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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모습이 그대로 나의 모습이 된걸 보았을때..
게시물ID : baby_229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질풍노도※
추천 : 12
조회수 : 911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7/12/16 02:25:07
어린시절, 아버지는 무서웠다.
 
단호했고, 한번 "안돼" 라고 말하면 무조건 "안되는것" 이라고 생각했다.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을 사달라고 했을때 "안되" 하면 그걸로 끝이었고 서운한 감정도 없었다.
아버지가 하루 3장 숙제를 냈던 수학문제집, 못풀면 잘라져 있던 답안지를 몰래 찾아서 배껴서라도 답을 채웠다.
 
 
아버지만큼 키도 크고 머리도 컸다고 생각한 고1, 17살.
정말 좋아했던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하기 위해 얼마 없던 용돈을 받아서 피시방에 갔다.
 
 
피시방까지 쫓아온 아버지를 외면하고 게임에 몰두했던 나,
아버지는 집에서 거의 권투하는 사람처럼 나를 주먹질 했다.
스스로 컸다고 생각했던 나는 맞고도 씩씩대면서 피시방 가서 다시 게임을 했다.
 
20살이 되고..
아버지는 "공부, 대학교 입학" 이라는 자식의 목표가 끝나자, 나에게 큰소리 한번도 없이 대했다.
그런 아버지가 낯설었지만 '아.. 내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 그동안 공부 잘하게 나한테 잔소리하고 엄하게 대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직도 아버지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이해가 되었다.
 
 
30살, 나도 아버지가 되었다.
 
자식의 말 잘 들어주고 잘 놀아주는 따뜻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잘 따르고 친구처럼 따르는 아이.
장난감도 잘 사주는 멋진 아버지.  아버지한테 받지 못했던 그런 것을 내 아이에게 해주면서
내가 받지 못한 즐거움을 내 아이에게서 대리만족을 느낄려고 했던걸까?
 
아이가 하는 말은 잘 들어주고, 무릎에 앉혀놓고 책도 들어주고 원하는대로 해주었다.
와이프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게 문제다" 하고 지적했지만, "36개월 전까지는 아이 말 잘 들어주고 수용적으로 해야된대" 라는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말로 나를 합리화 시켰다.
어린시절 구경도 못한 휘황찬란한 장난감 시리즈를 사줘도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내가 못한 만큼 즐기는게 부러웠지만
아이가 즐거워한다면 나도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6살이 되고, 더 컸다.
 
아버지에게 못받은 따뜻함을 주고 친구처럼 친하게 컸다.
유치원 입구까지 데려다 주면서 매일매일 달리기 시합하고, 내 무릎에 편하게 앉아서 책도 보고 장난감도 가지고 논다.
 
 
내가 즐겁고 편할때는 아무일도 없었다.
 
하지만 와이프와의 잦은 대화 단절, 양육을 혼자 맡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의 답답함과.. 하루일을 끝내고 온 후의 피곤함.
 
난 아버지의 한 마디에 절대적으로 따르고 토 하나 달지 않았던것처럼
 
내 아이도 아버지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따라줄거라고 생각했을까?
 
 
언제나처럼 나에게만 와서 책을 가져와서 읽어달라는 아이에게
 
글자도 아니깐 너가 좀 읽어보라는 말에.. 아이는 왜 약속대로 안해주냐고 화내면서 방에 들어가고,
 
다시 나와있는 아이에게 난 미안함보다는 내 피곤함과 아픈 목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책 안 볼거면 이빨닦고 잠이나 자라" 고 악 지를때
 
남의 일인양 컴퓨터 앞에서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와이프의 행동이 나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난 아이에게 계속 "아빠가 말했다. 이제 빨리 가서 씻고 자!" 하고 명령하듯 말했고
 
억지로 안고 씻으러 갈려 했다. 아이는 몸에 힘을 빼면서 거부했고
 
난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고 소파에 내동댕이 쳤다.
 
 
무서움을 느낀 아이는 내 말에 복종했고 울지 말라는 말에 울음도 그쳐가며 그대로 따랐다.
 
 
그 순간에는 내 말이 맞고, 내 말대로 한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가 나오지 않는 울음을 참으면서 침대에 누워 잠들떄,
 
 
내가 고1때 아버지에게 맞았던 기억이 살아났다.
 
자식이 말을 듣지 않을때, 대화나 수용이 아닌.. 폭력으로 제압하고 관철시켰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게 내 모습이 되어 나타났을까?
 
왜 나는 나보다 힘없고 약한 상대에게 폭력을 행사했을까, 잠시 화를 참고 말로 설득하면 안되는 것일까?
 
 
현실에서의 나, 직장생활에서의 나, 친구관계에서의 나는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못하고
"착한 사람" "좋은 사람" 이미지로 살고 있으면서 말이다.
 
 
아버지에게서 보였던 모습이 나의 모습이 되고,
 
아이에게 했던 내 행동이, 먼 훗날 자신의 아이에게도 똑같이 옮겨갈거라고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알량한 자존심과, 말로 설득하지 못하고 결국 폭력으로 내 생각을 강제한 내 모습이 초라하다.
 
이것은 너를 위한거였다. 너를 위한 훈육이었다는 합리화도 못하겠다.
 
 
 
 
아버지에게는 한번도 듣지 못했던 "사랑한다" 는 말,
나도 아이에게 한번도 하지 않았다.
낯뜨거워서 한번도 하지 않았다. 예쁘고 귀엽다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하지만 입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오늘은 인터넷으로 이렇게 내 생각을 적지만,
 
오늘의 반성을 꼭 잊지 말고, 내일은 꼭 아이에게 말하고 싶다.
 
 
"어제는 아빠가 잘못했어. 그건 약속을 안 지킨 아빠 잘못이야.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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