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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르포 <언더그라운드> 16~20화
게시물ID : art_202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천극진
추천 : 2
조회수 : 46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12/12 17:54:05
*본 내용은 2006~2007년 지하철 공익요원을 하며 겪은 경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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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Attacking Elderly]

지금은 주민센터에서 발급해주는 경로우대 교통카드로 바뀌었지만...
내가 근무할 당시는 종이로 된 우대권을 노인들이 매표소에 신분증을 제시하고 한 장씩 가져가는 방식이었다.

우리역에서 매일 발급되는 우대권은 7000매 정도씩이었다.
현금으로 치면 700만원 이상...

역당 평균치를 3000매 정도씩만 잡아도 서울경기지역에 300여 개소의 지하철역이 있으니 매일 대략 수억 원 어치의 우대권이 발급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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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Blind Wolf]

우리역을 자주 이용하던 남성 시각장애인이 있었다.

이 사람은 항상 매표소에서 우대권을 2장씩 챙겨간다.

개찰구 앞에서 기다리다가 화장품 냄새를 맡고 여성이 지나간다 싶으면 붙잡고 열차까지 길안내 좀 해달라고 한다.
꼭 젊은 아가씨한테만 부탁을 한다.

대부분의 젊은 아가씨들은 그런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승낙을 받으면 우대권을 아가씨에게도 주고 같이 개찰구 들어가서 열차까지 안내를 받아 타고 간다.

아가씨와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몸을 최대한 밀착시키고, 싱글벙글한 얼굴로 말을 주고 받으며 안내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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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Air Walking]

여느 때처럼 막차가 끝난 후, 새벽 1시쯤 승강장 안에 남아있던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한 바퀴 순찰을 돌고 있었다.

어떤 청년이 술에 취해서 벤치에 누워 자고 있었다.

흔들어 깨워서 열차운행이 끝났으니 밖으로 나가시라고 한 다음에 다시 순찰 돌기 위해 몇 걸음 더 걸어갔을 때였다.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뒤돌아보니 그 청년이 일어나 눈을 감은채 비몽사몽한 상태로 무작정 앞으로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결국 그 청년은 그대로 2미터 밑 선로 위로 자유낙하를 했고 119에 실려갔다.
갈비뼈가 몇 개 부러진 것 같았다.

손쓸 틈도 없이 눈 앞에서 사람이 떨어져 다치는 것을 목격해서 꽤나 놀랐다.

그래도 그나마 열차운행이 종료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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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Buzzer Beater]

오후 5시 즈음, 나는 역무실에 있었다.

"뚜욷뚜두뚜두ㄸ뚣뚜두우ㄸ뚜두두!"
휠체어 리프트 호출음이 연달아서 울렸다(원래는 '뚜우'하고 한 번만 울린다).

나 : "(응답버튼을 누르며)호출버튼 한 번만 누르세요. 무슨 일이십니까?"
상대방 : "리프트!"
나 : "잠시만 기다리세요. 곧 갑니다."

승강장에 있는 후임에게 휠체어리프트를 운행시키라고 연락했다.

10초 뒤...

"뚣우뚜ㄸ두뚱우둗뚜뚜#뚜두우ㄸ뚜뚜두ㄸ뚜루우뚜뚜루두!"

나 : "네?"
상대방 : "왜 안 와?"
나 : "지금 가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또 10초 뒤...

"뚣뚣뚜뚜웅뚜뚣떵기덩뚜두뚜두두둘뚣뚜ㅜㄹ뚜뚜ㅜ두두두두둗두두ㅜ"

나 : "금방 갑니다!"

또 10초 뒤...

"뚱기더더걷뚜둗루두ㅜ룯떡꾿더더ㄸ뚜뚜두둗뚜뚜뚜두두두두두두두두둗루두ㄸ띠도ㅓ도딛똗"

나 : "......"

또 10초 뒤...

"뚜두두루ㅜㄹ뚜루루루뚜루둘둗두뚜두둗두ㄸㄹ리리리둗리디루딛ㄸ뚜두ㄸ뚜뚜두ㄸ뚜뚜뚜뚜뚜뚜뚜뚜뚜ㄸ"

나 : "아 거참! 버튼 한 번만 누르라니깐요!"
상대방 : "큭큭킥킥킥!"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뭐라 한마디라도 해주려 내려가봤다.
가보니 후임이 막 도착해서 휠체어리프트를 운행시키고 있었고...
전동휠체어를 탄 왜소증 장애우가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불친절하고 늦게 온다고 인터넷에 올릴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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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Fake Death]

어떤 여자가 승강장에서 쓰러졌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후임과 달려가보니 20대 초반의 여성이 벤치에 누워있고 그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미 다른 승객이 119에 신고를 한 상태였고, 여자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니 그냥 눈만 살짝 뜰 뿐 대답이 없었다.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은 저마다 '빈혈이다 간질이다'하며 추측들을 던져댔다.

후임과 내가 양 옆에 부축했고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인채 역무실까지 올라갔다.
119에 신고를 했던 아저씨는 옆에서 계속 따라오면서 말을 걸었다.
여성분과 무슨 사이시냐고 물어보니 아무 사이도 아니란다.

역무실에 도착하고 나서야 아저씨는 돌아갔고, 여자를 소파에 앉혀놓으니 사건의 진상을 털어놨다.

그 여자는 재수생으로 공부를 많이 해서 몹시 피곤한 상태였다.
그래서 벤치에 앉아 졸다가 옆으로 쓰러져 잠들었고.
주위의 시민들은 그 모습을 보고 빈혈로 쓰러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냥 깜빡 졸았던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잠에서 깼을 때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상황은 119대원이 출동했을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다.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실신한 것처럼 연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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