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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르포 <언더그라운드> 11~15화
게시물ID : art_202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천극진
추천 : 0
조회수 : 36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2/10 16:56:19
*본 내용은 2006~2007년 지하철 공익요원을 하며 겪은 경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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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Lonely Shoe]

쿠웅!...


아침 8시

역무실에서 CCTV모니터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직감적으로 큰일이 터졌음을 느꼈고 재빨리 상황보고하고 역무원과 함께 헐레벌떡 내려갔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몰려서 웅성거리고 있고 사고를 목격한 여고생 두세 명이 울면서 덜덜 떨고 있었다.

역무원은 긴급전화에 큰 소리로 사고상황을 알렸고 나는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라 안절부절하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뭔가 교육받은 대로 조치를 해야 하는데 아무 생각이 안 떠올랐다.
심장은 벌렁거리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땀이 쏟아졌다.

열차와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물러서라고 소리쳤는데 아래에 시체가 있다고 생각하니 고개가 내려가질 않았다.

모두가 쇼크상태였다.
승강장에 이상하고 불쾌한 공기가 맴돌아 숨이 막혔다.

기관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뛰어왔고, 역무원들도 사태수습을 위해 뛰어다녔다.

잠시 후 119대원들이 왔고 역무원들과 함께 자살자를 찾으러 선로로 내려갔다.
급정거한 열차가 20미터정도 밀려가서 자살자는 열차 밑에 있었다.

반대편 승강장에서 자살자의 여자친구와 여자친구 어머니라고 하는 두 여성분들이 건너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자가 실연을 당해서 여자친구의 출근길에 자살예고하고 뛰어내렸던거였고 그때 그 두 사람은 건너편 승강장에서 목격했다고 한다.
두 분 중 특히 여자친구분이 쇼크를 많이 받아 몸을 떨면서 실신하려고 해서 역무실로 업어서 올라가려고 했지만 안가겠다며 버티는 바람에 역무실에서 찬물 떠오는 걸로 대신했다.

자살자는 이송 중 사망했다고 한다.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현장은 수습되었고 사건발생 20분 만에 열차는 출발했다.

역무실은 시끌벅적했다.
순경, 형사, 애인가족들, 목격자 여고생들, 과학수사대 수사관들.

선로에 물건이 떨어지면 주워올릴 때 쓰는 길다란 집게를 들고 승강장으로 가서 선로에 떨어져 있는 자살자의 너덜너덜해진 운동화 한짝을 주워올렸다.
그 주변에는 핏자국이 넓게 퍼져 있었다.

역장이 그 핏자국이 보기 흉하다며 핏자국 위에 모래를 뿌려서 덮어놓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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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Meat Train]

열차가 들어온다.
아저씨 한 명이 선로에 뛰어내린다.

쿵» 퍼억...

놀란 나는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한참 후, 상황이 수습되었고 다시 열차가 들어온다.

이번에는 할머니 두 명이 무언가에 홀린듯 선로에 뛰어내린다.
나도 같이 뛰어내려가서 잡아끌며 말려보지만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움직이질 않는다.
열차가 코 앞까지 와서 나는 포기하고 구석으로 몸을 피한다.

쿠쿵» 퍼퍼퍽...

다시 또 열차가 들어오고 이번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뛰어내린다.

쿠쿠쿠쿠쿠쿠쿵» 퍼퍼퍼퍼퍼퍼퍽~...

결국은 포기하고 가만히 서서 사람들이 열차에 갈려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꿈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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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Mc Oldie]

반신불수로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서 계단 오르내리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루에도 두세번씩 나를 호출하던 노인이 있었다.

항상 맥도날드 종이봉투를 들고 다녀서 별명을 ’맥도날드 노인’이라고 지었다.

왜 항상 맥도날드 종이봉투를 들고 다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계단 오르내리는 것을 도와줄때 종이봉투 속을 슬쩍 보니 신문들과 맥도날드 종이컵이 들어있었다.

휴무날 역 근처 맥도날드에 점심을 먹으려 들렸는데...
카운터에 주문을 해놓고 기다리는데 옆을 보니 바로 그 맥도날드 노인이 맥도날드 종이컵을 들고 음료리필을 받고 있었다.

음료를 리필 받은 노인은 구석에 앉아 음료를 홀짝거리며 신문을 읽었다.
내가 본 것만 1시간이 넘도록...

그때서야 그 노인이 왜 그것들을 가지고 다녔는지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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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Just Machine]

밤샘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퇴근하던 지하철 청소용역 아주머니께서 승강장에서 졸다가 선로 위로 떨어져 팔이 부러졌다.

팔이 부러진 아주머니는 해고되었는지 다시는 볼 수 없었고, 사고장소부근에 안전난간이 몇 개 더 설치되었다.

설치된 안전난간에는 곧 광고판이 추가로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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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Fire Fighter]

역무실에서 CCTV 모니터링을 하며 종합사령실과 열차기관사 사이에 나누는 무전통신을 듣고 있었다.

열차운행을 하던 기관사가 터널 내부에서 불꽃이 튀는 걸 발견했다고 사령실에 신고하는 통신을 들었다.
전기합선으로 인한 화재였다.
’어떤 역인지 몰라도 고생들 좀 하겠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역이었다.

승강장에 있던 후임에게 연락해서 화재조짐이 있냐고 물어보니 불꽃은 안보이지만 뭔가 타는 냄새가 난다고 했다.

바로 공기호홉기와 소화기를 챙겨들고 승강장으로 뛰어내려갔다.
역무원들과 합류하여 선로로 내려가 어두컴컴한 터널 안을 달렸다.

등에 공기호홉기를 메고 양손에 소화기를 들고 터널 안쪽 약 300미터 화재지점까지 전력질주했다.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모두 함께 소화기로 화재진화를 했다.
터널 안은 연기와 소화기분말로 자욱했다.

20여 분간 화재진화하는 동안 열차운행은 계속되었다.
진화작업하다가 열차가 오는 낌새가 느껴지면 벽쪽 통로에 피했다가 열차가 지나가면 다시 진화작업하는 것을 서너 번 반복했다.

열차가 지나갈 때마다 강풍에 먼지와 소화기분말이 휘날렸다.

어느 정도 정리되자 기술직원 2명만 남겨두고 다시 돌아가기 위해 또 터널을 달렸다.

한참 달리는데 뒤에서 열차소리가 나자 모두 '열차!'라고 외치고 벽에 붙었다.

나는 등에 맨 산소통 때문에 옆으로 기댔는데 어깨 바로 한 뼘 옆으로 열차가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역무실로 복귀했을 때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고 온통 먼지와 소화분말 투성이였다.

박진감 넘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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