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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생각없이쓰는리뷰]사무라이7
게시물ID : animation_4212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이클롭스
추천 : 4
조회수 : 60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8/17 01:5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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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 전설적인 영화가 있습니다.

1954년 일본에서 개봉한 한 영화는 그야말로 '전설'이 되었습니다. 바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입니다. 전국시대 말기 도적떼의 극심한 수탈을 견디지 못한 마을에서 7명의 사무라이를 고용하여 도적떼를 소탕하고 마을에 평화를 되찾는다는 스토리의 이 영화는, 60년대에 '황야의 7인', 작년에는 '매그니피센트 7'까지 수차례 리메이크 될 정도로 영화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개성적인 7명의 사무라이를 모으는 과정부터, 도적떼와 싸우는 마을 사람들과 사무라이의 모습까지 세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가는 줄 모르는 훌륭한 영화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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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두번째 인물이 '미후네 토시로'. 영화에서 키쿠치요 역을 맡아 열연하였다. 우측 두번째 인물이 총사령관 '시마다 칸베' 역의 '시무라 타카시'>


영화의 훌륭한 점은 여러 부분이 있겠습니다만, 무엇보다 그 설정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전국 시대가 끝나며 사무라이는 서양의 '몰락 기사'와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전쟁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의 삶은 농민보다 더 애처롭습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전쟁 뿐인데 이제 더 이상 전쟁은 없습니다. 남은 것은 무사라는 자긍심 뿐이죠. 그러한 '전투의 전문가'들이 필요한 농민들은 세 끼 밥을 배불리 먹여주겠다는 약속으로 마을을 도적떼로부터 지켜달라고 요청하고, 오직 의기 하나로 다양한 성격의 사무라이들이 모였습니다. 그 수는 7명. 그리고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이 영화에서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죽습니다. 결국 밥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 싸운 사무라이는 결국 마을을 구하며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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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를 앞에 두고 만든 사무라이의 깃발. 애니메이션 오프닝에서도 등장한다>


오늘 소개해드릴 곤조의 '사무라이7'은 영화 개봉의 50주년을 기념하여 2004년에 발표한 걸작 애니메이션입니다. 당시 곤조의 애니메이션 중 '라스트 엑자일'이나 '스피드 그래퍼'와 같은 일종의 '계급 투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등의 주제의식을 큰 스케일에 녹여내는 훌륭한 작품들이 기억에 남아있네요. '사무라이7'  또한 그 중의 하나입니다.



2. 생명의 기원, 쌀

마을의 장로가 사무라이를 모아 마을을 지키자는 결정을 내린 후에 수맥을 찾는 무녀 '키라라' 그녀의 동생이자 애니메이션의 청량제 역할의 '코마치', 그리고 순박한 농민 청년 '리키치' 이 세 명은 사무라이를 찾아 도시로 향합니다, 그들이 가진 거라곤 오직 '쌀' 뿐이죠(영화에서는 아재(...)들이 사무라이를 찾는데 반해 애니메이션은 그렇지 않네요. 리키치는 영화에서 동일하게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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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라라와 코마치>


사무라이를 찾는 여정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맨 바닥에 쌀을 쏟자 손으로 그 쌀을 모으는 농부 '리키치', 쏟아진 쌀을 보며 울음을 터뜨리는 소녀 '코마치'의 모습은 울컥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습니다. 사무라이들은 실컷 밥을 얻어먹고는, '도적떼와 싸우라니 날 뭘로 보고!'라며 매몰차게 거절하기만 합니다. 자신을 향해 간절히 절을 하는 그 농민들에게 말입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둘 다 '쌀'이 중요한 사건의 발단이 됩니다. 쌀을 지키기 위해 외부 세력에 대항하는 모습은 같지만, 16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보다 애니메이션은 좀 더 이질감이 큽니다. 왜냐하면 이 애니메이션, 장르가 SF이기 때문이죠. 기계와 비행선, 축전지가 등장하는 세계관에서 쌀은 다소 어울리지 않는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쌀'이 갖는 힘은 매우 큽니다. 쌀은 농민의 땀과 피를 상징합니다. 식상한 말이지만 변치않는 진리이기도 하죠.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한 세계라도 모두가 밥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기원을 길러내는 사람들에게 시원찮은 대접을 하는 것 또한 지금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세상을 먹여살리는 '책무'에 비해 그들이 갖는 권력은 매우 미미합니다. 부당함에 맞서 그들은 자신이 갖는 모든 것을 바쳐 쌀과 땅을 지키고자 합니다.

(잠시 공익캠페인... 농사는 정말로 고되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니 어디 가서 서리를 빙자한 절도를 저지르지 맙시다!!!!!)




3. 오직 '의'로 뭉치는 개성적인 캐릭터.


7인의 사무라이는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스토리의 구심점 역할을 맡는 총사령관 '시마다 칸베', 그의 부관이자 훌륭한 조력자인 '시치로지', 칸베를 따르며 무사 수업을 받고자 하는 어린 소년 '카츠시로', 기예단에서 일하며 스릴을 즐기는 '고로베', 매사에 투덜대고 과장된 리액션을 선보이는 기계 사무라이 '키쿠치요', 기계를 다루는데 능하고 매사에 낙관적인 장작패기 사무라이 '헤이하치', 그리고 칸베와의 대결을 기다리며(베지터?) 압도적인 무력을 자랑하는 '큐조'. 이렇게 7명의 사무라이가 최종적으로 모이게 됩니다. 네. 그렇습니다. 영화 속 캐릭터의 설정과 매우 유사합니다.

애니메이션과 영화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아마도 악당 집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에서는 도적떼로 그 어떠한 개성도 부여하지 않고 철저하게 사무라이와 마을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었습니다만, 애니메이션 속 악당은 '방랑자'라고 불리우며 그들의 세계에도 조명을 비춥니다. 단순 도적떼로 설정한 영화와는 달리 애니메이션에서 방랑자는 권력 집단으로서의 성향이 훨씬 강합니다. 똑같이 전쟁이 끝난 사무라이들이 주축인 집단이지만 그들은 기득권에 충성을 맹세하고 전신을 거대한 기계 로봇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들은 부양성채를 따라 농민에게 가혹한 수탈을 일삼죠. 

원작에서 '미후네 토시로'가 맡은 '키쿠치요'라는 캐릭터는 애니메이션에선 덩치 큰 기계 사무라이로 바뀌었습니다. 영화에서 키쿠치요는 굉장한 존재감을 선사합니다. 농민 출신의 사무라이라는 특이한 설정은 농민과 마음을 같이 하지만 사무라이가 되고 싶은 매우 이질적인 캐릭터입니다. 한 농민이 사무라이를 믿지 못하고 '방랑자'에게 사무라이를 밀고하자 마을은 한 바탕 뒤집어집니다(이 과정에서 초보 사무라이 소년인 카츠시로는 큰 정신적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전투를 앞둔 상황에 밀고자라니, 그럴 만도 하죠. 그 농민을 처단하고자 할 때, 난데없이 등장한 키쿠치요의 대사는 여러모로 마음을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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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키쿠치요. 익살꾼이면서 인간적인 캐릭터를 잘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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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속 기계 사무라이로 변화한 키쿠치요>


'너희들은 농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농민은 자기 생각밖에 몰라! 지들 마을인데 사무라이를 고용해서 대신 목숨을 걸게 하는게 얼마나 치사한 짓인가! 이 놈들 집 바닥을 뒤집어봐! 거기에는 절대로 먹을게 숨겨져 있지! 농민은 치사하고 울보에 얼간이에 살인자라고!'

'...그런데 그런 존재를 만든게 누구야? 늬들 사무라이들이다! 전쟁을 위해 마을을 불태우고 먹을 것을 빼앗지! 그러니까 당연히 치사해지지! 그래서 나는 화낼수 없어. 이런 놈들을 위해 목숨 거는 게 맘에 안들지만, 그래도 난 할거야. 이 자들을 위해 마을을 지킬거다!'

이 대사는 원작 영화에서도 나옵니다. 그리고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며, 어찌 보면 이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주제를 관통하는 대사이기도 합니다. 결말에 '선이 승리한다'는 공식을 아는 우리들은 그 변절자 농민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배신자인 농민이 방랑자에 밀고하는 모습을 보며 화가 날 수 밖에 없죠. 하지만 삶의 목적이 오직 '생존'에 달린 농민은 그저 엄혹한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방랑자와 사무라이를 저울질했을 뿐입니다. 그저 농사나 짓고 행복하게 살고자 했던 농민에게 주어진 가혹한 환경은 그들이 의도한 바도 아니고 원하던 바도 아니죠. 키쿠치요는 농민 출신으로서 이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농민은 살아남고, 마을을 위해 싸우게 됩니다.

키쿠치요는 원작에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내뿜습니다만 애니메이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천박해보이지만 누구보다 농민의 심정을 잘 이해하는 그는 결국 자신의 뜻을 완수하게 됩니다.




4. 영화에는 없는, '상인' 계급의 출현


애니메이션에서 권력이 이동하는 장면도 눈여겨볼만 합니다.귀족과 같은 상위 계급은 후에 상인 계급에게 권력을 내어주게 됩니다. 그리고 농민과 사무라이들은 상인 계급에게 이용당하는 줄 모르고 귀족 계급에 대항하며 싸우게 되죠. 권력 교체가 이루어지는 순간에도 농민은 수탈의 대상으로 남고, 사무라이는 자신들이 있을 곳을 찾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또한 손바닥 안의 놀음이 되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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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속 최종 보스 '우쿄'. 귀족의 몰락과 상인 계급의 출현을 상징한다>


영화에는 없는 상인 계급은 결국 기득권이 부패한 상태에서 권력이 교체된다 한들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가혹한 환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잠시나마 귀족 계급이 몰락함으로 환호하는 자들은 있지만, 그들은 결국 또 쌀을 빼앗기게 됩니다. 단지 좀 덜 폭력적일 뿐이며, 반항하면 돌아오는 것은 똑같습니다.

권력이 바뀌어도 빼앗기는 것이 같다면 7명의 사무라이는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오직 마을을, 땅을, 쌀을 지키기 위해 최고 권력자가 마을로 쳐들어오는 것에 대항해 최후의 전투를 맞이하게 됩니다.




5.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결말에 대하여


원작 영화의 결말에 대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묘한 감정을 느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충격적이기도 하죠. 평화를 되찾은 농민들이 신나는 노동요를 부르며 모내기를 하고, 젊은 사무라이와 사랑에 빠졌던 한 농민의 딸은 사무라이를 외면합니다. 함께 싸웠다는 것이 무색해질 정도로 완전히 분리된 세계를 카메라는 교차해서 비춥니다. 신나는 마을 사람, 희생당한 사무라이의 무덤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는 살아남은 사무라이들... 이 라스트 신에 대해 많은 해석이 오고 가죠. 어떤 해석이든지 간에 목숨을 바쳐 마을을 구한 사무라이들이 쓸쓸하게 떠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일 것입니다.

애니메이션은 그보다 덜 복잡하게 끝을 맺습니다. 이 점은 많이 아쉽지만, 그 또한 나름대로 괜찮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사무라이가 이용당한 듯한 원작의 결말과는 달리 애니메이션에서는 모두가 행복한 모습으로, 서로를 기리며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한 소년은 진정한 무사로 거듭나고, 많은 것을 짊어졌던 총사령관 '시마다 칸베'는 그런 소년에게 자신의 칼을 건네주게 됩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노동요와 함께 모내기를 하는 장면으로 애니메이션은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 시마다 칸베의 마지막 대사는 영화와 동일하지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며, 그렇게 7명의 사무라이와 마을 사람들의 기나긴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6. 아쉬운 단점들

곤조 애니메이션은 악명높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예상하시다시피 바로 '작붕'인데요. 이 애니메이션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작붕이 좀 많이 심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좋은 스토리라인과 연출을 상쇄시키는 이 작붕에 대해 많이 아쉬워하죠.

그리고 악당 두목의 찌질함도 조금 아쉽습니다. 악당을 조명하는 것까진 좋은데, 목적이나 정체성이 찌질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사실 사회 속 기득권이 갖는 삶의 목적이 그런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영화 베테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래도 최후 부분의 급전개는 많이 아쉽긴 하네요.




마지막으로 칼로 거대한 기계를 베어내며 싸우는 장면은 많은 분들이 황당해하는 것 같습니다. 네, 저도 황당합니다(...) 십수미터에 이르는 기계 사무라이를 맨칼로 베어내며 싸우는데 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전함도, 주포도 칼로 베어냅니다... 칼에 진동을 일으켜 벤다는 설정인데... 그게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떠오르는 의문이 너무 많아서 와닿지가 않네요.



7. 결론과 여담

원작이 워낙 출중한 관계로 이 애니메이션 또한 좋은 스토리라인과 대사로 많은 여운을 남겨줍니다. 원작을 거의 그대로 옮겨온 장면이 대부분이며 나머지는 살을 붙였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네요.

먼 미래에도 쌀은 그 고귀한 가치를 변치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고귀한 가치만큼의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것 또한 변하지 않는 사실이 될까 걱정스러운 마음도 듭니다. SF 속에 등장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배를 든든하게 해주고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것은 바로 쌀이자 밥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속 농민 캐릭터의 사투리 억양이 매우 특이합니다. 일드에서 가끔 나오는 사투리 억양인데요. 주로 농촌에서 올라온 캐릭터가 자주 쓰는 사투리인 듯 하네요.

이상 곤조의 2004년작 '사무라이7' 이었습니다. 다음에는 곤조 또 하나의 명작인 '스피드 그래퍼'를 리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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