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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본격적인 추리 스릴러!지만 이제 비축분이 없는걸?13~16
게시물ID : animation_4346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홍염의포르테
추천 : 2
조회수 : 30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8/20 22:3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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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3화 쓸 때까지만해도 더워 죽는 줄 알았는데 드디어 태풍이 오네요.


 일주일 내내 비 예약...


회사가기 싫당...


내용은 이제 본격적입니다.


(근데 애칸다 공식 소설러가 있었나요?


13.


다음날 토요일 아침.


여러 가지 근심 때문에 잠을 설쳤다. 괜스레 팔과 옆구리가 더 욱신거리는 느낌이었다. 병원이 토요일엔 일찍 문을 닫으니 일어난 김에 물리치료를 받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시간이 벌써 10시에 가까웠다. 꽤 오랜 시간을 잔 모양이었다. 하지만 잠을 계속 설쳐서인지 오랜 시간을 잤는데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았다.


나는 피곤함을 잊기 위해 간단하게 씻고는 병원으로 향했다.


졸리다. 욱신거린다. 피곤하다. 위액이 역류한 마냥 속이 쓰리다.


우웅.


“헉!”


나는 스마트폰 진동에 놀라 허둥지둥 그것을 꺼내 들었다. 혹시나 리와인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행히 그것은 아니었다.


진동의 정체는 하연이로부터 온 카톡이었다.


‘일어났어?’


난 카톡인 것을 확인하고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쫄은 것일 수도 있다. 이 시간에 되돌리는 것도 이상했으니까. 이 시간에 되돌렸다는 생각만 해도 살짝 끔찍했다. 모든 계획이 의미 없었다는 것이기 때문에.


‘왜 읽었는데 답을 안 해?’


‘아. 금방 일어나서 병원 가는 중이야.’


‘뭐야. 어젠 괜찮다면서? 너 오늘 학원 가는 것도 아니잖아? 학원 째려는 것도 아니고 일어나자마자 가?’


하연이가 쏘아붙이는 모습이 스마트폰 화면 너머로 훤히 비췄다. 상상으로 떠오른 그 모습에 움찔하며 너스레로 받아쳤다.


‘안 아파도 나중에 후유증 없으려면 꾸준히 받는 게 좋대서 ㅋㅋ’


‘... 그래? 아픈 건 아니지?’


‘엉.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ㅋㅋ’


그래도 이렇게 걱정해주는 건 가족 외엔 하연이 뿐이었다. 몸을 괴롭히던 긴장과 피로감이 하연이와의 말 몇 마디에 풀어지는 것 같았다.


‘넌 오늘 논술학원 가지?’


‘응응. 안 그래도 방금 도착함!’


‘아. 그럼 끝나고 카톡해.’


‘아... 응.’


답장이 조금 뜸들이다 왔다. 무슨 일 있나? 약간 떨떠름한 것 같은 느낌이 났다. 이따 이야기하면 되겠지. 어느새 나도 병원에 도착해있었다.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눈 좀 붙여야지. 너무 피곤했다. 내일은 데이트였는데 그때도 이 모양이면 어떡하지. 설마 리와인드의 부작용으로 차이는 거 아냐? 하하... 설마.


-----


확실히 병원의 침대는 뭔가 있었다. 잠깐 누운 것 같았는데도 몸의 피로가 많이 가신 느낌이었다. 물리치료를 받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긴장이 풀리고 나른한 느낌이 들었다.


물리치료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어느새 기계에서 완료 소리가 나면서 간호사인지 물리치료사인지 구분되지 않는 사람이 와서 정리하고는 가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옷을 추스르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슬슬 집으로 돌아갈까. 오늘은 뭐하지. 내일 데이트도 생각하긴 해야 하고... 학원 숙제도 있을 터였다. 한지석한테 물어봐야지. 그리고...


그래. 이번 리와인드가 고백이 문제였다면 그걸 해결할 방안도 생각해야 했다. 단순히 고백이 실패하는 거라면...


“너?”


병원에서 계산을 마치고 빠져나가려는데 누군가 억센 손으로 내 어깨를 잡았다.


“맞나? 맞네!”


그는 억지로 내 몸을 돌려 내 얼굴을 보고는 말했다. 나는 당황해서 어버버 거리다가 상대방의 얼굴이 낯익다는 것을 느꼈다. 큰 덩치에 째진 눈, 험한 얼굴을 가진. 체육 교사였다. 우리 반 담당은 아니었고 하연이네 쪽을 담당하고 있었다.


“너 이새끼 말야. 달리는 차에 뛰어들고. 제정신이야?”


체육선생은 내 어깨를 꾹 잡고 흔들며, 질책했다. 나는 내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고, 남을 구하기까지 한 일인데, 왜 이런 취급까지 받아야 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어제 앞자리의 여자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연이를 구한 게 아니라 내가 뛰어든 것 마냥 퍼진 소문을.


“아... 아. 아뇨. 그게 제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냐. 그러다 훅 가는 거야. 이 새끼야. 가는데 순서 없어! 머리에 피도 안 말라가지고는. 앞날도 창창한 것들이. 지목숨 소중한 줄도 모르고 말야. 앙?”


체육선생이 험한 인상으로 나를 붙잡고 저렇게 말하니 위압감에 말 한마디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체육선생는 한참을 말하고 나서야 내 어깨에서 손을 놓았다. 주변의 시선이 따가웠다. 체육선생의 더러운 인상 때문에 주변의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하여간.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라. 남을 도와주는 건 좋은 건데. 그러다 니가 죽으면 슬퍼할 부모님을 생각해야지. 안 그래?”


나는 주눅 들어 대답했다.


“네...”


그렇게 말하고는 체육 선생은 병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아....”


나는 체육선생이 시야에 사라지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러니 여자애들 사이에서 안 좋은 소문이 도는 거다. 얼마 전 체육 시간 때도 하연이랑 지혜랑 험담하듯이 이야기했던 것 같다. 나랑은 엮일 일이 없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지만, 오늘 직접 엮이니 상당히 성가셨다. 잔소리도 많고... 어? 잠깐 그러고 보니.


체육선생은 알고 있는 건가? 내가 어쩌다 다친 건지? 체육선생이 했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남을 도와준다는 이야기를 한 것은 내가 하연이를 구하다 다친 것을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체육선생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대부분의 선생도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 애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알고 있었다. 소문의 근원지는 도대체 누구지? 애들과 선생님들의 소문의 근원지가 다른 건가? 아니, 그러기엔 담임이 저번에 종례할 때 반응이 이해가지 않았다. 진실은 미궁 속에 있었다.


모르겠다. 하연이에게 카톡이나 남겨둘까.


‘내일 뭐 먹고 싶어? 먹고 싶은 거 있어?’


수업이 끝나면 연락 오겠지.


‘눈꽃빙수! 밖에 너무 더워... 빙수 먹고 싶어! 빙수’


.... 아직 수업 중 아닌가. 생각보다 빠르게 온 답장에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적극적으로 느껴지는 하연이의 태도가 의외여서 당황스러웠다.


‘빙수?’


‘응응.’


디져트가 아니라 메인메뉴를 물어본 거긴 하지만... 뭐 상관없나. 점심은 뭘로 하지 적당히 옷에 냄새가 배지 않는...  파스타 같은 게 괜찮으려나...


‘내일 그럼 어디서 만날까? 집 앞? 시간은 1시랬지?’


‘응 한시 근데 내일 아침에 들릴 데 있어서.. 역에서 만나자.’


‘ㅇㅇ 그래.’


사실 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더 물어보게 되면 거리낌이 들까 봐 자제했다. 어차피 내일 만날 건데 이야기는 그때 해도 된다. 내일 점심으로 뭐가 좋을까나. 집으로 돌아가며 하연이의 sns를 살폈다.





집에 돌아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밖으로 나와 독서실에 들어갔다. 목적은 학원 숙제를 하는 것이었지만, 틈틈이 내일의 계획을 생각했다. 그러나 영 막막한 느낌이다.


잘되려나.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는 한편 잘 되는 것도 불안했다.


차라리 그냥 실수로 되돌렸다면 좋을 텐데. 스마트폰이 지문으로 잠금이 걸려있는 지금 내가 아니라면 누군가 리와인더를 쓸 일도 없었다. 그렇다면 되돌리는 것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왜 되돌렸는지 알 수 없기에 마음속의 심란함은 더욱 증폭되었다.


사실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고백이 실패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면 저번처럼 내가 스스로 잘 풀어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번엔 아직 꼬였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딱히 없었다. 무슨 일이 생겨도 한번에 해결할 수도 있었다. 기억은 없었지만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시감은 분명 도움될 것이다.


5시 2분.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기까지 충분한 시간이었다.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 4시 20분. 그로부터 20분이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다. 학교가 끝났다는 것을 가정하면 40분의 시간이 비었다.


그 40분 사이에 무언가 있다는 이야기겠지. 하지만 무언가 있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돌발적인 사고인가?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한다면 5시는 이미 집에 돌아와 학원에 갈 준비를 할 시간일 텐데... 짐작 가는 부분이 없었다. 시간이 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걸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예측하기엔 내 추리력이 역부족이었다.


내일 일이나 생각해야지.




----



‘내일 역에서 1시 맞지?’


‘응응 아까 말했잖아’


‘빙수 말고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흐응? 글쎄? 니가 만나자며 니가 정해야지!’


‘그래도 사과의 의미로 사는 거니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주려고 했지.’


‘눈꽃빙수면 돼’


‘그래?’


‘그렇다구 ㅡㅡ’


....



--------




14.


그리고 다음 날. 결국 일요일이 밝았다. 벌써 11시에 가까운 시간. 그런데도 잠을 계속 설친 탓에 제대로 잠을 잔 것은 몇 시간이 채 안 됐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니 피곤함에 쩔은 듯한 얼굴이었다. 열대야에 잠까지 설쳤으니 멀쩡할 리 없었다. 이런 꼴로 나갈 수는 없다.


 뜨뜻미지근한 물로 몸을 씻어냈다. 노곤함이 밀려오는 기분이었다. 피곤과 땀에 절었던 몸을 깨끗이 씻어내자, 그나마 거울에 봐줄 만한 얼굴이 보였다. 그래도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는 여전해 보였다.


땀이 나지 않게 찬물로 몸을 씻어내고는 물기를 닦아내고는 평소엔 잘 바르지 않는 비비크림을 꺼내 들어 얼굴의 그림자를 감췄다. 그래 오늘까지는 별다른 일이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중요한 것은 내일이니까. 오늘은 오늘에 충실하면 되었다.




역에 도착한 것은 약속 시각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하연이에게 미리 연락해볼까 했지만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몰라 말았다. 지금 쯤 오고 있겠지.


‘오고있어?’


카톡을 하나 남긴 뒤, 스마트폰을 든 손을 늘어트렸다. 언제 오려나? 설렘이 코끝을 간질거리는 느낌이었다. 약속 시각까지는 10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언제 오려나. 다시 스마트폰을 들어 계획을 생각했다. 뭘 먹고 어디로 갈지, 가게 위치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어느새 불안감은 자취를 감추고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데이트 이야기를 꺼냈을 때가 기억났다. 기대감에 차 있던 하연이의 얼굴. 그리고 실망감에 물들던 얼굴마저도. 그때 하연이가 나에게 기대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오늘의 나는 그 기대감을 채워줄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은 나의 기대감이 추락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





하연이는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카톡도 안 읽은 채로 남아있었고, 전화나 문자도 받지 않고 차단한 것 같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이젠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나는 한참 동안 포기하지 못한 채 역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그런다고 하연이가 약속장소에 나타나거나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의 기대감과 설렘이 모두 사라지고 불안, 초조, 실망감만 남았을 때 결국 나는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아......”


풀썩.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몸을 맡겼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는 속으로 욕을 뱉었다. 바람을 맞았을 뿐만 아니라 하연이가 잠수까지 타버렸다.


머릿속은 의문부호로 가득했다. 왜? 어째서? 연락을 충분히 하지 않은 게 문제인가? 갑작스러운 마음의 변화가 있었나? 급한 일이 갑작스레 생긴 건가?


아니면 그냥 차인 걸까. 얼굴을 보고 말하자니 껄끄러워서 잠수라도 탄 걸까. 그럼 어제까지의 대화는?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좀 껄끄러워했던 것 같기도... 하아. 젠장. 애초에 주제넘은 짓이었을까. 그렇게 엄청 잘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애들한테 인기 있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유머러스하다고 말할 수 있는 편도 아니었다. 그런 주제에 고백할 것 같은 느낌을 주니 부담스러웠던 걸까.


하아.


계속해서 한숨만 나온다. 배터리도 계속해서 연락을 하다 보니 나의 자존심처럼 바닥에 꼴아박혀 이제 곧 꺼져버릴 것 같았다. 돌아갈까.


좋게 생각하자. 이렇게 되면 리와인더는 단순히... 아니 아무튼. 이 일 때문에 돌린 것이겠지. 별다른 사건은 없을 것이다. 돌발적인 사고 발생은 없다는 거겠지. 다행이다. 더이상 걱정은 없었다.


고백이 실패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추가로 무언가 발생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다행이다. 그렇게만 생각해야지.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하.


그래. 무슨 일 생기는 것보다는 이게 낫지. 당장 내일 학교에서 하연이 얼굴을 어떻게 볼지 걱정이나 하는 게 나으려나. 온 몸에 기운이 없었다. 괜히 리와인더 탓에 일희일비하는 기분이다. 이딴 앱 지워버릴까.


...


그래. 이게 무슨 죄가 있냐. 내가 못난걸.



------


몇 시간을 잤는지 모르겠다. 침대에 그렇게 누워있던 상태로 잠들었나. 어느새 이른 월요일 아침이었다. 학교 가기 싫다. 오늘은 특히 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것 가지고 뺄 수 없었다. 하지만 가기 싫은 건 싫은 것이다. 얼마 가지 않아 방학하겠지만, 정말 가기 싫네. 진짜.


혹시나 하연이와 만날까 두려워 빠르게 자전거를 챙겨 나갔다. 몸도 거의 멀쩡해져서 살짝 욱신거리는 것 빼곤 없었기에 엄마도 평소대로 나가셨고, 하연이와 만날 시간을 피해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대부분이 학교에 도착하지 않았다. 온몸에 기운이 없었다. 책상에 엎드린다. 하아. 한숨만 나온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빈자리가 안 보였고 교실 앞에서는 선생이 조회를 하고 있었다.


“... 목요일에 방학인 거 모르는 놈은 없을 테고, 수요일까지는 단축 수업이니까 알아둬라.”


“...”


단축 수업? 그러면... 점심 먹고 7교시... 대충 1시가 조금 넘어 끝날 것이다. 한 시 반?


일찍 끝난다니, 집에서 좀 쉴 수 있겠지. 하연이를 피하기도 나을 것이다. 그럼 오전 내내 잠이나 잘까. 잠이 잠을 부른다고 그렇게 잤는데도 졸렸다. 1시. 1시 반...


집에 가면, 2시쯤 되겠네.


...


...


2시. 2시. 2시?


5시? 잠깐만 그러면 난 5시에 어디에 있는 거지? 단축 수업이다. 1시 30분. 그건 불변이다. 내가 뭔 짓을 해도 바뀌지 않을 상황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단축 수업이 연장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집에 가는 것은 2시 언저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다른 일정이 생기는 게 아니라면 5시라면 이미 한참 전에 집에 있을 시간이었다. 그럼 왜 5시에 되돌린 거지?


2시에 도착한다면 2시 좀 늦더라도 3시에 되돌렸으면 되는 일이다. 그게 아니라도 사실 이전 리와인드와 시간이 겹치는 것이 아니라면 정각에만 돌려도 문제없었다. 근데 왜 나는 5시에 시간을 되돌렸는가.


갑자기 잠이 확 가셨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백이 문제가 아닌가? 아니라면 대체?


무슨... 무슨 사건이 있는 건가? 역시 정각이 아닌 5시 2분이라는 애매한 시간은 무슨 사건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슨 사건을 의미하는 것일까. 내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과거에 아무것도 모르는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고 그 5시 2분이라는 시간에는 어디서 무슨 행동을 하다가 리와인더를 사용한 것인가.


어느새 담임이 반에서 조회를 마치고 반에서 나갔다. 교실은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진다. 집중이 안 되어 짜증이 밀려온다. 8시 10분 10분 정도 뒤면 수업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수업을 시작한다고 해도 수업을 하지 않을 테니 시끄러운 분위기는 그대로겠지. 잠깐 머리 좀 식히고 정신도 차릴 필요가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냉정하고 침착해야 한다. 세수라도 하고 올까.


나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교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뒷문 앞에서 누군가가 나를 막아섰다.

내 앞을 막아선 건 하연이의 친구. 지혜였다.


“야. 전남석. 어떻게 된 거야?”


“어? 뭐가?”





15.



“뭐긴 몰라서 물어?”


갑자기 지혜가 나에게 따지길 시작했다. 제법 큰소리에 애들이 내 쪽을 돌아보는 게 보였다. 나는 한숨을 살짝 내쉬고는 교실에서 나가 문을 닫았다.

“갑자기 그렇게 물어도 전후 사정이 있어야 내가 알아듣지 않겠냐. 일단 애들이 보니까 자리 좀 옮겨.”


나는 그렇게 말하며 걸음을 옮겼다. 지혜는 뭐라도 말하려는 듯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내 뒤를 따라왔다. 그리고 중앙 계단 쪽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나에게 따져들기 시작했다.


“어제 뭐 한 거야?”


“뭐?”


어제? 어제는 바람맞는 거밖엔... 입맛이 쓰렸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제대로 할 틈도 없이 지혜는 이어 몰아붙였다.


“뭐라니. 진짜 몰라서 물어? 어제 말야. 어제 어떻게 한 거야?”


“그러니까 뭘?”


하... 아무런 상황 설명 없이 다짜고짜 저러면 어떻게 알아듣냐고.


“하연이가 오늘 학교에 안 왔어.”


“어?”


어?

“내가 전화해도 안 받아. 어제는 그러려니 했는데. 뭐야? 어제 둘이 데이트하는 거 아니었어?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하연이가 학교도 안 나오고 연락도 안 받아?”


하연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고? 그 성실한 하연이가? 게다가 나뿐만 아니라 지혜의 연락도 안 받다니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 있는 거지?


“야! 내 말 듣고 있어?”

“잠깐만. 잠깐. 아주 잠깐만...”


나는 현기증이 드는 것 같았다. 멀쩡히 서 있던 몸이 다리에 힘이 빠져 휘청거리는 탓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계단 난간을 짚고서야 제대로 다시 설 수 있었다.


“야. 넌 또 왜 그래?”


“그러니까 하연이랑 연락도 안 되고 학교에도 안 왔다고? 그 성실한 하연이가?”


“그래. 니가 일요일에 뭔 짓을 했길래 하연이가 그래?”


머리가 지끈거린다. 식은땀이 흘러 온몸을 적신다. 불안감이 손끝부터 내 몸을 휘감아 옥죄기 시작했다.


나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아무것도 안 했어.”


그러나 그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했다고? 근데 왜...”


지혜는 다시 나를 추궁하려 했다. 그러나 나의 분위기를 읽었는지 말끝을 흐린다. 나는 그 끝을 자르며 말했다.


“나도 어제 하연이 못 만났어. 어제부터 연락이 안 됐다고.”


“무슨 소리야?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너 만나러간다고 좋아라 이야기했는데?”


차인 건 아닐지도 모르겠네. 하하... 그러나 이제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하연이는 약속장소에 오지 않았어. 아니 오지 못한 걸지도 몰라.”


나는 조심스럽게 내 추측을 내뱉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만약 이 일이. 하연이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이 일이 내 리와인더와 연관되어있다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무슨 일이지? 왜 학교에 안 왔지? 어제의 약속은? 지혜의 말대로라면 하연이는 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지 않았다. 그리고 연락이 되지 않는다.


리와인더는 내 계획과 2분이 틀어졌다. 단순한 오차범위라 생각했지만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나를 믿었다. 놓쳤다면 한 시간을 더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그 이유를 단순히 실연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라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 또한 아니다.


그리고 예상외의 단축 수업. 수업이 끝나고 시간을 되돌리기까지의 시간.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


어느 쪽으로 생각하더라도 불안했다.


하연이를 찾아야 했다. 찾아야 한다.


우웅. 우웅.


더이상 놀랄 기력도 없었다. 어차피 리와인더는 아닐 것이다. 바지 품에서 계속 울리는 진동에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엄마로부터의 전화였다.


“잠깐만...”


-여보세요? 아들?


나는 짧게 심호흡을 해 몸을 진정시키고는 대답했다.


“...어. 엄마.”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했는데, 하연이 어딨는지 아니?


“어?”


엄마가 왜 갑자기 하연이에 관해 물어보는 거지?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나?


-하연이가 어제 나간 뒤로 집에 안 들어왔댄다. 하연이네 아줌마가 엄청 걱정하면서 여기저기 연락 돌리는 것 같더라. 너도 모르니?


“...응. 학교도 안 오고 연락도 안 되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하연이가 없었다. 우리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하연이의 행방을 모르고 있었다. 그것도 어제 외출부터.


-그래? ...알았다. 혹시나 알게 되면 연락해. 하연이네 아줌마가 걱정 많이 하고 있더라.


“알았어. 찾으면 꼭 연락할게.”


-그래.


“끊어.”


-응. 몸조리 잘하고.


“응.”


하연이를 찾아야 했다. 찾아야 한다. 혹시나 하연이가 학교에 올 수도 있을까.


“뭐...야?”


지혜는 내 통화내용을 들었는지, 당황스러워했다. 하긴 못 들었을 리가 없지. 그렇게 통화 소리가 컸는데.


“하연이가 가출? 아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실종인가?”


“실종?”


이전 리와인드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때는 리와인드라는 증거가 없었다. 하연이의 행방이 불분명하고, 지혜에게 이야기를 듣고, 엄마한테 전화 온 것까지가 같은 흐름일까? 따로 변한 것이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뭘 할 수 있지? 일단 학교에서 가만히 있는 것은 답이 아니었다.


“이지혜.”


“어? 어.”


난 지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믿을 사람이 별로 친하지도 않은 이 녀석밖에 없었다. 한지석은 껄끄러웠다.


“난 하연이를 찾아볼게.”


“...어떻게 하게?”


“넌 혹시나 하연이가 학교에 오면 알려줘. 어떻게든 찾아봐야지.”


“야! 어떻게든 이라니?”


나는 지혜를 내버려 두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어디? 어디로 가야 하나?


우선 달린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려 정문으로 뛰어나갔다. 누군가 뒤에서 소리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게 더 중요하다.


학교 앞으로 나가 자전거를 풀어내고 어디로 갈지 생각했다. 하연이가 갈만한 곳 그곳부터 찾자. 마지막으로 하연이가 간 곳이 어디지? 아침에 어딘가 들린다고 했는데.


나는 잠시 멈춰 지혜에게 카톡을 보냈다.


‘어제 아침에 하연이가 어디 갔는지 알아? 마지막으로 연락한 건 언제야?’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하연이가 나갈 때. 아마 10시쯤? 역 주변 거리로 간다고 들었는데...’


10시에 밖으로 나갔다고? 역 주변이라.


나는 역을 향해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약속 장소였던 지하철역에 도착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출근 시간도 넘었고 아직은 방학 이전이라 사람이 많지 않은 거리였다.


지하철 출구 안쪽을 둘러봐도 근처 가게를 둘러봐도 골목을 구석구석 쏘다녀도 하연이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사이 온몸은 땀에 절어갔다. 단순히 뒤지기만 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지도 몰랐다. 주변에 수소문 해보는 게 좋으려나.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연락이 온 흔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방학 직전에 단축 수업이기까지 하니 선생들이 애들 관리를 안하는 거겠지. 애들도 거진 TV로 영화를 다운받아 틀거나 하고 있어서 제자리에 앉은 놈도 별로 없을 것이다. 빠져나와도 모르는게 이상하진 않았다.


그것보다 지혜한테도 연락이 없는 것은 아직 하연이는 학교에 도착하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나는 스마트폰에서 하연이의 사진을 찾았다. 이 사진으로 주변 상인들한테 물어봐서 하연이의 행방을 추측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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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주변의 가게를 다 돌아다니며 물어봤지만 하연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주말에 장사하며 수없이 많은 사람을 스쳐 가는 사람들이기에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한 사람 정도는 기억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무산되었다. 시간은 벌써 12시에 가까웠다. 나는 지친 몸을 자전거에 기대어있었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렸다. 몸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다. 이러다 내가 쓰러질 것 같았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잠깐 몸이라도 식혀야지. 막무가내로 찾아봐야 의미도 없었다. 생각하자.


나는 처음에 물어본 옆 앞 편의점으로 다시 들어갔다. 간단한 이온 음료를 하나 사고는 편의점 안에 의자에 앉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알바가 날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하긴. 이 시간에 교복을 입고 돌아다니는데, 이상해 보일 법했다. 차라리 나 말고도 교복 입은 애들이 좀 돌아다니면 일찍 끝났으려니 할 텐데 그것도 아니었으니까.


아니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지. 생각하자. 하연이가 어디에 있을까. 처음부터 짚어보자. 지혜 말대로라면 하연이는 어제 약속에 나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오지 않았다. 어제 약속에 나올려고 했다면 분명히 자발적으로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무슨 일이 생겼거나. 사고를 당했다거나.


단순히 집안일이나 그런 별거 아닌 일이라면 하연이가 학교까지 안 나올 리가 없었다. 게다가 하연이네 아줌마조차도 아무런 상황을 몰랐다? 그리고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연락이 끊긴 건 10시. 집을 나섰을 때.


납치당했나? 아니면 ......


나는 빠르게 머리를 흔들어 떠오른 생각을 지웠다.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납치라고 가정한다면... 주말에 사람이 많은 번화가에서 납치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목격한 사람이 있을 법했다. 그런데 역 주변에서는 하연이를 목격했다는 이야기가 없었다.


그렇다면 하연이는 역에 오기 전에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럼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역까지. 그 사이 거리는 걸어서 대충 20분. 1km 정도 되는 거리일까. 그 사이에 있는 거라고는 아파트 단지 내의 상가. 그리고 차가 드문드문 다니는 도로 뿐이다.


역에 도착하기 전까진 오고가는 사람이 적었다. 아파트 단지라고는 하지만 옛날에 지어진 크기만 커다란 주공단지였다. 높이도 그렇게 높지 않으면서, 유동인구가 있긴 하지만 많지는 않았다. 주말 아침 10시면 아파트 내에서 유동인구가 거의 없을 때이다.


아파트 내에서 납치를 당했나? 그렇다면 어디로?


나는 바로 편의점을 뛰쳐나와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알바가 갑작스런 내 행동에 당황한 듯  싶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역에서 아파트를 가는 사이 골목을 그리고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던 중, 저 멀리서 체육선생의 모습이 보였다. 시간은 한 시를 조금 넘었을 시간이었다. 아직은 학교가 끝나지 않았을 시간. 그리고 체육선생이 나를 향해 삿대질하며 소리치려는 것을 보고 나는 빠르게 상황 판단을 하고 페달을 밟았다.


뒤통수로 체육선생의 외침이 들렸다.


잡힐 수는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날아갈지 알 수 없었다.


순식간에 풍경들이 지나간다. 그렇게 힘들었는데, 다리에 이렇게 힘이 들어간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2~3분 정도를 전력으로 도망쳤을까. 헥헥대며 골목 구석으로 숨었다. 더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자전거를 세워둔 채 골목 구석에 털썩 주저앉아 벽에 몸을 기댔다.


그나마 그늘이라 그런지, 벽돌담에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가쁜 숨을 고르며, 다시 생각한다.


나는 지난번 리와인드를 5시 2분에 실행했다. 그렇다면 5시 2분이라는 시간에는 무슨 정보를 얻은 것이다. 리와인드를 시작할 정보를 말이다. 이전의 나는 5시 2분 언저리에 정보를 얻었다. 어떻게? 어느 경로를 통해서? 직접 본 것인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서? 확실하지 않았다.


직접 본 것이라면 수색을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후자라면 스마트폰이 안 꺼지게 잘 유지해야 했다.


이전의 나는 학교 따위 째고 바로 나온 것이 맞을까? 아니면 수업이 끝난 이후에? 리와인드의 확신이 없었다면, 일단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확신이 가는 곳이 없었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찾을 수밖에.


숨을 고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 주변엔 목격 정보도 없었다. 그리고 아파트와 역 사이에는 골목과 가정집, 도로뿐. 일반 가정집이라면 숨길테지만, 어차피 그곳들은 내가 수색할 수 없었다. 그렇다는 건 과거의 나도 불가능했다.


그럼 내가 찾을 수 있는 곳은...


“내가! 썅! 멈추라고! 했지!”


“헉!”


골목 옆에서 아까 봤던 체육선생이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나는 깜짝 놀라 숨을 삼켰다. 따돌렸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쫓아온 거지?


“하아. 하아. 너 이 새끼 학교 중간에 째고 뭐 하는 거야? 그러고 보니 이 새끼 너 걔잖아?”


그것보다 체육선생은 왜 여깄는 거지? 교사들은 퇴근 시간이 있어 단축 수업을 해도 우리보다 늦을 텐데? 아니 지금은 그런 생각할 때가 아니다. 체육선생도 지쳐서 할딱이고 있었다. 도망칠 기회다.


체육선생이 숨을 고르느라 정신없는 사이 자전거를 타고 잽싸게 내뺐다. 내 이름을 부르며 욕을 하는 게 들린다. 후환이 두려워지지만 그걸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골목에서 10여 분 가량 도망쳐 아파트에 도착했다.


시간은 벌써 2시를 넘어 3시에 가까웠다. 주변에는 하교하는 애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찾을 수 있는 곳은 아파트의 곳곳이었다. 나 그리고 하연이가 살고있는 아파트는 주공아파트로 지어진 지 꽤 오래된 곳이었고, 한쪽은 산기슭이라 외진 곳이 많았다. 그리고 규모 자체도 큰 편이라, 무언가를 찾기란 오래걸렸다.


나는 아파트의 구석구석을 뒤졌다. 자전거로 못 들어갈 것 같은 곳은 잠시 자전거를 세워두고 들어갔다. 수풀에 이리저리 교복이 더러워지고, 다리에선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발은 절실하게 고통을 호소했다. 땀이 흐르고 마르고를 반복해, 온몸이 끈적거렸다. 그래도 꿋꿋하게 아파트를 뒤지고 다녔다. 이상하게 쳐다보는 눈빛들이 보였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렇게 나는 그 큰 아파트 단지를 하나하나 돌았다.


하지만 결국 하연이를 찾지 못했다.


4시를 넘어 5시에 가까워지는 시간. 5시 2분까지는 얼마 남지도 않았다. 나는 포기하고 근처에 있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고개는 바닥에 떨군 채였다. 그렇게 내리쬐던 뙤약볕도 슬슬 힘을 잃어간다. 나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 식어가는 땀이 내 뺨을 따라서 타고 흘러 턱에서, 코에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땀방울이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며 검게 물 떨어진 흔적을 남긴다. 가운데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자국. 회색의 시멘트가 검게 물든 땀방울의 자국들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기분이 이상했다.


“야~옹.”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재빠르게 고개를 들었다. 아파트의 입구 근처에서 검은색 고양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불안감이 내 뇌리를 스쳤다. 고양이 수염의 끝이 붉은색 액체로 젖어 빛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무언가 기억의 저편에서 떠오를 것만 같았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자전거가 내 몸에 걸려 쓰러졌다.


와장창.


검은색 고양이는 그 소리에 놀라 달아났다. 나는 고양이를 쫓지 않았다. 고양이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찾았다. 지금 달아난 방향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 어디서 걸어 나왔나. 고양이가 서 있던 뒷편에는 현관의 옆, 아파트의 지하실이 보였다. 오래된 아파트에서나 볼 수 있는 지하실.


그것도 현관 안쪽에서 계단을 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닌, 밖에 쪽문 같은 철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보통은 경비아저씨가 관리하는 곳이었다. 안에는 배관이나 보일러, 전선 단자함 같은 게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철문이 잠겨있을 터였다. 그러나 성인 키의 반밖에 안 되는 크기의 철문은 한 뼘 가량 열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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