 정면으로 째려보기도 하고, 목소리를 이리저리 바꿔가면서 신분조회를 해보기도 하고, 그 녀석이 최대한 앞으로 좀 나와서 집사와 접촉할 수 있도록 먹이를 끌어당겨 보기도 하고,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 녀석은 자신의 밥만 들입다 파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밥 먹기 전에는 무슨 괴생명체 보듯 하고, 밥 먹을 땐 아예 무생명체 대하듯 하고, 밥 먹고 난 후엔 저 뒤로 그냥 돌아가 버릴 뿐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시간은 가고, 집사는 또 그렇게 하루하루 생각을 가다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젠 한때나마 집사였던 집사로 남는 게 맞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전직 집사로 지칭될 순간이 다가오는 한 인간에게도 여전히,
그 녀석은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머리털 나고 그렇게 인간 외 다른 동물에게 애정과 관심을 쏟아부은 적이 없었습니다. 
길냥이 새끼 시절부터  최선을 다해서 그 녀석을 돌봤다고 나름 자평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비록 목숨은 구했지만, 그 녀석은 평생 몸이 성치 않게 되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한때의 실수로, 그 녀석은 급격한 환경 속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아야만 하였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 동안 녀석이 겪었을 숱한 고난과 역경은 감히 쉽게 넘겨짚을 수 없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녀석은 이제, 예전의 무수한 추억들, 집사와 함께 했던 그 시공간들을, 아예 잃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홀로 남은 집사만 무참한 기분에 휩싸여, 내가 여태껏 멀 했던가? 연신 고개만 떨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과 관심을 주려고 무던히도 노력하였으나, 결국에 돌아온 건 비참과 상실뿐이라는 생각에, 연신 자괴감만 들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럼에도 그 녀석은 여전히 살아남았고, 아직도 살아나가고 있었습니다. 
전직 집사 주위에서 그렇게 가끔 간섭과 돌봄을 받겠지만, 옛 것은 다 버리고 새로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게 오히려 집사에겐 더 복된 일일 수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그 녀석이 집사를 못 알아봐 준다는 서운함과 서글픔에 새로운 그 삶을 부정하거나 폄하하는 짓은 어리석을 뿐이었습니다.
새로운 그 녀석의 삶에 축복은 못해줄망정, 초를 쳐서야 되겠는가 싶었습니다.
집사 자신이 품어온 의지와 그에 따른 과정이 그 녀석에게도 일정 부분 당당할 수 있다면, 오직 그것만으로 족할 따름이었습니다.
그 결과나 현상은 이미 집사의 영역 너머에 있다고, 그렇게 위안 삼을 따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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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blog.naver.com/ha_eun_love/221076259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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