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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 마법의 콘돔
게시물ID : bestofbest_1454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eio
추천 : 581
조회수 : 49380회
댓글수 : 47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4/01/22 22:27:45
원본글 작성시간 : 2014/01/22 20:09:43
 
가로등 조차 없는 밤거리를 얼마나 뛰었을까. 이미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살을 에는 겨울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로
몸은 뜨거워져 있었다. 이게 다 싼맛에 교외에 있는 집을 계약한 탓이다. 거기다 집 앞에 있는 유일한 편의점 마저 직원이
자리를 비웠는지 문이 굳게 잠겨있는 탓이다. 하지만 손놓고 앉아있을 수 많은 없었다. 뛰어야 한다. 쉬지말고 뛰어야 한다.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 될것이다.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만리장성처럼 굳건하던 그녀의 성벽이 오늘 드디어 허물어졌다. 
결혼 전엔 절대로 안된다는 그녀의 맘을 돌리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인고의 세월을 보냈던가. 수없이 좌절하고 다시 도전하기를
얼마나 반복했던가. 그리고 마침내 절대 열릴것 같지 않던 그녀의 마음을 열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밤. 뜬눈으로 지새던 밤들의 보상을 받게 될 참이었다. 하지만 없었다. 콘돔이.
예상치 못한 사태에 힘들게 열었던 그녀의 마음의 문은 다시 조금씩 닫히기 시작했고 난 집을 뛰쳐 나왔다.
 
이것이 내가 광인처럼 밤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이유였다. 얼마나 달렸을까. 아무리 달려도 가게는 보이지 않았고 발걸음은
조금씩 무거워졌다. 그렇게 좌절감이 발목을 붙잡고 절망이 어깨를 짓눌러 걷는것 조차 힘에 부치기 시작할 때 마침내
가게를 발견했다. 성인용품이라는 간판을 보았을 뿐인데 나는 사정할 것 같은 희열을 느끼며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다.
 
카운터엔 노인이 앉아있었다. 성인용품점이라는 가게 이미지와는 맞지 않게 노인의 눈은 맑고 깊었다. 성인용품점 특유의
빨간 조명이 노인의 뒤로 후광처럼 비치고 있었다. 하지만 경박스럽다거나 음란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붉은 빛에 둘러싸인
노인의 모습에선 경건함 마저도 느껴지고 있었다.
 
"무슨일로 날 찾아 왔는가?"
 
"콘돔... 콘돔을 주시오..."
 
노인은 미동조차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다시 얘기를 꺼내려는 찰나에 노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자네... 먼길을 걸어왔군. 아마도 절실히 원했겠지. 하지만 나는 길거리에 널린 시시한 장사치가 아닐세."
 
"이런 말을 들어 봤을걸세. 콘돔을 끼우려는자 그 질김을 견뎌라."
 
처음 듣는다. 시끄럽고 그냥 빨리 콘돔이나 달라고 말하려는데 노인은 내게 물었다.
 
"어떤 콘돔을 찾으러 왔는가?"
 
말문이 턱 하고 막히는 느낌이었다. 거기까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사실 찢어진 콘돔만 아니면 뭐든 상관 없었다.
 
"대답하게."
 
".... 딸기맛?"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한 노인의 얼굴엔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달콤한 사랑을 원하는군. 하지만 사랑을 나눈다는 행위가 자네 생각처럼 그렇게 달콤한 일은 아니지."
 
"... 어째서?"
 
"자네가 한번 사정할 때 마다 나오는 정자의 숫자가 일억마리일세. 콘돔을 사용하는 순간 자네는 일억의 생명을 앗아가는거지.
 정자도 생명인데 같이 살아야지 어떻게 그럴수 있나?"
 
미친 그러면 애초에 성인용품 가게를 하지 말아야 하는것 아니냐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시간을 보니 이미 집을 나선지 꽤 오랜시간이 지났고 나는 점점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괜한 다툼을 벌여봤자 시간만 더 지체할 뿐이었다. 나는 노인의 말에 대충 맞장구쳐주기로 마음먹었다.
 
"그 아이들까지 품고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항상 미안한 마음으로."
 
노인은 짐짓 놀라더니
 
"아직도 자네같은 청년이 있었다니! 놀랍구만.. 좋네. 자네에겐 내 특별히 가장 아끼는 물건을 주지. 기다리게."
 
노인은 어디론가 향하더니 빛바랜 낡은 상자를 하나 가지고 나왔다. 꽤 오랜시간 묵혀둔 물건인지 상자 위엔 뽀얗게 먼지가 쌓여있었다.
 
"죽기 전에 이 물건을 다시 꺼내게 될 줄이야. 이 콘돔은 내가 젊은 시절 세계를 유랑하다 우연히 손에 넣게 된 물건이지.
천년된 브라질 고무나무의 수액으로 만든 마법의 콘돔일세. 말 그대로 천년에 한번 만들어 질까 말까 한 물건이지."
 
나는 시간이 가는것 조차 잊은 채 노인의 신비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 콘돔은 개기일식과 리오카니발이 겹치는 첫번째 날 밤에 반달레이 실바가 브라질리언 킥으로 벌목한 고무나무의 수액으로 만든
콘돔일세. 이 콘돔은 아주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지."
 
노인은 주변을 살피더니 나에게 귀를 가까이 대라는 손짓을 보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이 콘돔을 사용해서 관계를 가지면.... 절대 임신이 되지 않는다네."
 
노인의 측두부에 브라질리언킥을 꽂아넣고 싶은 욕구를 겨우 참아내고 나는 말했다.
 
".... 알겠습니다. 이런 귀한물건을... 잘 사용하겠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감사의 말을 남기고 나는 집으로 향하기 위해 문으로 향했다. 문밖을 나서려는 순간 노인이 나를 다시 불러세웠다.
 
"잠깐! 이거 큰일날뻔 했구만. 그 콘돔을 사용할때 꼭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네. 허허 참... 이걸 깜박하다니 나도 죽을때가 됐나부이."
 
그리고 노인은 말했다.
 
"그 콘돔.... 만든지 오래되서 조그만 마찰에도 잘 찢어진다네.. 조심히 사용하게.. "
 
노인의 말이 맞았다.
 
노인은 죽을 때가 됐다.
 
내 발이 춤췄고 노인의 목덜미가 활처럼 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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