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다큐르포 <언더그라운드> 31~35화
게시물ID : art_219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천극진
추천 : 1
조회수 : 46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3/30 14:57:51
1911183_358261697693123_6407326643498012549_o[1].jpg


#31 [Free Bread]

출근하자마자 역장이 근무자들 모두 불러모아 오늘 본사에서 '역내환경 청결도 조사팀'이 온다고 비상을 걸었다.
청소용역 아주머니들을 달달 볶아 풀가동시켰다.

조사팀이 와서 캐비넷 안까지 볼지 모른다고 캐비넷 안을 싹다 꺼내서 정리하란다.
오전동안 다른 근무는 다 접어두고 역무실을 청소하고 캐비넷을 정리했다.

오후에 조사팀이 왔다.
역장하고 역무실 소파에 앉아 10분 정도 인사치례 잡담만 나누다가 그냥 갔다.

퇴근 무렵 역장은 수고했다면서 직원들에게 빵을 사주겠다고 했다.
지갑에서 삼천원을 꺼내서 나에게 준 뒤, 지하상가 빵집에 전화를 걸어서 빵집사장에게 '사람을 보낼테니 빵 삼천원 어치만 적당히 많이 보내달라' 했다.

빵집사장은 괜히 빵을 적게 줬다가 역장에게 밉보이면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을 안다.
당연히 빵집사장은 빵을 한가득 줬고 들고간 삼천원은 받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세일하는 기간에는 상가단속 좀 하지 말아달라고 역장에게 말 좀 잘 전해달란다.



11016841_360940380758588_3572793468897305522_o[1].jpg


#32 [Metal Dust]

요즘은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곳이 많아 조금 덜하지만.
내가 근무했을 무렵에는 승강장 공기가 아주 더러웠다.

열차가 들어올 때마다 쇳가루 먼지가 날렸다.
하루종일 승강장 근무를 마치고 올라오면 콧속은 시커멓고, 세수를 하면 수건이 얼룩덜룩 해졌다.

어느날 승강장 중앙에 ’실내공기질 측정기’가 설치되었다.
이제야 승강장의 공기가 무척이나 더럽다는 것을 사회에서도 관심을 가져주려나 싶었다.

그런데 역장은 청소용역 아주머니들에게 1시간에 한 번씩 측정기 주변 4미터까지 물청소하도록 시켰다.
측정기 주변 바닥에는 항상 물이 고여있었다.



10363814_363302497189043_8829965892750110964_n[1].jpg


#33 [Born Fighter]

어떤 아줌마가 매표실에 놓인 우대권을 그냥 집어가길래 역무원이 불러세워 신분증을 요구했다.

아줌마는 매표실 안쪽으로 들어와 들고 있던 지갑을 역무원 얼굴에 던지더니 바로 멱살을 잡고 테이크다운에 들어갔다.
전광석화로 달려드는 비호 같은 몸놀림이었다.

옆에서 말려봤지만 엄청난 기세로 바닥에서 구르며 역무원을 발로 차면서 욕설을 날렸다.
겨우 떼어놔도 한참을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나중에 경찰이 왔는데 그 아줌마는 오히려 자신이 역무원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억울했지만 그곳이 CCTV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 곳이라서 증거가 없었다.
졸지에 폭행범으로 몰려 경찰서에 가서 진술서를 쓰고 나왔다.
몇주 뒤에는 검찰청까지 가서 목격자 진술을 했다.

그 뒤로는 싸움이 터지면 바로 말리기 보다는 우선 증거확보를 위해 핸드폰부터 꺼낸다.



10991695_366020296917263_5610806597228353008_o[1].jpg


#34 [6 3/4 Platform]

이제 슬슬 2달 정도 남은 말년이었을 때였다.

저녁에 출근하니 간밤에 투신사고가 났었다고 한다.
이번에도 안전교육을 한다며 사고당시의 승강장 CCTV 녹화본을 반복해서 보여줬다.

오후 12시 30분경 30대의 남성이 뛰어내렸다.
열차가 들어올 때 선로로 뛰어내린 남성은 꼿꼿히 서서 당당히 열차를 맞이했다.
막차라 천천히 운행을 했는지 열차는 급정거해서 5미터 정도만에 멈췄고 남자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살아남았다.
머리를 세게 부딛쳤는지 귀에 출혈, 손에 화상, 다리 골절이 되었지만 어찌되었든 살긴 살았다.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았고, 그저 역장한테 들을 잔소리와 당분간 바짝 조여질 근무를 생각하니 짜증만 났다.

그 곳에 근무하면서 겪은 세 번째 사상사고였다.
그 세 건의 사고장소는 모두 6번칸의 똑같은 지점이었다.

자살의 명소인가 보다.



10429263_369008939951732_5816662906193071097_n[1].jpg


#35 [No Soliciting]

열차내 순찰을 하던 단속요원이 잡상인을 끌고 역무실에 데려왔다.

상습범이라 벌금을 물게 하려고 경찰을 불렀지만 도착한 경찰은 한사코 그냥 훈방처리하라고만 했다.
알고보니 지하철내 잡상행위를 처벌하는 철도법 조항이 바로 얼마 전에 변경되었다고 한다.

잡상행위에 대해 '3개월 이하의 징역이나 구류’를 하는 처벌조항이 폐지되고 단순 '퇴거'만 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경찰은 단속요원을 데리고 구석으로 가더니 정 처벌을 원한다면 공공소란죄로 벌금을 물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자기가 나중에 감사 때 곤란해질 수 있다며 처리를 거부했다.

결국 그 잡상인은 훈방으로 풀려나 싱글벙글 웃으며 다시 장사하러 떠났다.

그 뒤 잡상인들은 자기네들이 더이상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지 더욱 더 많아졌다.

물론 지금은 걸리면 과태료를 내는 걸로 바뀌었다.



다큐르포 <언더그라운드> 1~5화
다큐르포 <언더그라운드> 16~20화
다큐르포 <언더그라운드> 21~25화
다큐르포 <언더그라운드> 26~30화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