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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 서영이'와 실존주의
게시물ID : bestofbest_1007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yulove
추천 : 473
조회수 : 53780회
댓글수 : 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3/02/25 09:39:24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2/21 19:54:25


 '내 딸 서영이'라는 주말 드라마가 있습니다. 비교적 인기인데 그 드라마에 나오는 서영이 이야기를 좀 해 보고 싶더군요.

어쩌면 제가 힐링받고 싶어서 쓰는 글일지도 모르겠네요. 이하부터는 편하게 말하겠습니다.




  서영이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 이란성 쌍둥이인 남동생과 함께 살았다. 그런데 그 아버지라는 사람이 문제다. 이삼재라는 이름의 아버지는 딸인 서영이에게 큰 상처를 줬다. 아버지는 도박을 하다가 제주도에서 빚을 진다. 그 빚이 집안 형편으로 갚기 힘든 천 만원 정도였는데, 역시 서영이가 고생해서 다 갚았다. 서영이는 전교에서 1등했지만 고3 시절 아버지에 의해 자퇴당하고, 돈을 벌기 위해 중국집 철가방을 들게 된다. 서영이는 그런 상황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철가방 들고 배달한 돈으로 지 동생 의대 보내고 본인은 찜질방에서 살았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서영이 대학 등록금까지 빼서 도박하다가 서영이 어머니 수술 못하고 죽게 만들었다. 결국 지친 서영이는 자신이 모았던 돈 등록금 420만원을 내놓으면서 아버지에게 울며 말했다. "아버지 살려줘!, 제발".이라고.



인자하고 따뜻해 보이는 아버지(천호진)이지만 사실 서영이에게 끔찍한 짓을 많이 저질렀다.


  드라마적인 몇몇 설정(그 와중에도 안 삐뚤어지고 공부를 잘하고 동생 뒷바라지까지 했다는 등)을 제외하고 핵심만 말하자면 결국 서영이 인생은 아버지 때문에 끔찍한 지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가족에게 서영이는 끝까지 희생해야 하는 물질적 도구,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주인공 '그레고르'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그레고르는 빚을 진 아버지, 아직 어린 여동생을 위해 좋아하지도 않는 외판원 일을 힘들지만 열심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했고 가족들은 그런 그레고르를 안쓰러워하기 보다는 귀찮아 하고 나중에는 죽기까지 바랐다. 그때서야 그레고르는 깨달았다. 자신은 단지 이 가족에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음을. 꿈을 버리고 가족을 위한 희생이 부질 없었음을.


  사르트르는 이런 말을 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Existence precedes essence.)". 서영이에게 본질은 '가족끼리 도우며 살아야 한다.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라는 사회적 통념이었다. 역시 '변신'의 그레고르에게도 본질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었다. 둘 다 본질을 위해 삶을 살아왔지만 그 결과는 고통뿐이었다.


  그래서 서영이는 결심한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실존을 위해 살기로.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진실. 남들이 뭐라 하는 사회적 통념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에서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통한 진실을 우선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가족을 모두 버리고 고아라는 거짓말을 하며 좋은 집안의 남자와 결혼을 한다.



가족이 있지만 가족이 없는 결혼을 하게 된 서영.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서영이의 선택을 보며 'x년, 가족을 버린 못된 년'이라고 욕하고 비난할 수 있을까? 서영이의 아버지는 나중에 이런 말을 한다. "그 놈(서영이)이 나한테서 도망가지 않았으면 벌써 등꼴 빨리고 산 송장처럼 살았을 거다."


  실존주의란 이런 것이다. 사회적으로 말하는 통념이 모두에게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족끼리 서로 도우며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 형제끼리 의좋게 지내야 한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나라를 위해 충성해야 한다. 나이 든 어른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상사의 지시를 잘 따라야 한다. 대통령은 나라의 대표이니 지지해줘야 한다.' 등등의 사회적 통념이 우리나라에는 너무나 많다. 자신의 실존적 삶을 생각하지 않고 그러한 통념들을 억지로 따라가며 살다 보니 괴롭게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렇다면 실존적 삶을 택한 서영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거짓말을 하고 결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혼을 했다. 사실 실존적 삶이라고 생각했던 결혼이라는 선택도 사회적 통념(좋은 조건의 남자와 결혼하면 안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즉, 본질을 피해 또 다른 본질적 삶에 자신을 가두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결혼 생활이 행복할 리 없다. 


  그렇다면 이혼 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뒤늦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이 바라는 것을 찾아가면서 생활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살고 있다. 처음으로 클럽을 가기도 하고, 친구와의 수다에 집중하기도 하고, 등산도 해 본다. 무엇이 즐거운지 하나씩 경험하며 찾아가고 있다. 이제야 진정 실존적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가족을 지키려는 노력도, 가족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다시 말해서 본질에 얽매이려는 노력도, 본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순수한 자신의 실존적 삶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을 느낀다.



이 드라마에서 서영이는 실존적 삶을 살기 시작한 그때서야 편안한 미소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나중에 서영이는 아버지 때문에 자살하려고 했던 한 소년을 만나게 된다. 그 소년에게 서영이는 이런 말을 한다. "아버지가 전부는 아니야. 아버지 때문에 사는 게 아니야.". 만약 선생님이, 부모님이, 어른이, 친구가, 가족 중에 누군가가 일찍 "가족이 전부는 아니야, 학교 공부 때문에 사는 게 아니야, 남들 말대로, 남들 생각대로 살 필요는 없어."라고 서영이처럼 따뜻하게 말해 주었다면 나나,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의 삶은 지금보다 더 행복해졌을 지도 모른다. 이것이 서영이에 투영된 실존주의적 삶의 따뜻한 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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