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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살 집을 구했습니다.
게시물ID : animal_1980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ynousia
추천 : 0
조회수 : 136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2/25 11:5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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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집사의 눈에 딱 띄는 집이 없습니다.

어떤 중개사분은 그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 이 집이야말로 내가 살 곳이로구나' 마음에 딱 박혀 들어온다는데, 집사는 지금껏 무수한 집들을 돌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아 이 집은 물 새는 게 정말 문제구나', '아 이 집은 다 좋은데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구나' 따위의 씁쓸한 안타까움 내지 아쉬움만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간신히 어떤 집을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그 집은 9평 정도의 1층 다세대 빌라였는데, 80-90년대 지어져 이미 낡을 대로 낡아버린 집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습기나 결로가 맺혀 드문드문 벽지를 타고 흐르고, 그래서 군데군데 곰팡이가 슬어 꺼멓게 도드라져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집이 물이 새거나 하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눈을 질끈 감고, 그 집의 다른 부분들을 돌아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주거공간을 넓히고자 굳이 싱크대를 베란다로 뺀 것도 별로 마음에 차지는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 사는 마당에 주거공간이 그리 넓을 필요도 없었거니와, 베란다까지도 집 안의 영역에 포함되면서 온갖 외부의 한기와 습기 따위가 아무런 제재 없이 곧바로 집안에 침투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좁아터진 베란다에 주방까지 옮겨가다 보니, 그쪽을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몹시나 신경 거슬리는 일이 될 게 뻔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집도 별로 마음에 안 들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이 집이 집사의 마음을 뿌리치기 힘들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단연 채광이었습니다.

여태껏 둘러봤던 집들 중에서 가장 밝아 보였습니다.

특히나 큰 안방에 달린 시원시원한 창문들 사이로 거침없이 쏟아지는 햇빛을 보고 있노라면, 다른 집은 이미 마음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햇볕에 정통으로 직면하여 작열하듯 휘몰아치는 광선들의 무수한 어울림을 보고 있노라면, 이미 집사의 마음은 시나브로 기울어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창문들은 턱이 낮고 넓어서 야옹이가 얼마든지 기어올라가 일광욕을 즐기기에 적합한 구조로 달려 있었습니다.

이전에 살았던 그 골방 집이 연상될 정도로, 이 집은 채광이라든지, 창문의 구조라든지 하는 모든 부분들이 집사의 마음에 쏙 들었던 것입니다.

창문을 바라보고 섰노라면, 멀리로는 탁 트여 저 하늘이 끝 간 데 없이 다 보이고, 당장 앞으로는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아늑한 시공간을 꾸며내고 있었습니다.

야옹이가 좋아할 것 같았습니다.

집사는 이 집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집사는 이 집을 계약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하늘거리듯 군무를 추며 떠돌던 그 햇빛들의 총체적 율동에 자리를 내 주지는 않았습니다.

집사는 다른 부분은 좀 감수하고서라도, 이 햇빛과의 어울림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세가격이라든지, 담보 잡힌 게 없다든지 하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야옹이가 과연 이 집을 좋아할 것인지 조심스레 두려움과 희망을 동시에 품어봅니다.

매일 집 안에서 잠만 처자던 녀석이 이 집을 두고선 제발 그러지 않기를, 창문을 통해 저 밖을 꿈처럼 품고 앉아 일광욕을 즐기게 되기를, 찬연한 햇빛이 비치는 안방에서 우리 함께 더불어 뒹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바라 마지않습니다.

출처 https://blog.naver.com/ha_eun_love/22181800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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