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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스포] 절벽 / 꽃, 아케미 호무라
게시물ID : animation_3079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vangelion
추천 : 2
조회수 : 31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2/08 00:15:09


절벽


 호무라 너는 단절된 벽을 아래서 올려다본 적은 없었어. 굳이 내려간 적도 없었지만, 다다를 수 있다는 여부조차도 너 스스로 모르는 듯 했어. 절벽의 끝, 정원의 낭떠러지는 언제나 빛이 닿지 않는 심연의 부분이었고, 동시에 너에겐 떨어지는 곳이었지만 다다를 곳은 아닌 듯 했으니까. 이따금 호무라는 정원에서 춤추는 너는 하늘을 내려보듯이 춤췄고 땅을 올려다보듯 노래했던 것 같아. 어디에도 닿지 않는 것만 같은 두 시선의 차이는 너에게 어울렸을지 아직은 스스로도 잘 모르는 듯 해서 슬퍼보였지. 그 옆에서 무서운건지 부들거리는 큐베도 안타까웠지만, 너의 슬픔은 절벽 아래만큼 끝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절벽 그 아래 어두운 끝에서 올려다보는 너도 상상이 가지 않지만, 그곳을 떨어지는 너의 심정도 사실 잘 모르겠어. 어째서 너는 그렇게 웃을까, 그리고 그렇게 웃을까.

 호무라 너는 그 절벽 같았던 것 같아. 그 이후 너는 그 정원과 닮아보이기도 했고. 바람꽃 가득한 정원은 언제나 바람 한 줄기에 지고 있었듯이,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하는 피안화처럼, 검은 장미 가득한 은빛 정원은 너와 같았어. 그리고 너는 모든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그러했던 것 같아.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괜찮은 사이는 아니었어. 실은, 그게 너의 본질이었으니까. 넌 언제나 그랬어. 하지만 그렇기에 호무라 너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겠지. 세상을 돌리듯이, 피안화처럼 잎조차 져버리며, 바람꽃처럼 영원을 신뢰하지 않듯이. 너는 그 속의 세상과 너만을 의심하며 신뢰해왔지.

 너는 다시 절벽에 찾아왔고 정원에 찾아왔어.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은 의자 하나만이 남아있어. 호무라 너의 것일까. 꽃을 아무렇지 않게 짓밟으며 너는 의자에 앉아. 져버린 바람꽃은 다시금 피고 있었던 것 같아. 야생화를 길들여 정원에 심은 너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잎으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피안화를 무수히 심는 너의 마음은 어땠을까. 누구를 그토록 증오하고 싫어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째서일까.

 다시금 너는 춤을 추기 시작해. 의자는 스르르 무너져서 절벽 너머로 떨어지고 있어. 소리는 나지 않아. 그리고 음악은 흐르지 않아. 춤만이 있고, 다만 바람은 불어. 어떤 음악이 어울릴 모르는 춤이 이어지고 있었고, 손짓 끝에는 도마뱀 하나만이 하늘을 떠돌아. 그 보랏빛은 너 스스로도 아름다워 보였나봐. 슬그머니 웃음이 떠올랐어. 너는 너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알았을까. 달빛 밑의 아름다움을 알았을까. 반쪽으로 깨진 달이 반쪽으로 깨진 너와 나를 비추고 있어. 너는 다시금 집어삼키며 절벽 밑으로 떨어져. 나만이 슬프게 남아 절벽을 바라보고 있어. 너는 어디로 갔을까, 싶어서. 달은 밝지 않았어





 피안화는 저주스러운 꽃으로 취급된다. 꽃에 이런저런 의미부여를 하는 편이 아닌 나에겐 저승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붉은 꽃에 대한 근본적 거부감은 없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나는 정원 한 켠 자리를 잡고 있는 피안화를 보면 힘겨웠다. 없애버리고 싶은 충동조차 일었다. 아침마다 머리맡엔 피안화가 한 송이 놓여있었기 때문에.

 피를 머금은 듯 시뻘겋게 살아있는 피안화는 아침마다 눈앞에 놓여 있었다. 시야를 잠식했고, 망막은 뻘개졌다. 빨간 리본이 떠오르기도 했고, 피를 떠올리는 색감은 아침을 맞이하기에 적당한 것은 아니었다. 악몽을 꾼 날의 아침엔 제어할 수 없는 분노가 일 정도로 힘겨운 장난이었다.

 범인은 당연히 아이들. 정원에 피어있는 것들을 아이들이 뜯어오는 것이었는데, 정원을 망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줬다는 건 잊지 않고 있는지 티가 나지 않는 곳에서 꽃을 뜯어오는 듯 했다. 추궁을 해도 모른 척 했으며, 꽃이 뜯어진 자리를 찾을 수도 없었다. 언젠가 견딜 수 없어 온 정원을 뒤지고 다녔지만 허사였다. 그래서 범인은 있음에도 나는 더 이야기를 할 수 없었고, 피안화만이 허공에 떠돌았다. 뜯긴 피안화는 매일 손길이 달랐으며, 아이들은 당번을 정하고 매일 나를 괴롭힐 작정인 듯 했다. 하나의 공통점은 있었다. 피안화는 줄기가 거칠게 뜯겨 있었다. 침대 맡에 앉아 피안화를 본다. 울렁거렸다.

 아이들은 여전히 웃었다. Gott ist tod라며.





고통 받는 호무라는 귀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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