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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꿈꾸는 유랑극단 -1-
게시물ID : art_162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배우최종원
추천 : 0
조회수 : 33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4/04 13:17:05


바다를 꿈꾸는 유랑극단 -프롤로그-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art&no=16195&s_no=16195&page=4


바다를 꿈꾸는 유랑극단 -1-

나는 포하에 있는 작은 종합대학인 하도스에서 연기 과정을 전공했다. 하도스 대학은 사랑스러운* 지혜의 여신과 번뜩이는 정의의 남신의 가르침을 학교의 기본 교육 모토로 삼은 학교였다. 무척 하늘이 아름다운 학교였고 캠퍼스는 평안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나는 그 곳에서 있었던 사년동안 우울증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사랑스러운* 지혜의 여신은 내가 우울증이 심하게 몰려와 고생하고 있을 때면 나에게 힘내라고 속삭여주었다. 가을볕이 따뜻했던 어느날, 나는 숙소 근처에 있는 작은 언덕에 올라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잠자리 한 마리가 내 곁으로 날아와 내 손등에 앉았다. 잠자리는 그저 내 손등에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는데, 나는 그 조그마한 생물체를 유심히 바라보느라 울음을 그쳤다. 

이윽고 언덕 아래에는 잠자리의 낮은 춤으로 장관을 이루었다. 잠자리들은 저공 비행하며 사방으로 뛰어놀고 있었고 그 유쾌함은 사랑스러운* 지혜의 여신이 내게 보낸 메시지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빗방울이 한두방울 떨어졌다. 오랜만에, 공기 중에 습기가 가득했다. 농부들은 이 축축함을 환영하리라. 나는 왠지 모를 행복감을 느끼며 언덕을 내려왔다. 비가 후두두둑 떨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숙소에서 그 빗소리를 들었다. 

문득 이 종합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했던 날이 떠오른다. 부모님은 내가 경영학을 전공하여 시로코아 빛세공단에 들어가길 원하셨다. 시로코아 빛세공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빛의 마법 상품 제작 업체로, 최근에는 연락 수단으로 이용되는 까치와 비둘기의 날갯짓을 굉장히 빠르게 변화시키는 '빛의 날개'를 제작해 유통시켰다. 그로 인해 기존보다 더 빠르게, 이를테면 포하의 하도스 대학에서 지콘느의 액팅비콘까지 삼십분이면 메시지 전달이 가능했다. 혁명적이라 할 수 있었지만, 가격은 비쌌다. 하지만 '빠르게, 더 빠르게'를 외치는 규리아의 시민들에게는 이 '빛의 날개'를 구입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한 선택이 되었다.

시로코아 빛세공단에 들어가는 것은 미래가 보장되는 일이었다. 일단 보수가 두둑했다. 내가 연기를 전공하여 지콘느의 어는 극단에라도 들어가게 되면 한달에 20 규리아라도 받을까 말까... 하지만 시로코아에 들어가게 되면 신입이라도 보수가 220 규리아 정도 되었다. 어렸을 적부터 배고픈 시절을 겪으셨던 부모님은, 이제서야 조금씩 재정적으로 안정된 삶을 사시게 되었고 아들은 배고프지 않길 바라셨다. 그런데 연기를 전공한다니, 그것은 너무 위험한 삶이지 않을까. 연기를 전공하고 싶다며 고집을 부리는 아들이 걱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연기 전공을 택했고, 이후 삼년간의 대학 생활에서 나는 연극만 죽자고 했다. 두 편의 단편 영광 작품을 찍었고, 작품 연습이 없을 때에도 포하의 바닷가에서 노래를 부르고 발성 연습을 했다. 

액팅비콘에 들어가서 샛별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고 부모님은 생각하셨을지도 모른다. 샛별이 되는 과정은 굉장히 치열하고 험난했다. 액팅비콘은 실력자들이 넘쳐나고 있었으며, 배우들 사이에서 순수한 경쟁 이상의 비상식적이고 불의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떤 여배우는 실력 있는 영광 작품 연출가에게 몸을 팔았다더라... 어떤 남배우는 경쟁에 지쳐 자살을 했다더라... 하지만 모든 배우들이 액팅비콘에 들어가길 소망했다. 나는 무서웠다.

나는 방한구석에서 또다시 찾아온 우울증과 싸우고 있었다. 그것은 항상 파란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소년은 내 어깨 위로 올라가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나는 그저 눈에 눈물을 고여 내고 있을 뿐이었다. 졸업을 남겨두고, 이제라도 부모님의 뜻대로 시로코아 같은 빛세공단에 들어가서 상업부에서라도 일해야 하는 거 아닐까 - 많은 연기 전공자들이 졸업 후 연기하길 그만두고 무대에서 배운 배짱으로 세공단의 상업부에 들어가곤 했다. 언변과 화술이 뛰어난 이들이 상업부에서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어울리긴 하다. - 액팅비콘에 들어가면 파란 소년이 시도때도 없이 찾아올 것 같았다. 나는 사랑스러운* 지혜의 여신에게 울며 기도했다. 

"연기가 무척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무섭고 걱정됩니다. 연기하다 지쳐 쓰러져도 좋으니 연기가 무척 하고 싶습니다."

며칠후, 같은 연기 전공의 시니 선배로부터 바다를 꿈꾸는 유랑극단에 들어갔다가 얼마전 퇴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선배가 이야기하길 "그 유랑극단은 지콘느의 여는 극단과는 다르게 보수를 많이 주는 편이다. 물론 시로코아나 에리 등에 들어가는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라고 말했다. 나는 솔깃했다. "액팅비콘은 경쟁은 치열하지만 과연 거기서 얼마나 배울까? 유랑극단이라면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거기는 규리아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숱한 공연을 한다" 
 
며칠간의 고민 후, 나는 바다를 꿈꾸는 유랑극단에 내 이력을 적은 서신과 간단한 내용의 글귀를 적어 까치를 보냈다. 

"시니 선배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귀 극단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다음날, 유랑극단으로부터 까치가 날아왔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오디션을 준비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 유랑극단이 나를 수습단원으로 받아주겠다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이다. 

"제이 씨, 반갑습니다. 나는 이 극단의 기획살림꾼대표인 지서라고 합니다."

지서는 나와 키가 비슷했다. 마른 체형인 나에 비해 풍채도 있었고 검은 뿔테 안경을 썼다. 머리는 대충 빗은 듯 헝클어져 있었다. 

"네, 안녕하세요."

나는 바짝 긴장하여 예의바른 티를 내려 노력했다. 저번 오디션 때 나를 휘감았던 위축감이 다시 나를 사로잡았다. 

"네. 앞으로 열심히 같이 잘해봐요." 

지서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는데 꽤 인간적이었다. 좋은 사람- 이란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네."

그러고 보면 지서는 저번에 오디션을 볼 때 건너편의 사무실에 있었다. 내가 연기하는 것을 눈으로 보진 못하더라도 소리는 들었을 것이다. 무슨 느낌이 들었을까?

"자, 판소리 연습하자!"

더킹이 연습 천막에서 단원들에게 소리쳤다. 단원들이 "네!"하며 연습 천막으로 뛰어들어갔다. 

"제이 씨도 가 봐요."

지서는 나지막히 말했고 나는 "네!" 하며 연습 천막으로 달려들어갔다. 

연습 천막에서 더킹을 중심으로 나를 포함하여 다섯명의 단원들이 둘러앉았다. 오디션 때 더킹의 양 옆에 있던 젊은 남녀와, 키가 작고 얼굴이 하얀 여자, 보통 키 정도 되고 미소가 부드러웠던 여자, 보통 키 정도 되고 다소 신경질적인 인상의 여자가 더 있었다. 나는 그 인상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간단한 자기 소개가 끝난 후, 더킹이 판소리 한 대목을 선창 하면 단원들이 따라 하는 식의 연습이 시작되었다. 다들 잘 따라했다. 나만 빼고.

더킹이 소리를 멈추고 웃으며 말했다.

"제이 님, 아니 이제 말 놓을게, 괜찮지?

"네, 네."

"제이야. 음정은 맞춰야지?"

"아, 네."

이상하다. 음정을 못 맞추겠다. 더킹은 남자치고 굉장히 고음을 냈는데, 여자 단원들은 그 음정에 그대로 맞춰 소리를 냈고, 나를 빼면 유일한 남자 단원은 한 옥타브 아래 음정을 낼 법도 한데 그대로 고음을 냈다. 나는 그 고음까지 목이 올라가지 않았고, 한 옥타브 아래로는...

"제이야."

더킹이 웃으며 다시 나를 불렀다. 그런데 그 미소가 무서웠다...

"음정!"

"네, 네."

그런데 모르겠다... 한 옥타브 아래로 무슨 음이지? 결국 나는 음정 찾기를 포기하고 그 고음을 그대로 내려 했다가 쇳소리를 냈다. 연습 천막에 웃음 바다가 퍼졌다.

"어머 어떻게, 푸하하하."

오디션 때 더킹 옆에 있던 여자가 어쩔 줄 몰라하며 웃었다. 이름이 유히키라고 했던가... 그리고 나를 빼고 유일한 남자 단원이었던 바짝 마른 남자도 켈켈 대며 웃었다. 이름이 부숍이었다.

나는 민망하고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나도... 놀기만 하지 않았는데, 포하의 바닷가에서 그렇게 노래를 불렀건만... 왜 음정 하나 못 맞추는 거지...  

미소가 부드러웠던 여자는 이름이 가비였다. 나와 나이가 같다고 했다. 가비가 나를 변호했다.

"처음이라 떨리나 봐요."

"아하하하. 그래두. 연습 많이 해야 겠다, 너."

신경질적인 인상의 여자가 나에게 말했다. 이름이 나루였다. 순 규리아식의 이름이었다. 강의 나루... 배가 왔다갔다 하고... 평화로운 풍경...

내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나는 그날 내 미천한 실력만을 드러낸 채 연습을 종료했다. 위기감이 엄습했다. 오디션 때도 별볼일 없는 실력만을 보여주고... 하도스 대학에 있을 때도 후배들로부터 연기 잘 한다고 존경을 받았는데... 부끄럽다... 이제 이 극단원들로부터 얼마나 무시를 받을 것인가... 나를 왜 뽑았을까?

나는 숙소 천막에 누워 부끄러움과 의문 투성이의 마음들을 어루만지며 잠이 들었던 것 같다. 파란 소년이 어느새 내 눈 앞까지 다가와 물었다.

"애초에 재능도 없는 네가 배우가 되겠다고?"

나는 눈을 부릅떴다.

"세상에 출중한 실력의 배우들이 넘쳐 나. 그런데 고작 너 따위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만 둬. 빛세공단이나 들어가. 아니면 바람세공단이나."

나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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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꿈꾸는 유랑극단
최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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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사랑스러운* 지혜의 여신' 이라는 문장에 '운*지' 가 포함되어 있다고 업로드가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사랑스러운' 앞에 *을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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