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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아, 이제 그만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게시물ID : animal_1870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ynousia
추천 : 16
조회수 : 730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7/09/02 12: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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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65
틈이 나는 대로 그 녀석을 찾아갔습니다.
사실, 그 녀석이 거주하는 곳 근처가 매번 시가지를 나갈 때면 거쳐가야 하는 지름길인지라, 굳이 억지로 찾아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지나가다가 그 녀석이 보이지도 않고 폐가만 휑뎅그렁하게 서 있으면, 이 자식이 어디 마실 나갔나, 어디 처박혀 잠이라도 자고 있나 순간 잡생각이 떠오르다가도, 이내 도리질 치며 지워버리곤 하였습니다.
이럴 때의 부질없는 상상은, 집사만 손해일 뿐이었습니다.  
또 어쩔 땐, 그 대문 앞 풀밭 길가에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가, 집사가 내려오는 걸 보고선 후닥닥 도망가기도 하였습니다.  
역시나 이럴 때도,
그러거나 말거나, 집사는 괘념치 않기로 했습니다.
그 녀석의 진심은 정녕 그게 아닐 수도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그렇게 몇 주가 또 흘러갔습니다.
매번 밥 주는 시간이 비슷하다 보니까, 이 녀석은 이제 그쯤 되면 대충 집을 지키고 있다가 밥 달라고 보채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 닫힌 대문 뒤에서만 울어댑니다.
약삭빠른
녀석.....
사실, 그 녀석을 좀 더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을까 싶어, 한때는 어떻게 따고 들어가 보려 작정도 해봤고 또 시도도 해봤습니다만, 결국 포기해버렸던 대문이었습니다.
그런 걸 죄다 알고 있다는 듯, 이 녀석, 그 문 뒤에서 한사코 앞으로 나올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집사 또한 날을 받아놓고 나왔습니다.
널 반드시 옆에 두고서 보겠다. 그리고 사정이 허락된다면, 널 만져도 보겠다.,
그렇게 다짐하였습니다.
보통, 집사는 길냥이들 만지는 걸 지극히 꺼리는 습관이 있는데, 이는 길냥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었습니다.
먼저는, 집사가 만지고 싶다고 해서 만짐을 쉽게 허락해 줄 그 녀석들이 아니었거니와, 나중에는 그렇게 해서 사람과 친해지거나 편해지게 되면 녀석들의 삶만 더욱더 힘들어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야옹이를 들이고 나서부터는, 더욱더 그 녀석들 만지는 걸 꺼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찌 됐든, 이번만큼은 내게 만짐을 허락해야 될 것이다, 이 자식아.
내가 벼르고 왔거든?
사실, 엊그제부터 이 녀석, 집사가 먹이를 유도하는 대로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비록 그 망할 대문 앞에서는 곧잘 뒤로 후퇴하긴 하였습니다만, 그래도 예전과 비교해 볼 때 참으로 만족할 만한 양상으로 발전해 있었습니다.
좀 있으면 이 녀석, 그 대문도 넘어올 기세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집사는 마침내 날 잡고 그 녀석에게 다가들었던 것입니다. 


처음엔, 어제와 비슷한 행동양식을 보여주었습니다.
묘지상정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은 먹이도 많이 가지고 나왔습니다.
한 번은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먹게 놓아두고, 그 끊일 수 없는 유혹과 갈망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안 먹으면 안 먹었지, 한 번 먹게 되면 두세 개는 기본으로 먹는, 야옹이의 특식을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역시나 두 번째에도 겁나게 울어대기 시작합니다.
아직까지는 배가 많이 고플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이 가장 시장할지도 몰랐습니다.
그것을 녀석 앞에다 흔들어대면서, 다시금 대문 앞으로 유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문 앞까지 오고 나서도 망설이고 주춤하길 수차례, 그러니 집사 또한, 이렇게까지 해서 녀석을 봐야 되나, 하는 회의감과 죄책감이 물밀 듯이 밀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아, 그래, 일단 두 번째도 후퇴하자., 
군침을 흘리면서도 차마 앞으로 나서지 못하
는 그 녀석에게, 집사는 얼른 먹이를 건네주었습니다.
름 받아서는 또 저쪽으로 가는 꼴이, 이렇게 해서는 오늘도 허탕을 칠 듯하였습니다.
그 녀석의 밥 달라는 애교짓이며, 교태 섞인 소리가 도저히 집사를 제정신으로 붙들어 매질 못하였던 것입니다.
아니다, 정신 차리자!
집사야, 정신 차려!
다시, 세 번째 시도였습니다.
이젠, 녀석도 조금씩 포만감을 느낄 정도였고, 그러면 여러모로 집사의 계획이 더 힘들어질 것이었습니다.  
강단지게 마음을 먹고, 그 녀석을 다시금 유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문 앞으로 나오지 않고는, 정녕 이 먹이를 내어주지 않으리라!
그 녀석과 또다시 줄다리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녀석은 결단코 나올 생각이 없어 보이고, 집사 또한 결단코 줄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 자연히 이 사태는 지리한 장기전으로
옮겨가는 듯했습니다.
그래, 이 자식아, 누가 이기나 보자. 
녀석은 아직도 배가 출출한 모양이었습니다.
애써 먹이를 모로 두는 척하지만, 여전히 포기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은 또 유감없이 흘러가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이런 치졸하고 유치한 짓을 저지르는 집사가 원망스럽겠지만, 야옹아. 
한 번만 나와보렴, 우리 서로 쳐다보면서 번듯하게 대화 한 번 해보자. 응? 
밖에서는 항상 도망 다니고 쫓아다녔을 뿐이고, 안에서는 항상 이놈의 대문 때문에 우리는 여태껏 제대로 쳐다본 적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녀석도 마냥 기다리기 힘들었던가 봅니다. 
조금씩 이상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전에는 매우 당연시됐던,
유연하달까, 순응한달까 하는 반응이었습니다. 
녀석이 먹이를 유도하는 대로 슬슬 기어 나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고는 대뜸 먹이를 물고 대문 앞에서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드디어, 녀석이 제 바로 옆에 앉아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감격도 잠시, 그 녀석이 눈앞에 바로 다가들자, 가슴이 저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뒷발을 잘 놀리지 못하던 녀석이 밖에서 어떻게 잘 지내나 했는데, 역시나, 지금 눈앞에서 보니까 다리를 잘 쓰지도 못한 채 절고 있습니다.
녀석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 먹이를 허겁지겁 쑤셔 넣고 있습니다. 
마음이 아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틈틈이 집사가 밥을 준다고는 했어도, 정작 이 녀석이 다 먹었는지는 지극히 회의적이었습니다.

요새야 정기적으로 만나지만, 이전에는 녀석이 있을 만한 시공간에 놓아두고 올 때가 더 많았었고, 그러다 보니 종종 다른 녀석이 먹고 있는 걸 목격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하물며,
그 이전에는 이 녀석 혼자서 먹이를 다 해결해야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 몸으로, 밖에서 사냥이나 제대로 했겠나 싶은 생각에, 그저 집사는 고개만 떨굴 따름이었습니다. 
동안 별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내다가, 녀석을 이렇게 보고 있는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별의별 감정이 다 떠올라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집사의 이른바 이기적인 방어기제 때문일 것이었습니다.
지금 보며 느끼는 이 순간의 감정을, 여태껏 느끼면서 살아올 수는 도저히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야옹아, 나를 용서해주렴... 
녀석은 이제 밥을 다 먹고, 집사를 탐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분명히 도망가는 게 이럴 때의 행동 패턴이었는데, 역시나 이상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이 녀석, 이내 골골, 골골, 예의 그 골골송을 온몸으로 울려내더니, 순간, 집사의 품으로 파고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골골대는 떨림은, 아마 지금까지 녀석에게서 느낀 가장 진하고도 깊은 소리였을 겁니다.
그것은 정녕 어떤 의미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분명히 이 뻔뻔하고 못난 집사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있었다는 소리였습니다.
머리로 피가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 깊고도 진한 소리를 집사의 품 안에다 온 몸으로 적셔대는 녀석을 보며, 집사는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 야옹아, 
우리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무던히도 힘없이 들리는 그 녀석을 안고 돌아오면서, 하나의 떨림과 또 다른 떨림이 공명하는 순간순간, 집사는 온몸에 불 지핀듯 타고 오르는 피를 물고 맹세하였습니다.
너가 죽든, 내가 죽든, 우리 둘 중에 하나가 죽을 때까진, 절대 떨어지지 말자꾸나, 야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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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blog.naver.com/ha_eun_love/221081529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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