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중대장 고자만들뻔한 이야기.
게시물ID : bestofbest_1239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eio
추천 : 354
조회수 : 25887회
댓글수 : 31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3/08/23 13:28:15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8/23 02:31:46
 
새로운 중대장이 부임하고 우리의 군생활엔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사실 사람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패기에 차있고 항상 열정이 넘쳤으며 직접 선두에 나서 하고자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다.
패기.. 열정.. 의지.. 모두 훌륭한 인간의 척도가 되는 단어들이었다.  사회에선....
하지만 군대에선 얘기가 달랐다. 지휘관이 패기,열정,의지가 넘친다는 건 곧 우리들은 똥줄이 빠지게 될거란 의미였다.
 
패기에 차있어 우리는 항상 훈련 한달전 부터 연습을 해야했고 직접 선두에 나서기에 그보다 빨리 움직이기 위해
우리들은 더 뛰어야 했으며 무엇이든지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 우리는 하지 않아도 되야할 일들을 해야했다.
제일 불쌍한 건 중대 통신병이었다. 훈련때마다 무거운 무전기를 들쳐메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중대장을 쫓아다니는
중대 통신병의 모습은 마치 한달동안 가둬놓았다 풀어놓은 비글 견주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덕분에 우리는 쉬는시간에도 편히 쉴수가 없었다. 대학교에서 축구선수로 뛰었다는 중대장은 축구 매니아였다.
수요일 전투체육시간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일과가 끝나면 항상 부대원들을 끌고 나와 축구를 하곤 했다.
그 중 유독 우리소대와 축구를 하는일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 우리 소대장 역시 축구선수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짬에 밀린 나는 그때마다 나가서 억지로 축구를 해야했다. 축구를 하는 22명 가운데 즐거워 보이는 사람은 그
둘 뿐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하루가 멀다하고 리오넬 대위와 크리스티아노 소대장이 되어 그라운드를 누볐고
시간이 갈수록 나는 내가 보병부대에 입대한 건지 상무에 입대한 건지 내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주로 수비를 보던 나는 중대장과 마주칠 일이 많았고 선수출신인 중대장을 내가 상대할수 있을리가 없었다.
매번 제껴지고 자빠지고 농락당하고 능욕당하며 매번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였다. 이제는 축구공만 봐도 치가 떨릴정도였다.
그렇게 진급심사를 축구시합으로 보는건 아닐까 의심이 될때 쯤 장마가 시작됐다.
 
최악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축구는 비오는 날 하는게 제일 재밌다는게 평소 중대장의 지론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만사 제쳐두고 축구를 해야했고 축구가 끝나고 들어올 때의 그 찝찝함은 이루 말할수가 없었다.
어느 토요일이었다. 간만에 휴식을 즐기며 TV를 보고있을때 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불긴한 예감이 들었고
아니나 다를까 집합명령이 떨어졌다. 그날따라 운동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더할수 없이 무거웠다.
졸지에 여자 아이돌의 현란한 춤사위 대신 중대장의 현란한 발재간을 볼 생각을 하니 시합이 시작하기 전부터 한숨이
터져 나왔다. 시합이 시작되고 나는 평소처럼 중대장에게 능욕당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분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날 앞에두고 요리조리 몸을 움직이는 재간둥이같은 중대장의 모습을 보니 어느순간 내 안에서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내 평화로운 휴식을 안락한 군생활을 그리고 아이돌의 춤사위마저 모두 앗아간 존내가 내 앞에서 뛰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날 제끼고 앞으로 질주하는 중대장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내안의 분노에 몸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나조차도 믿기지 않는 속도로 뛰어들어가 중대장을 따라잡은 후 온몸을 날려 태클을 시도했다. 그때의 나는 이미 내가 아니었다.
나는 98월드컵 멕시코전 골을 넣은 후의 하석주가 되어 양발태클을 날렸다. 이청용을 노리는 톰밀러가 빙의한 듯 거친 태클을
날린 후 우리는 뒤엉킨 채 쓰러졌다. 후에 선임의 말에 의하면 그때 나의 모습은 오락실에 있던 슈가~ 슈가~ 하는 축구게임의
슈퍼태클을 보는 듯 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넘어진 이후에도 공을 따내기 위해 이리저리 발길질을 하던 나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낄수 있었다. 내 발은 엉뚱한 공을 차고 있었던 것이다. 내 다리는 중대장의 사타구니 근처에서 움직였고 이미 중대장은
실신직전 인듯 보였다. 그렇게 경기가 중단되었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중대장은 스스로 일어설 수 있었다.
이성을 되찾고 만감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이런 내 우려와는 달리 중대장은 시합중에 일어난 일이니 신경쓰지 말라고
쿨하게 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말과는 달리 미세하게 떨리는 중대장의 사타구니는 그리 쿨해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중대장의 축구사랑은 계속됐지만 왠지 우리소대와 시합을 하는 날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