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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까든 콩빠든 이거보면 은근 눈물 나온다.
게시물ID : bestofbest_1449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똥光
추천 : 272
조회수 : 31741회
댓글수 : 45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4/01/19 13:47:20
원본글 작성시간 : 2014/01/19 11:45:01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oKs9u


이글쓴사람 진정한 콩빠!이면서 콩까!!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hongjinho&no=158939&page=1&exception_mode=recommend




 




살다가 뒤 돌아 보면 어딘가 기억이 닻을 내리고 있는 지점이 있다. 그땐 그랬지하고 과거를 추억할 때 떠오르는 바로 그 지점.

 

내게 그건 2003년의 어느 뜨거웠던 여름이다. PB's의 예감과 넬 1집과 자우림 4집으로 기억 되는

월드컵의 열기는 사그러져가고, 나루토와 원피스는 재밌었고, 학원 끝나고 친구놈들과 피씨방가서 스타 한 판 때리고, 해질 무렵 저녁먹으며 게임채널을 보는 게 일상이던 그때.

 

 

 

-

아직 스갤은 태동하기 이전이었고 모든 게 순수하고 명료했다. 

한낱 스타보는 양민이었던 나는 플토유저였음에도 홍진호의 팬이었고.

그 당시 홍진호는 왕중왕전과 KPGA 위너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저그의 최강자였다.

양대리그로 재편된 이후 우승이 없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었지만, 모두 그가 다시 또 한번 우승할 수 있을꺼라 믿어 의심치 않던 날들이다.

 

당시 최 전성기였던 홍진호가 저그 최초 정규리그 우승 타이틀을 가져갈 거란 게 팬들 사이에서는 거의 기정 사실이었고, 2003년 여름에 바로 그 기회가 왔다.

상대 서지훈은 4강서 임요환을 3대떡으로 발라버리고 올라왔지만 베테랑인 홍진호에 비해 아무래도 신인이었다.

홍진호의 대 테란전 승률은 70%를 넘어가고 있었으며 큰 무대에 서본 경험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리고 홍진호는 그 누구보다도 우승타이틀이 필요하던 상황이었다.

기회였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이 그의 우승을 점쳤었다.

 

 

 

-

홍진호의 팬이 된 이유는 우선은 물론 상남자답게 휘몰아치는 플레이스타일 때문이었다.

그는 재밌게 이기는 법을 알았던, 몇 안되는 스타일리쉬한 프로게이머였다.

 

동시에 그가 테란을 정말 잘 잡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테란 위주로 돌아가는 판이 싫어서였는지, 그와 결승에서 맞붙었던 상대가 항상 테란이어서였는지, 아니면 그냥 테란이 싫었던 건지 우선순위는 정확치 않지만 결국 나는 늘 테란 반대편에서 응원하곤 했다. 그래서 대테란전 스페셜리스트 홍진호는 나의 영웅이었다.

그래서 홍진호가 테란을 잡고 우승할거란 기대는 너무나도 당연해서 나는 그 반대의 경우를 상상하지 못했다.

손오공이 프리져를 물리치고, 학원물에서 주인공이 결국 진여주인공과 맺어지는 것 만큼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내가 인생 최초로 응원했던 현실의 영웅은 그날

결국 그들처럼 승리하지 못했다.

그 다음 찾아온 기회에는 최연성이 있었다.

TG 삼보배 제 3 경기는 좋은 경기였지만 VOD를 돌려 재감한 적은 없다.

그게 그의 마지막 결승전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박성준이 저그 최초의 양대리그 우승자가 되었다.

 

 

 

-

콩은 대차게 까였다. 그 전부터도 나오던 소리였지만, 준우승의 아이콘으로서 그는 스갤에서 까임의 대세가 되었다.

하지만 막상 그당시에는 어렴풋이 억울하고 화가 좀 난다 뿐이지 지금과 같은 극렬한 분노를 느끼진 않았었다.

홍진호는 언젠가 우승할 수 있을 거라고, 그 누구도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콩빠들은 홍진호는 우승자였다고 주장했었다.

상식적으로 현재 정규리그로 분류 되는 NATE배의 탑시드를 받았는데, 어떻게 그게 한낱 이벤트전일 수가 있겠느냐.

그러나 누군가들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그리고 2004년을 전후로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그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점차 '역사'가 되어갔던 것이다.

 

모든 콩빠의 마음이 다 같겠으나 홍진호의 우승들이 도둑맞았다는 사실은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누군가의 필요와 의도가 개입되었음이 분명하리라.

그들이 의도했던 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혀 뒤쪽부터 구역질이 밀려오는 더러운 작당임이 분명하다.

조금씩 희석되어가며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해도, 지금도 가끔 스타판을 기록하는 입장에 있던 자들의 선택이 한 사람의 청춘에 불러온 후폭풍을 떠올리면 바닥없는 분노가 치밀곤 한다.

 

 

 

-

돌아 돌아 오면 결국, 다시 또 올림푸스다.

홍진호는 이때 우승 했어야 했다. 우승해서 세치 혀로 그의 왕관을 찬탈해 간 자들에게 빅엿을 먹여줬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 이후 4강 8강은 여러 번 갔지만... 거기 까지였다.

 

 

 

-

스갤에서 콩빠로 지내는 데에는 굉장한 멘탈이 필요했다.

콩을 깐다는 게, 처음에는 여느 선수들을 희화화 하듯 장난처럼 재미로 시작했으나 온갖 사건이 터지면서 도를 넘었기 시작했다.

2004년 박성준이 우승하고, 3연벙이 있었고, ㅇㅎ가 있었고, 지각 몰수패가 있었고, 그 다음 부터는 그냥 모든 게 문제가 됐다.

 

원래부터 모두 까는 곳이었으나 홍진호에 대해서는 특별히 잔혹했다. 장난스런 합성에서 시작해 노골적인 인신공격에 이르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들이 처음부터 다 콩까는 아니었다. 내가 아는 한 2004년 초 스갤의 태동기와 2006년쯤을 비교했을 때 가장 온도차가 나는 게이머는 압도적으로 홍진호다. 즉 그들 대부분은 언젠가 한 번쯤 홍진호를 응원한 적이 있던 사람이란 소리다.

 

소위 악질콩까키워들과 배틀을 뜨다 보면, 무작정 썅욕만 하는 미친놈들이 있고 썅욕 반 논리 반으로 까대는 놈들이 있었다. 후자가 더 무섭다. 그들의 논리는 아직까지 홍진호에게 속고 있는 너희는 바보라는 거였다. 그는 우승 하기에는 이제 글렀고 우승한 적 조차 없는 한물 간 올드인데 빨아 무엇하냐는 거다. 그는 우리와 너희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고 믿음을 배신했으며 자기 자신의 한계에 맞부닥쳤다는 거다.

나는 보통 웃어 넘겼고 가끔은 싸웠다. 그러나 늘 화가 난 상태였다. 그냥 존나 열이 받았다. 홍진호는 분명 우승 한 적이 있었고 내 두눈으로 똑똑히 지켜봤지만 그게 아니란다.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억울해도 하소연할 데도 없고 피가 거꾸로 솟고 나날이 전투력이 상승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2006년, 내가 응원하던 스타급 올드 게이머들은 점점 눈과 손이 빠른 젊은 테크니션들에게 밀려나기 시작했으며 스타일리스트는 자취를 감춰갈 무렵으로 슬슬 스타에 흥미가 떨어져갔다. 공부도 해야 했고

 

그때 홍진호가 있었다. 신한 시즌1 4강에서 한동욱을 꺾으면 조용호나 변은종과 결승에서 맞붙게 된다. 저저전 승률이 높기에 이번에야말로 기대를 걸어볼만 했다. 그러나 5경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그냥 꿈으로만 끝나고 말았다.

홍진호는 3.4위전에서 승리했고, 한동욱이 결국 결승에서 조용호를 꺾으며 약간은 만회하는듯 했다. 그러나 시드를 얻어 진출한 다음 리그에서 인상적이지 못했으며 그게 마지막 스타리그였다.

 

나에게도 마지막이었다. 어느 순간 모든 게 시들해져 있었다. 나는 이제 더 화도 안났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가 공군에 입대한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기말시험을 마치고 디씨에 접속했다. 온 갤러리가 난리가 났다. 황신이 코를 팠단다. 스동갤에서 편집 된 영상을 볼 수 있었다.

내 어린 날의 영웅은 아직 그 무대에서 여전히 치열했다. 콧등이 시큰해졌다.

 

 

 

-

내가 응원했던 사람들이 청춘을 팔고 인격을 소모해가며 차려 놓은 판을

쓰레기같은 놈들이 한낯 돈 몇 푼에 영혼을 팔고 엎어버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깨발랄하던 스갤러들이 진지해졌다. 안 그래도 흔들리던 판이 가시적으로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누군들 안 그랬으랴만은. 

 

 

 

-

그가 은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듬해엔 스타리그가 막을 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어린 날은 그렇게 끝났다.

돌아보니 아무 것도 안 남았다

 

 

 

시간은 흐르고, 이제 나는 그당시 내 어린날의 영웅보다 더 늙었다.

 

그리고 더 지니어스에서 다시 만나게 된 그는 풍채가 좋아지고 얼굴 빛이 밝아져 있었다.

선수시절 그를 억누르던 신경질적인 긴장감과 독기, 암흑기의 의기소침함을 털어 낸 활기 찬 기색이었다.

허물어지는 딕션은 여전했지만 내가 가진 기억보다 더 개구지고 밝은 모습이다.

보기 좋았다.

 

그리고 그토록 염원하던 우승소감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했던 길들이 절대 틀린 게 아니다'

이 말이 그의 인생을 돌아보게 했다.

 

그가 지금까지 틀린 길을 걸어왔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으랴?

애초에 그에게 틀린 지도를 쥐어 준 자들을 탓할 수 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구를 탓 하는 법을 몰랐다. 묵묵히 쏟아지는 돌을 홀로 맞으며 그 길을 헤쳐나왔다. 

나는 한 인간에게 이렇게 순수한 감동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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