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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가지 현 시점에 깨지지 않을 MLB 기록들 3. 시즌 장타율
게시물ID : baseball_1179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토키와장
추천 : 1
조회수 : 32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9/11 18:32:35
기록: 1920 베이브 루스 .847
2000: 2001 토드 헬튼 .698 
약물: 2001 배리 본즈 .863  

1920년은 야구사에서 가장 유명한 해들 중 하나일 겁니다. 
'라이브볼' 시대가 개막한 시즌이면서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복귀한 시즌이죠. 
조지 시슬러와 로저스 혼스비의 전성기가 시작됐고 피트 알렉산더가 마지막으로 리그를 압도한 시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1920년을 대표하는 것은 역시 루스가 남긴 성적일겁니다.   

공인구 변화로 인해 타고투저의 흐름이 시작된 그 해, 루스는 54홈런을 때려냈습니다. 
전 해인 1919년 투수를 겸업하며 세운 29홈런 메이저리그 기록을 재 경신한 것으로 홈런 2위 조지 시슬러와의 차이는 35개. 
루스보다 많은 홈런을 때린 팀은 양키스밖에 없었습니다. 소위 '빅볼'이라고 하는 홈런의 야구가 시작된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죠. 
이러한 압도적인 장타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루스는 .847의 장타율을 기록했습니다.   

루스와 본즈를 제외한 타자들의 시즌 최고 장타율은 1927년 루 게릭이 기록한 .765로, 
8푼 2리 내로는 근접한 타자가 없을만큼 이 기록은 가장 압도적인 기록의 하나입니다. 
금지약물 복용자들의 기록을 지운다면, 2000년대 들어와서는 7할을 넘는 장타율 자체가 없을 뿐 아니라 
7할에 가장 근접했던 2001년의 토드 헬튼은 쿠어스필드를 홈으로 사용한 타자였습니다. 
베이브 루스 자신도 8할 장타율을 기록한 것은 두 시즌(1920,21)에 그쳤고 본즈 또한 두차례(2001,04)에 그쳤습니다. 
8할 장타율은 그만큼 어려운 기록입니다.   

1920년의 베이브 루스는 '야구의 신'의 전성기, 공인구의 변화, 1차 대전으로 인한 투수 수준의 저하, 
투수들의 피홈런에 대한 경계 부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하나의 기적으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한편, 1920~1924의 최전성기를 보낸 루스는 1925년의 부진을 겪고 다시 1926~1931년 동안 대활약을 보여주는데요, 
20년대 초반의 활약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물론 매년 10+ WAR의 대활약이긴 했습니다.) 장타율 신기록을 세우면서 
그가 기록한 WRC+ 230, 13 WAR은 단순히 위대한 타자의 범주를 벗어난 기록들입니다.    

경신 가능성: 전무. 이보다 2할 가량 낮은 기록이라도 타자를 MVP로 만들기에 충분할 겁니다.  

가능성 있는 선수: 없습니다. 1927년 루 게릭의 .765도 위대한 타자의 역대급 플루크 시즌에나 나올 수 있는 기록입니다.  

참고자료: 니그로 리그의 조시 깁슨은 30년대 말~ 40년대 초에 1이 넘는 장타율을 기록했다고 전해집니다. 
구 양키 스타디움 역사의 장외홈런 3개 중 2개를 날린 이 위대한 타자는 그러나 메이저리그에 설 기회를 받지 못했습니다. 인종차별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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