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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아, 너는 역시 빛의 자식이다!
게시물ID : animal_1980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ynousia
추천 : 0
조회수 : 163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2/25 18: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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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어느덧 이사일이 다가왔습니다.

아침부터 휘몰아치는 눈발로 땅은 차갑게 얼어붙고, 하늘은 뻥 뚫려서 온종일 새파랗게 얼어버린 조각들을 뭉텅이로 뿌려대고 있습니다.

올겨울 정말 간만에 눈다운 눈이 내린다고 다들 호들갑인데, 집사는 전연 반갑지가 않습니다.

이사만 더 힘들어질 따름이었습니다.

간신히 이삿짐을 옮겼습니다.

물론, 야옹이도 이 대이동을 피해 갈 수는 없었습니다.

나름 불가피한 반응, 이를테면 낯선 시공간에 담겨 계속 야옹거리고 신경질을 부린다든지 하는 곤욕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짐을 옮기는 가장 마지막 순간에 즈음하여 그 녀석을 이불 밑으로부터 꺼내 케이지에 담고 이동하였습니다만, 그럼에도 그때부터 이 녀석은 계속 앵앵 울어대기 시작합니다.

집사의 신경을 긁어대면서 울고 있는 양이 또 쉬이 그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머, 지금은 어쩔 수 없구나, 야옹아. 이 집이 너에겐 결코 좋은 보금자리는 아니니까 말이다. 낮이나 밤이나 어둡기만 하고, 그래서 늘 너는 딱히 할 일도 없이 뻗어서 잠만 자지 않았었냐? 그러니 살은 살대로 찌고. 어디 그뿐이냐? 햇빛도 제대로 쬐지 못해서 피부병까지 생기고 말이야, 그러니 이사는 꼭 해야 된단다. 사실 나는 이렇게까지 이사하는 것도 마냥 귀찮기는 하다만, 그래도 너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 이젠 이곳을 벗어나자꾸나. 이제는 너한테 더 좋은 집으로 가니까, 조금만 참으렴, 야옹아. 거기 가선 신나게 뛰어놀고,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경치도 조망하고, 쏟아지듯 짓쳐 들어오는 햇빛도 쬐면서 우리 넉넉한 삶을 꾸리자꾸나.

집사는 녀석에게 대충 이렇게 두런거린 다음에, 또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이사를 하고,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시나브로 야옹이도 적응을 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엔, 그동안 누가 어둠의 자식이 아니랄까 봐 햇빛 비치는 창가 쪽으로는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집사만 공연히 걱정과 불안감이 엄습하여 그 녀석을 창가 쪽에다가 강제로 앉혀두기도 하고, 그럼에도 완고히 뿌리치고 저 뒤꼍으로 도망가는 녀석 때문에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에 그만, 저 자식을 때려줄까 보다 입술을 앙다물고 종주먹을 들이밀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집사 마음대로 안 되기는, '집사'라는 직분이 말해주듯, 그것은 언제나 집사의 숙명일 따름이었습니다.

주인, 니 마음대로 해라.

집사는 새삼스레 주인이 '주인'임을 자각하고, 굳이 마음속에서 얽히는 복잡한 심경들을 그대로 내려놓았습니다.

어차피 지 꼴리는 대로 하는 게 주인의 일일진대, 집사가 이런저런 신경을 쓴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잠만 처자느라 하는 일 없이 조용하던 야옹이 때문에 언감생심 한동안 주인인 줄로만 착각하고 살던 집사는, 본연의 직분을 다시금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럴 땐 그저, 집사는 인간 세상에서 제 할 일로 돌아와 바삐 돌아다니면 그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지던 맑은 오후였습니다.

무수한 빛무리들이 창문을 타고 넘으며, 찬연한 향연을 선사하는 가운데, 집사는 역시나 다른 일로 분주하였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인인 야옹이는 저 구석탱이에 깔린 이불 밑 어둠 속으로 기어들어가 이전 집에서 하던 행태 그대로 똑같이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집사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럴 것이라, 그것도 오늘 하루 내내 또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라, 이 녀석이 언제 일어났는지, 집사 옆에서 킁킁 코를 문대고, 몸을 길쭉이 뻗으며 약소한 몸 떨기 운동?을 시작합니다.

그러고는 좌우를 두리번거린 다음, 창문을 향해, 그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빛을 쓸어 담으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몇 번이고 조심스럽기를 야옹이답게 시전한 다음, 녀석은 드디어 창문으로 올라섰습니다.

이전에는 별것도 아닐 이러한 광경이 거의 2년 만에 일어나다 보니, 집사는 참으로 황망하고 감격하였습니다.

짜식이, 역시 어둠의 자식으로서 영영 살 생각은 없었나 봅니다.

야옹이의 한 올 한 올 쓸린 털에 쏟아붓듯 파고드는 빛결이 참으로 아름답게 불타올랐습니다.

그 천연의 색감이 함께 조응하며 이루어내는, 이 별것 아닌 자연의 기적으로부터 집사는 참으로 감사하고 감동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순간을 놓칠세라 집사는 연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역시, 야옹아, 너는 빛이 있어야 사진빨이 더 잘 받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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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blog.naver.com/ha_eun_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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