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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니카를 보았다
게시물ID : art_282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lcroquis
추천 : 4
조회수 : 56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10/27 03:3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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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중학교 3학년 때 어느 미술 수업날 
미술 교과서와 함께 이런저런  미술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선생님이 하고 있었다 
 한면이 A4용지보다도 작은 미술책으로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 본다 한들 실제크기가 아닌 이상 그 미술작품의 깊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예를 든게 피카소의 게르니카였다 
지금 가리키고 있는 칠판 보다, 이 칠판이 걸린벽보다도 그림이 더크다는 말을 하였고 이런 작은 책으로는 작품이 낙서처럼만 보일뿐이라는 말을 하였다 

그 순간부터 막연하게 언젠가 게르니카를 제대로 보고 싶다는 작은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 당시 폭격으로 잿더미가 된 도시 게르니카를 보고 피카소가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자 만든 작품이다 
입체주의 작가답게 작품에서 참상에 대한 세밀한 표현보다는 
단편적인 장면, 장면 들이 합쳐져  전체적으로 아비규환과 같은 느낌을 줄 뿐이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성년이 된 나는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2010년 겨울. 
그 해 겨울 내 군생활에서 가장 큰 사건? 이 터진다 
훈련소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시고, 신종플루가 터지고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 사건까지 이제는 나라에 구제역이 심하게 창궐하게 되었다 
다른 사건들은 외출외박통제, 대기 상태 등으로 끝이 났지만 
구제역은 대민지원을 나가게 되었다 
이게 하루이틀이면 앞선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말년에 2-3달 정도 동안 계속 대민지원만 나가게 되었다 



 
 [혐 주의, 글이 매우 혐오스럽습니다]



 

우리가 대민지원 나가 하는 일은 축사 정리와 살처분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농장마다, 키우는 가축마다(소, 돼지) 하는 일들이 조금씩 차이나나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하자면
돼지농장은 낮에 도착하여 농장주와 정부관계자의 대화(어떻게 처리를 할건지를 정함)가 끝나면 대기하고 있던 포크레인은 농장 근처에 큰 구덩이를 파고, 우리는 축사에서부터 구덩이까지 길을 만든다 
철근 대충 박고 여기에 천막을 감아서 쭉 이어지게 하면 벽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겐 단순히 커튼과 같은 천막 쪼가리이지만 돼지는 이를 벽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이걸 축사 입구에서 부터 구덩이 까지 쭉 둘러치면 
돼지에겐 집에서 묘지로 이어지는 직행길이 되는 것이다 
이 다음에 본격적인 살처분 작업이 시작된다 
포크레인은 구덩이 바로 앞에 진을 치고 
우리는 축사에서 부터 구덩이 쪽으로 ‘돼지 몰이’를 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초원에서 양떼몰이와 비슷하지만 그렇게 목가적인 풍경은 절대 아니다 

돼지 특유의 역한 냄새. (진짜 소똥은 구수하다는 말이나온다)
겨울밤 돼지 살에서 김이 올라오는 모습.
정말 귀여운 갓난 애기 돼지들.
죽음의 냄새를 맡고 계속 도망치는 돼지의 모습.
평생을 새끼만 낳는 모돈.
평생을 새끼만 만드는 숫돼지.
발톱이 빠져나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돼지들
포크레인의 요란한 작동소리와 
쉴틈 없이 나타나는 꿰에에에에에에엑ㄱ 거리는 비명
아무리 사육장이라지만 농장이란 말보다 공장이 더어울리는 환경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있는 사람. 
함마로 돼지 머리를 치기도 하고, 각자 다리 하나씩 잡아서 4명이서 돼지를 들고 가기도 하고, 정말 갓난 애기 같은 돼지를 돌 던지듯 던져 내는 모습, 돼지가 갈길 제대로 안 간다며 더욱 폭력적이고 분노하게 되는 사람... 그리고 나의 모습

어느 농장에서는 커다란 모돈이 이미 죽어 길가에 싸늘한 주검이 된채 창자가 항문으로 튀어나온 모습도 꽤나 충격적이었다
 
이런 장면장면 참혹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때까지는 게르니카가 떠오르진 않았다 

어느 한 농장은 돼지 4000두 정도를 살처분하게 되었는데 
구덩이를 깊게가 아닌 넓게 팠을 때였다 
구덩이 입구로 우리가 돼지를 몰면 입구를 지키고 있던 포크레인이 돼지를 밀어 넣어버린다 
구덩이를 만들때 두꺼운 장판?고무판? 같은것을 까는데 이게 설치되면 미끄러워서 돼지는 물론 사람도 못 올라온다 
그런데 여기는 깊게 파질 못했다.. 
반 정도 작업을 하니 농구코트만한 구덩이에 돼지가 서로 엉키고 엉켜있고 서로를 밟고 올라서며 한두마리씩 탈주 돼지가 생겨버린것이다 
한두마리야 사람좀 붙어서 다시 넣으면 되지만 앞으로 남은 숫자가 제법 되니 작업 스타일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입구까지 돼지를 몰면 포크레인으로 ‘찍어서 밀어버리기로’ ..
우드득 돼지 등골 부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 등골이 부숴지는 것만 같았다 
돼지들의 비명소리들도 한층 커졌다 
이렇게 해도 구덩이는 얕고 돼지는 많으니 쌓인 돼지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포크레인이 이제는 이빨(버킷의 튀어나온 끝부분)로 구덩이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돼지가 서로엉켜 발버둥 치던 구덩이에서 이제는 내장들과 피가 섞여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형태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잘 상상이 안갈텐데 농구코트 만한 구덩이에 중학생 정도의 사람 4000명이 맨몸으로 뒤엉켜 있다 상상해보라 여기에 토막나고 피터져있다 
쿠애에에엑 거리던 비명은 살려달라는 말로 들리기 시작한다
여기이 숫돼지들이 더해지는데 얘들은 그 와중에도 짝짓기를 하려 다른 돼지들 위에 올라타있다
역한 냄새, 목욕탕에서처럼 올라오는 김, 피떡된 현장, 줄어드는 비명소리 

그 광경을 지켜보며 담배만 줄줄이 태울 뿐이었다 
형언할수 없는, 그로테스크한, 아비규환 어떤 단어도 그날의 참혹함에 어울리는 단어를 찾지못했다 
다만 그때 나는 모니터로 작게만 봤던 게르니카를 보았다 
말머리, 혼이 빠져나간 사람, 토막난 장면들
아마 피카소가 보았던 게르니카는 이랬을 것이라는 추측이들었다
 

멀리서 그쪽을 보지마라는 소리가 점점 귀에 들린다 



내가 본 광경을 표현하라면 실제사진보다 글보다 무엇보다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더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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