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가시니 반가워하는 사람이 있습디까?" 나는 탄식하였다.
"반가워하는 사람이 다 뮌기오, 고향이 통 없어졌더마."
"그렇겠지요. 9년 동안이나 퍽 변했겠지요."
"변하고 뭐고 간에 아무것도 없더마. 집도 없고, 사람도 없고, 개 한 마리도 얼씬을 않더마."
"그러면, 아주 폐농이 되었단 말씀이오?"
"흥, 그렇구마. 무너지다 만 담만 즐비하게 남았드마. 우리 살던 집도 터야 안 남았는기오, 암만 찾아도 못 찾겠더마. 사람 살던 동리가 그렇게 된 것을 혹 구경했는기오?"
하고 그의 짜는 듯 한 목은 높아졌다.
"썩어 넘어진 서까래, 뚤뚤 구르는 주추는! 꼭 무덤을 파서 해골을 헐어 젖혀놓은 것 같더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기오? 백여호 살던 동리가 10년이 못 되어 통 없어지는 수도 있는기오, 후!"
하고 그는 한숨을 쉬며, 그때의 광경을 눈앞에 그리는 듯이 멀거니 먼산을 보다가 내가 따라 준 술을 꿀꺽 들이켜고,
"참! 가슴이 터지더마, 가슴이 터져"
하자마자 굵직한 눈물 둬 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그 눈물 가운데 음산하고 비참한 조선의 얼굴을 똑똑히 본 듯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