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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순이(젓소) 하늘나라로 떠난지 10년......녀석을 기억하며
게시물ID : animal_434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몬테크리스
추천 : 16
조회수 : 66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4/27 23:57:51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로 내려간 1987년,

사업에 실패하고 빈손으로 부모님과 도망가듯 내려간 시골이었다.

빈집을 빌려서 살고, 농사를 짓지않은 밭을 빌려 콩이며 깨, 고추등을 심어 수확을 내어 처음으로 키우게 된 가축은 다름아닌 젓소.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송아지를 그당시 15만원인가 하는 가격에 아버지는 동네분에게 샀었다.

형제가 없는 나는 강아지보다도, 고양이보다도 송아지를 내생애 첫 반려동물로 맞이했다.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주셨다.

아주 간단한 이름, 돈많이 벌게 해달라고 돈순이로 지었다.

칡넝쿨과 수박껍데기를 기가 막히게 좋아했던 내 친구.

덩치도 나와 비슷했기에 나는 이녀석을 둘도없는 친구이자 동생으로 여기고 얼마나 이뻐했는지......

전학을 자주 다녔던 터라 내성적이었던 나는 수업이 끝나면 신나게 집으로 달려와 이녀석을 이끌고 산이며 들이며 안다닌 곳이 없었다.

낚시를 가도 같이다녔고, 혼자 눈사람을 만들때도 같이 다녔다.

이 녀석은 내말도 잘알아 들었다.

돈순아~ 부르면 메~하고 대답도 잘해주었고,

한참을 뛰어 놀다가도 집에가자~하면 나보다도 먼저 펄쩍펄쩍 집으로 향하는 똑똑한 녀석.

그 어린 녀석이 나보다도 먼저 커서 나중엔 내가 끌려다니곤 했다.

나보다도 더 대접받은 집안의 장녀(?)였기에 먹을것도 나보다 많이 먹고 힘도 장사였다.

그러더니 결국 나보다도 먼저 시집을 가게되었고,

10개월 뒤엔 나에게 조카녀석도 안겨주었다.

첫조카는 코가 유난히 빨간 공주님이어서 루돌프라 이름지었다.

이제는 나보다 4~5배는 커져버린 돈순이지만 여전히 나에겐 가장 친한 친구였다.

돈순이와 루돌프, 그리고 나는 사람과 동물이 아닌 친구였고 형제였으며 오누이였다.

 

그렇게 몇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돈을 모으신 아버지는 땅을 조금씩 사셨고,

그땅에 가장 먼저 지은건 집이 아닌 축사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축사는 돈순이와 그 자손들, 그리고 다른 곳에서 데려온 젓소들로 조금식 채워져갔고,

더 시간이 흐른뒤엔 축사옆에 우리집도 지을수 있었다.

아버지가 지은 이름데로 돈순이는 우리집에 돈을 불러주는 복덩이였다.

다른 젓소들에 비해 우유도 많이 나왔고,

송아지를 낳으면 그야말로 살림밑천이라고 할수있는 암송아지만 낳았다.

더구나 우리 목장의 터줏대감이기에 젓소들끼리의 권력다툼도 가볍게 모두 정리하였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도 정말 잘 들었다.

그사이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까지 진학하였고,

입영통지서를 받고, 막거리를 나눠마시며 돈순이와 루돌프와도 작별인사를 하고 군입대도 하였다.

 

첫휴가를 나온날,

부대와 집이 거리가 멀어 집에 도착할때즈음엔 이미 어두운 시간이었다.

시골이었던터라 버스는 이미 끊겼고,

나는 이웃마을까지 오는 버스를 타고 집까지 약 5KM를 걸어가야했다.

가로등도 드문드문 있기에 어둠운 길을 조심조심 걸어가야했다.

골목을 지나 축사를 끼고 집쪽으로 방향을 틀어 걸어가는데 소의 눈빛이 보였다.

그리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이름을 부르는듯 음,음~메~

돈순아 혹시 너니?

그 눈빛은 나의 발걸음을 따라 집앞까지 왔고 역시나 나를 반겨주는건 돈순이였다.

몇개월만이니?응? 보고싶었지? 나도 너 많이 보고싶었어.

손발이 꽁꽁 얼만큼 추운 겨울이었지만, 돈순이의 목덜미는 언제나 그렇듯 따듯했다.

어릴때처럼 귓덜미를 긁어달라고 고개를 비틀어 나에게 부비부비를 하는 녀석.

그리고 이어서 눈물을 흘리며 문을 열고 나를 맞아주는 어머니.

아~여기가 내 집이구나.

 

제대후 대학에 복학하고, 이런저런 일도 겪으며 상처도 받고 좌절도 겪으며 어느덧 졸업반이 되었다.

부모님이 계신 시골과 학교는 고속버스로 4시간 가량이 걸리기에 자주가지는 못했다.

레포트와 과제에 치이던 어느날, 무뚝뚝한 성격의 아버지에게 웬일로 전화가 왔다.

이번 주말엔 집에 내려오지않을래?

네, 바빠서 못찾아뵈었는데 이번주엔 갈께요.

돈순이와 루돌프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두부를 커다란 봉지에 담아들고 신이 나서 집으로 갔다.

오늘도 돈순이는 나를 반겨주겠지.

그러나 돈순이는 보이지 않았고, 루돌프가 만삭의 몸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아마 운동장 어딘가에서 볓집을 이불삼아 쿨쿨자고 있겠지.

이제는 제법 목장이 규모가 커서 축사뿐 아니라 소들이 뛰어놀수 있는 운동장과 어린 송아지들을 따로 키우는 작은 축사까지 생겼다.

돈순이는 우리집의 복덩이였다.

단잠을 잔후 아침식사를 마치고 돈순이를 찾았다.

웬인인지 그때까지도 운동장에 누워있는 녀석.

그런데 돈순이의 옆에서 아무말없이 녀석의 등을 쓰다듬고 계신 아버지.

가까이 가보니 아버지의 어깨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돈순아...... 오빠왔다 돈순아, 일어나봐 돈순아......

내가 뒤에 와있음을 알고 아버지는 얼굴을 가리며 애써 먼곳을 응시하신다.

 

"돈순이 방금 하늘나라로 갔다. 미안하다. 수의사도 몇번왔는데 못버티는구나."

......

......

......

 

그자리에 주저앉아 돈순이의 목덜미를 끌어않고 나는 오열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시선을 돌린채 아무말이 없으셨고, 잠시후 어머니도 오셔서 내 어깨를 안아주셨다.

한시간 가량을 아무도 말없이 흐니끼다가 아버지는 트랙터를 끌고 나오셨다.

집앞 마당에 이것저것 잡동사니가 모여있는 자리를 정리하고 그곳을 깊게파서 돈순이의 무덤을 만들었다.

집앞 뒷동산에서 한창 피어있는 봄꽃들을 잔뜩꺽어 돈순이의 꽃이불을 만들어주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는 조용히 기도를 했다.

잘가 돈순아, 마지막을 지켜봐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정말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충무공 탄신일 하루전인 4월 27일.

10년전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누이, 그리고 우리집안의 복덩이 돈순이를 그렇게 보냈다.

강아지처럼 고양이처럼 귀엽진 않지만,

반려동물이라는 단어조차 들어보지 못한 시절이었지만,

그렇게 돈순이는 나에게 커다란 행복과 사랑을 주고 떠났다.

 

10년전인데도 왜이렇게 니 얼굴이 생생하니 돈순아?

잘지내지?

난 아직도 니 생각 매일하는데?

너를 따라 내가 갈때 또 마중나와줄거지?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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