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병신백일장] 서른 네 살 모태솔로.
게시물ID : bestofbest_1742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조폭너구리
추천 : 208
조회수 : 19486회
댓글수 : 33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4/08/16 13:25:21
원본글 작성시간 : 2014/08/11 00:06:04
옵션
  • 본인삭제금지
책 게시판 홍보.
- 커플들은 오지 마라. 진득한 남자의 향기가 풍겨오는 
아름다운 책게시판. -

-------------------------------------------------------------------------------------------------------


1. 2014년

하.....
나는 1981년생 닭띠다. 올해로 서른 네 살이다. 그리고 솔로다. 
지금까지 솔로를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쳐 왔던 작은 기록을 쓰고 싶다.
그리고 인생 후배님들은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은 몇 살이신지?
25세인데 모태솔로라고? 금방 서른 넷 온다.
30세인데 모태솔로라고? 코 앞이면 서른 넷이다.
35세인데 모태솔로라고? 연락주세요. 같이 술 한 잔 하십시다.

혹시 이런 의문을 가지신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아주 어렸을 적, 그러니까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어린 시절에는 네가 솔로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아니다. 내 기억에는 그 아주 어렸던 시절부터 나는 솔로였다. 
그래 맞다. 유치원도 아니라 정확히 '유아원' 시절부터 난 솔로였다.



2. 유아기 (1985)

정확히 몇년도였던가.
7살에 유치원을 들어갔으니까 1985년 내지 1986년에 유아원을 다녔던 것 같다.
충청북도 ㅇㅇ지역에 있는 새ㅇㅇ유아원이었다.
그곳에는 아주 이상한 관습(내지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 달에 생일을 맞이한 어린이들을 앞에 주욱 늘어놓고는
다른 어린이들이 축하 꽃다발과 선물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남자원생에게는 여자원생이, 여자원생에게는
남자원생이 선물을 가져다 주는 행사가 있었다.

짧지만 아주 정확한, 한 가지 기억이 난다.
나는 울고 있었다.
그 때, 그 유아원에서 나만 꽃다발을 받지 못하고 있었기때문에.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여자아이는 선생님이 억지스럽게 쥐어준 꽃다발과 선물꾸러미를 들고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곤 이내 울음을 터트리면서 주저 앉았다.
그래 그게 내 역사의 시작이었다. 5살때부터.



3. 학창시절- 중학생(1994~1996), 고등학생(1997~1999)

국민학생, 중학생 때도 누군가를 끊임없이 좋아했었다.
지금 기억나는 것들을 대충 갈무리 해 보자면
국민학교 5학년 때 우리반 반장이었던 혜림이.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학원을 다녔던 선희.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입시 학원에 다녔던 구미에서 전학 온 영미 등등.
끊임없이 누군가를 짝사랑했던 풋풋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같은 지역의 여고 학생들과 반팔을 주로 했었다.
반팔이란 일종의 집단펜팔이었는데 예를 들면, 
남자 고등학교의 1학년 3반과 이웃 여자 고등학교의 1학년 4반이 
집단으로 펜팔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우락부락한 외모와는 다르게 글재주가 조금 있었고, 
악필이었으나 시쓰기를 좋아하고 팝송 가사 등을 적어보냈던 감수성 덕분에
꽤 오랜 기간 여학생들과 편지를 나누곤 했다. 
으레 그렇듯, 좋은 분위기가 진행되다 보면 
방학 시즌에는 집단 미팅(반팅)으로 이어지곤 하였는데 
덕분에 나는 방학이 끝나면 항상 펜팔 상대가 바뀌곤 하였다.

당시에 우리 지역같은 촌동네에서 고등학생이 연애를 한다는 것은
통념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반에 꼭 두 세명은 연애를 하곤 하였는데,
그 친구들이 항상 들고 다니던 물건이 삐삐였다
그 때 내 소원은 펜팔하던 여학생과 사귀어서 삐삐를 사는 것이었다.
꼭 삐삐를 사서 '012486'(영원히 사랑해), '1010235'(열열히 사모) 
같은 숫자들을 쳐보고 싶었는데 고등학교 3년 내내 삐삐를 살 수 없었다.

그래도 이때는 절망하지 않았다.
나도 대학만 가면 잘 될 줄 알았다.



4. 대학교 1학년 (2000)

처음이었다.
그래, 태어나서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 생물학적인 여성이 사적인 목적으로 대화를 걸어왔던 것은 
20살, 2000년 3월이 처음이었다. ("지우개 좀 주워줄래" 같은 것 말고.)
그래봤자 같은 동아리 동기가 "안녕? 너도 여기 가입하러 왔니?" 
라며 말을 걸어온 것 뿐이었지만.
그리고 우연치 않게도 동기녀인 사슴이와 나는 같은 교양수업을 듣게 되었고
동아리 동기라는 이유로 매 주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마치 하늘이 주신 것만 같은 이런 운명에 나는 치명적인 사랑에 빠져들었다.

20살이었던 나는 '연애(戀愛)인'이 되기 위한 자격이 많이 부족했다. 
외모적으로도 나 자신을 꾸미는 방법을 몰랐고, 
그녀가 나의 내면을 바라봐 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내면도 썩 좋지 못했다.
그녀를 좋아하는 감정을 무기로 나의 감정을 마구 휘두르며 발산하였고,
그것은 20살의 여자아이에게는 매우 부담되는 일이었다.

나는 어떻게 그녀에게 접근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나의 장점을 그녀에게 보여줘야 하는지 몰랐다.
문자 답장 하나에 일희일비 하였고 그녀의 눈짓 한 번, 손짓 한 번에
무한한 시나리오를 쓰곤 했다.
그리고 그러한 답답한 마음을 최악의 방식인 '술주정'으로 풀어내곤 했고
좋은 성적으로 입학한 학교에서 모든 수업을 펑크내고
일 주일, 이 주일, 한 달, 두 달에 걸쳐 매일 술만 마시는 내 모습에 
안 좋은 소문이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내 동아리에도 내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소문은 돌기 시작했고 
부담감을 느꼈던 그녀는 정말 고맙게도 단칼에 나를 쳐내주었다. 

"혹시라도 나 좋아하니?. 나 좋아하지 마" 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고마운, 깔끔한 거절이었다. 
고백도 하기 전에 먼저 거절해 준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접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석 달 후, 한 번 더 술김에 고백했다가 차였던 것을 보면
나는 참 어리석은 놈이었다.

'짝사랑을 하는 놈이 병신같이 동네방네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면
결과적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는 것을 배웠던 것만이 소득이었다.



5. 대학교 2학년 (2001)

이 때도 처음이었다.
남자가 아닌 여성과 1:1로 밥을 먹고, 밤늦게까지 이야기하고, 술을 마시고.
난 이런 행동은 연인사이에서만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고 
곰순이랑 내가 당연히 사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전혀 아니었지만.

내 1년 후배였던 곰순이에게는 세 살 위의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 남자친구는 생기기도 잘 생겼고 키도 훤칠했는데
그에 비해 그녀를 별로 챙겨주지 않았다.
곰순이는 나와 매일 밥을 먹고 매일 전화를 하고 가끔 술을 마시면서
남자친구와는 일주일에 한 번 밥을 먹고 가끔 전화를 하곤 했다.
남자친구의 냉대가 힘들었던 그녀는 나에게 이런 저런 고민을 털어놓았고
나는 그것이 너무 고마워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던 즈음 여름이 다 되어서였다.
그녀가 드디어 그 선배놈이랑 헤어졌다고 했다.
나는 그 때 집에서 제사 지내고 남은 닭백숙을 뜯으면서 MSN 메신저를 하고 있었다.
왼손으로 닭다리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독수리 타법으로 답변을 하다가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모르게 닭다리를 내팽겨치고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나 전부터 너를 좋아했었어"

헤어졌다는 여자 앞에서 대뜸 한 답변이 저 답변이었다.
그녀에게 온 답변은 13년 전의 일이지만 어제의 일 같이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미안. 뜻밖이네. 몰랐었어. 너는 나보다 더 좋은 여자 만날거야"

어렸던 당시의 나는 막 따졌던 기억이 난다

"몰랐다고? 거짓말 하지마. 다들 그런 소리 하더라. 지겹다 이제 그런 말."

그랬더니 시크한 그녀가 한 말 던졌다. 

"진짜 몰랐어. 그럼 뭐라고 하니? 그냥 저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후배 모태솔로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오빠는 좋은 사람이에요' '오빠는 더 좋은 사람이에요' 라는 말에 희망 갖지 마라.
그냥 할 말이 저 것 밖에는 없는 것이다.



6. 대학교 3학년 (2002)

곰순이에게 한 번 더 고백했다가 또 차였다.
그녀는 이후 학업을 위해 이 나라를 떴다.
그러고 보니 사슴이도 이 나라에 없다.
곰순이도 없고.

설마 나 때문은 아닐 것이다.



7. 복학 (2006)

2003년부터 2006년까지는 기억이 없다.
군복무 문제로 휴학을 겹쳐해서는 골방에서 마비노기만 했다.
2006년에 복학해서는 같은 전공 수업을 들은 여성분에게 한 번 고백했었다.
수업시간마다 음료수, 과자 등을 사주며 나름 호감도를 높였다고 생각하고,
중간고사 끝난 이후 바로 고백하였지만 남자친구가 있다며 바로 차였다.

생각해 보니 나는 그녀와 어떤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다.
그녀가 누구인지, 그녀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녀의 성격은 어떤지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었음에도 그냥 좋아했다.
막무가내로 근처에 앉아서 초콜릿, 과자 같은 것을 내밀었을 뿐,
그 어떠한 유대감도 쌓지 않은 상태에서 어느날 갑자기 붙잡고 
"차나 한 잔 할래요" 라고 물었다. 결과는 뭐.

그렇게 차인 이후에 머리를 빡빡 밀고 
"나에겐 오로지 공부 밖에 없어"
같은 헛소리나 빽빽 지껄이면서 캠퍼스를 활보했던 기억이 난다.
아... 창피하다.



8. 대학교 4학년 (2007)

가장 쓰고 싶었으면서도 쓰고 싶지 않은 부분이다.
내 평생 가장 좋아했던 사람인 분홍이.
그러나 27살의 나는 너무 찌질했고, 그녀를 차지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 글을 쓰며 2년 간 연락이 끊겼던 분홍이를 찾아보았다.
분홍이는 그녀가 그렇게 바라마지 않던 시험에 합격해 공직자가 되었고 
이제는 결혼해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었다.
딸 사진이 참 예쁘더라. 얼굴도 변함없이 예쁘고. 
남편이 참 부럽다. 행복해라

그녀는 나보다 세 살이 어렸다.
동아리 아는 후배로 만나 같이 수업을 듣다 보니 좋아하게 되었다.
내 매력을 제대로 어필하지도 못하고 금사빠스럽게 한 달 만에 고백했다 차였고,
다시 선후배 관계로 돌아가 1년을 짝사랑했다.
그 1년 동안에 그녀와 참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녀의 환한 웃음과 유별난 리액션을 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연치 않게 괜찮은 회사에 취직하게 된 나는 취업 합격 발표가 난 날,
그 용기로 그녀에게 사귀자고 고백을 했고, 1주일 후에 거절당했다.
슬펐다. 
너무 슬펐다.
그녀를 너무 사랑했기에 그 동안 그녀에게 보였던 나의 찌질함을 용서할 수 없었고
나 자신이 너무 싫고 미웠다.
그녀를 정말 사랑했다면 보이지 말았어야 할 모습들을 너무 많이 보인 나를
용서하기 힘들었다.
나는 그렇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을 보냈고 동아리의 모든 지인들과 연락을 끊고
도망치듯 지방으로 내려가 사회속으로 숨어들었다.



9. 하반신 마비 (2010)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회사에 치여 살면서 여자를 모르고 지냈다.
정확히는 07년의 분홍이를, 그리고 그 때의 실패를 잊지 못했다.
그렇게 '내 인생에 여자는 없어'를 외치며 살고 있을 때였다.

사고를 당했다.
그냥 계단에서 굴렀던 것 뿐인데.
14시간에 걸쳐 수술을 했다.
결과는 하반신 마비.
다행히 감각신경은 살아있었고 아직 젊었기 때문에, 
그리고 완전히 신경이 절단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일말의 희망은 있었다.
그리고 1년 반에 걸친 재활훈련.
1년 반의 재활 끝에 다시 정상인처럼 걸을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자세히 보면 구부정하니 약간 어색하다)

걷고 나서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은 연애였다.
정말 연애가 하고 싶었다.
진짜 연애가 하고 싶었다.
아플 때 "연애도 못해보고 x 같네 진짜" 라고 침대에서 매일 중얼거렸다.

아프니까 정말 분홍이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수술장 들어가기 바로 전에 어머니 핸드폰을 빌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해외출장 중이라 전화를 받은 다음에 바로 끊어버렸고
난 그렇게 수술을 받으러 혼자 들어갔다.

그리고 중환자실에서 나온 날. 3년만에 분홍이와 연락이 닿았고
그녀는 병문안을 왔다.
중환자실에서 나온지 겨우 사흘 째 되는 날이었다.
온갖 기구가 주렁주렁 매달린 상태에서 그녀를 보았다.
정말 창피했지만, 그래도 꼭 보고 싶었다.

'정말 보고 싶었다고. 나 수술방 들어가기 전에 너를 꼭 한 번 보고 싶었다고.
정말 사랑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 할 수 없었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지껄이다 그녀를 보냈다.
그리고 그날 밤 많이 울었다.
정말 많이 울었다. 나는 다리 병신인데...



10. 재활 후 (2012)

지겨웠던 재활이 끝났다.
재활이 끝나고 나는 다시 직장을 구해야만 했다.
그리고 분홍이를 만났다.

이미 우리 둘은 나이를 먹을 대로 먹었고, 
나는 그녀에게 마음이 있음에도 고백할 수 없었다.
나이 서른 둘 먹은 백수가 무슨 고백인가.
직장부터 다시 잡아야지.
몇 번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겉돌고 있었다.

나는 그녀 앞에서는 언제나 철없는 놈이 된다.
시시껄렁한 이야기만 지껄이는 그런 철없는 놈.

"네가 나한테 그런 말 한 적이 있지?
내 생애 오빠만큼 나한테 잘 해준 남자는 없었다고.
나도 그렇다. 내 생애 너만큼 좋아했던 여자는 없었어.
지금 내가 이렇게 별볼일 없지만, 나 다시 일어섰다.
의사도 못 걸을 거라고 했고, 기적이라고 그랬어.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
라고 고백글을 써놓고 늘 그렇듯 시시껄렁한 이야기만 하다 헤어지곤 했다.

그렇게 우리의 연락은 다시 끊겼다.



11. 도사님 (2012)

그렇게 이리저리 방황하던 중에 친한 후배가 소개팅을 한 건 해주었다.
회사에 다니고 있던 여성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너무 분위기가 좋았다.
태어나서 처음 애프터도 성공해보고 좋은 분위기로 여러 차례 만났다.

드디어 나에게도 광명이 찾아오는구나 싶었다.
외모업그레이드를 하기 위해 피눈물 나는 다이어트를 했고,
이용원을 끊어내고 강남의 헤어샵을 다니기 시작했으며,
카드를 들고 생애 처음으로 백화점에 가서 점원추천으로 셋트로
옷을 구매했다.

매일매일이 설렜다.

그런데 진짜 모르겠더라. 그 여성분이 나를 좋아하는 것 같은 느낌은 없는데,
그냥 내가 많이 좋아하니까 만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호감은 있으니까 나를 만나겠거니 싶은 마음으로 편하게 만나려고 했는데
날이 갈수록 마음속의 의구심은 깊어만 가고, 초조하고 
구직을 위한 공부도 잘 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친한 남자 후배인 상옥이와 술 한 잔을 하게 되었다
상옥이는 전라도 광주에서 토익학원을 다니며 취업준비 중이었는데,
자기가 아는 용한 도사형님이 있다고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부모님 따라 점을 가서 봤는데 정말 용해서, 그 후에 친구들도 다 데리고 갔었고,
학생이라는 이유로 복채도 안받고 친구들과 함께 술까지 사줬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그 도사형님이 매우 보고 싶었다.
만나서 공부하는 것은 어떻게 될지 좀 물어보고 싶기도 했고
그 당시 만났던 여성분이랑 잘 될지 한 번 물어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또 내가 하반신 마비까지 갔었던 관계로 건강은 앞으로 이상 없는지
부모님 건강은 어떠신지,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아무튼 미친척하고 그 도사형님이 계신다는 전라북도 ㅇㅇ까지 
3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내려갔다.
사실 절박한 마음이라기 보다는 바람쐬러 가는 마음이 컸다.
ㅇㅇ읍성도 구경하고 시간남으면 ㅇㅇ산도 가고, 유명하다는 풍천장어도 먹고.
 
점집이 한갓진 곳에 있어서 물어물어 찾아가 보니 
도사형님은 손님들과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내용은 평범했던 것 같다. 뭐 사업을 하네 마네 그런 이야기들.

기다렸다가 도사형님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의 90%는 본인 자랑이었다.
내가 한때 100억 넘게 벌었다. 
국회의원 아무개, 법무부 장관 아무개가 다 왔다갔다
해외 사는 사람들도 다 왔다간다 등등...

'근데 여긴 왜 이렇게 허름하지?'
라는 의문이 순간 들었으나 그러려니 했다.
본인이 본인 직업의 프라이드를 갖는 건 좋은 일이니까.
또 유명인사들의 이름을 거론하니까 은근 믿음도 가고 그렇더라.
 
아무튼 그렇게 쓰잘데기 없는 자기 자랑을 한 한시간씩이나 늘어놓다가
본격적으로 神 점을 치기 시작했다.
쭝얼쭝얼 거리며 일단 신을 불러 온 다음에 점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딱 내 모습을 보더니 

"독서실이나 학원 같은 곳에서 공부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는 것이었다
속으로 '흠칫' 놀랐으나...
평일 낮 2시 쯤에 서른 둘 쳐먹은 남자가 청바지에 잠바쪼가리 입고 나타난 거면
적어도 직장인은 아닐테고, 서울말투 쓰는 외지인이 혼자서 나타난 거면
뭔가 심각한 고민이 있는 건데... 
때려 맞춰도 내 나이 대의 고민은 거의 100% 취업 고민.
거기에 뭐 학교 배낭 매고 나타났으니 
내가 맞춰도 대충 시험준비하는 구나 정도는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내색은 안하고 

"오 대단하시다" 

하고 그냥 넘어갔다.
그래도 대충 잘 맞추는구나 하는 생각은 들어서 본격적인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요새 여성분 한 분을 만나고 있는데 그 분이 자꾸 생각이 나서 공부가 잘 안된다"

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니 대뜸

"너는 色에 미친 놈이야!" 

라고 나에게 일갈을 했다.
깜짝 놀랐다!!
'色'이라니...
모태솔로한테? 왠 色?
무언가 착각을 한 것은 아닐까?
그러더니 내게 

"여자 때문에 책이 손에 안 잡히지?
 책 들고 있어도 글이 안 읽히지?" 

라고 계속 넘겨 짚었다.
그러더니 대뜸...

"네 고추에 귀신이 들렸어!
아주 지독한 귀신이네 그거
왜 고추에 귀신이 들렸냐?"

라고 나에게 말했다.
틀림없이 나에게 귀신이 들렸다고 했다.
왜 하필 거기에...
그리고 그곳에 들린 귀신은 작고 귀여운 여자아이의 형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너 작고 귀여운 타입 좋아하지?"

라고 했다.
그 때 '흠칫'하는 내 모습을 보며 도사 형님은 의기양양해 하셨다.
실제로 내가 좀 그런 타입을 좋아한다.
160 cm 전, 후의 여성을 매우 사랑한다.

그러더니 내 소중이를 가리키며 

"크지?" "실하지?" 

하시며 막 물어보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난 그냥 대한민국 표준 Size다. 
그래서 그냥 

"아 그냥 작은 편인데요" 

라고 하니

"거봐 작지? 맞아! 크진 않잖아" 

하며 말을 뒤집었다.
화가 난다. 
고추에 귀신이 들리다니.
빙의된 것도 억울한데 고추라니.
그렇게 빙의될 거면 나한테 그 모습이라도 좀 보여주지.
그렇게 심통이 나서 투덜거렸다.

"아니 그렇게 제가 色에 미쳐있고 싶어도 뭐가 있어야 미치죠"
"여자 때문에 공부가 안되는 게 아니라 여자가 아예 없어서 안되는 건데요"

라고 사실 관계를 좀 명확히 해드렸더니 흠칫하며 놀라셨다.
그러니까

"거봐 네가 그렇게 말짱히 생겼는데 여자가 없는 건 다 그 고추에 붙어있는
귀신이 훼방놔서 그러는 거야"

라고 나에게 일갈을 하셨다.
말짱하긴 개뿔.
위의 역사들이 있는데 뭐가 말짱해.
내가 얼굴이 말짱했으면 5살짜리 여자애가 울면서 뛰쳐나갔을까.
10년 내내 여자들을 쫓아다녔는데 그렇게 차였을까?
그나마 살 빼고, 머리 하고, 옷 사서 입고 다니니 인간처럼 보이는 거지.
그 때 뛰쳐나갔어야 했는데.
 
아무튼 나에게 한 마디 일갈을 던진다.

"너는 色에 미쳐있어서 공부가 안돼! 너 그 시험 준비한지 한 2~3년됐지? 
그런데 공부가 하나도 안 잡혀 접어"
 
재활에 성공해 걸어다니기 시작한 자체가 얼마 되지않았던 때이고,
그 후에 다이어트를 해 공부를 시작한 지는 한 달도 채 되지않은 상태였다.
물론, 32살이라는 나이를 생각하면 3년쯤 공부했어야 맞겠지만.
그래도 갑자기 불안해졌다.
준비하고 있던 공부를 접으라니.
이 나이에 이 몸으로 어디가서 재취업을 하란 말인가.
절박한 마음으로

"아 그러면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해야 제가 공부를 마음잡고 할까요?"

하고 물어보니

"너 하면 뭐해줄 건데?!" 

라고 되물었다.
그래서

"뭐 되기만 하면 차 한 대 못 뽑아드리겠습니까?"

하니 그 배짱이 마음에 든다며 

"좋아 오늘 너 밤에 약속있어? 형이랑 술마시러 가자" 

하고 제안을 했다.
다른 예정된 약속은 없었기 때문에 그 제안을 승낙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도사형님이 나에게 한 마디 말을 던졌다.

"내가 너 주니어에 붙은 귀신 다 떨어지게 해 줄게. 걱정을 말아!. 
오늘 나를 따먹는거야"

라고 외쳤다.

'응?' '뭐를?' '뭐를?' '딴다고?' '뭐를?'
당황하면서도 처음에는 그냥 '하하' 웃으며 넘겼다.
그러나 그 후에 밥을 먹을 때도 계속

"내가 너 주니어에 붙은 귀신 떨어지게 해준다고 했지? 니가 나를 따는 거야"
"내가 얼마나 비싼 남자인줄 아냐? 내가 신이 들렸잖아. 나랑 한번 자면
사업이 풀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갖 사장님들이 자자고 하는데 내가 거절했다"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자기가 이 고장에 처음 정착했을 때의 끔찍한 이야기도 늘어놓았다.

"형이 여기서 장사하는데 너무 장사가 잘 되는거야. 뭐 50억, 100억 금방이었지.
근데 어느날 이 동네 건달 새끼들이 찾아와서는 술 마시고 행패를 부리더라고.
그리고 지 x을(순화어 : 음경) xx 달라고 하더라고.(순화어 : 애무)
그래서 뭐 어쩔 수 없이 내가 해줬지. 근데 그러더니 그 새끼들이 대박이 나대"
라면서 이와 비슷한 류의 이야기들을 계속 하였다.

그리고 계속 

"니가 나를 따는거야." 
"내가 너를 따는 게 아냐."
"니가 나를 오늘 따버리는 거야." 
"여관에서 나를 따는거야."

라고 이야기 했다.
나는 이성은 커녕 동성에게도 저러한 저속한 표현은 써 본적도 없는데
무려 그 '딴다'가 나를 향해 쓰이는 말로 계속 듣다보니까 많이 혼란스러웠다.
너무 혼란스러웠던 나는 그냥 남자끼리 친해지자는 의미로 정리하고 넘어갔다.
더 이상의 상상을 하기는 힘들었다.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도사형님은 나에게 술 마시러 전남 목포로 넘어가자고 했다

이상했다.
많이 이상했다.
전북 ㅇㅇ에는 술집이 없었던 것일까?
뭘 얼마나 큰 술집을 가길래 전북에서 전남 목포까지 가자고 하나.
그리고 솔직히 좀 이때부터 느낌이 안 좋았다. 
슬슬 내 고추에 붙은 그 귀엽다는 여자 귀신을 떼어내는 과정이 
왠지 정상이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목포로 넘어가자고 했을 때 뛰쳐나갔어야 했는데.
그래도 솔직히 그때까지는
'아 이거 좀 위험한데?
설마 술 멕여놓고 나를 새우잡이 배에 파는 건 아니겠지'
라는 아주 나이브한 생각을 했다.
 
도사형님은 자기가 잘 아는 술집이 있다면서
목포 모텔촌 옆에 있는 술집으로 나를 끌고 갔다.
그냥 허름한 선술집이었는데 주인 아주머니와 아주 친한지 같이 앉아 대작했다.
그렇게 아주머니까지 셋이서 소주2병, 맥주 20병에 양주까지 마셨다.
그리고 도사형님은 술이 취해가면서 스킨쉽이 늘어갔다.
내 머리를 툭툭 치다가 볼을 슬쩍 만지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상옥이와 카톡을 주고 받고 있었는데 
무려 질투도 했다.

"어디를 그렇게 연락하느냐"

라며. 핸드폰 보지 말라면서.
그렇게 술자리가 파하고 노래방에 가자는 술집 아주머니께 
도사 형님은

"얘랑 나랑 갈데가 있어" 

라고 하며 따라오겠다는 아주머니를 
필사적으로 말리면서 도망을 쳤다.
나도 덩달아 도망쳤다. 
그냥 잡혔어야 했다.
그러면서 한번 더 매우 나이브한 생각을 했다.
'둘이서 소주라도 마시면서 본격적으로 인생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구나'
왜냐하면 점집을 나선 순간부터 내가 당시 겪고 있는 고민이나
인생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형이랑 여관가서 이야기 하자" 

라면서 대화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진짜 문자 그대로 여관에서만 이야기 하자는 것일줄은 몰랐다만.
아무튼 도사형님은 나를 억지로 잡아 끌고 근처에 있는 모텔로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손을 꽉 잡았다.
그것도 잡은 담에 깍지까지 꼈다.
나는 그 때 나의 첫 깍지를 잃어버렸다.
내 로망이었던 첫 깍지의 순정을 그렇게 허무하게 잃어버렸다.
 그렇게 깍지를 잡혀서 모텔로 끌려갔는데
도사형님이 카드를 딱 주면서 나에게 한마디 했다.

"침대방으로 달라고 해"

뭔가 여기서도 좀 이상하긴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렇게까지 따라간 나도 제 정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무튼 '도사형님이 허리가 아프신가?' 하며 그렇게 끌려 올라갔다.
주인 아저씨가 

"남자분 두분이서요?" 

라고 되물었을 때 
뛰쳐 나갔어야 했는데...
그렇게 올라가니 도사형님은 일단 옷부터 훌렁 훌러 탈의하기 시작했다.
좀 보기 민망했다. 
아니, 많이 민망했다
팬티도 쫄팬티라 그 부분이 너무 잘 보였다.
요새 젊은 친구들은 '고툭튀'라는 용어를 쓰곤 하더라.
도사형님은 나에게도 

"옷부터 벗고 이야기 하자" 

고 했다.
거부했다.
절대 거부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맥주를 사오라고 시켰다.
그래서 핸드폰을 들고 나가려고 하니 앙탈을 부리기 시작했다.
핸드폰은 놓고 가라며...
 억지로 핸드폰을 사수한 다음 맥주를 사 갖고 올라가니
취기가 많이 오르신듯 횡설수설 해대기 시작했다.

"왜 나에게 마음을 열지 않느냐" 
"너는 고민을 나에게 풀지 않는다. 너의 마음을 열어라."

그래서 열어드렸다.

"지금 만나고 있는 여성분이 있는데 그 분과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지금 당면한 가장 큰 고민이다"

고 했더니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그러면서

"왜 니 이야기를 나에게 안하느냐"

며 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내가 자꾸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자 급기야 나에게

"xx야~ 나 너 안 따먹어. 내가 너 따먹는게 아니라 내가 말했지 
니가 나를 따는 거라고"

라고 한마디 하시면서 왠 문자를 보여주었다.
1587 뭐 어쩌고 하는 이상한 번호에 보낸 문자인데,
'너 미안한데 바람 안피운다' 뭐 이런식의 문자였다.
그러면서

"봐봐 나 이렇게 너 없을 때 문자도 보내놨어 너한테 나쁜 짓 안할거라고"

라고 했다.
남자가 남자를 대상으로 도대체 무엇을 따는 것일까?
나는 그냥 답답한 마음에 아는 형님이랑 술 한 잔 마시면서 
인생 이야기 좀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더군다나 신들린 형님이면 얼마나 의지가 되겠는가.
그런데 형님은 자꾸 "나를 따라" 고 하시고
형님이 나를 안 따고 내가 형님을 따야 하는 상황을 고마워해야 하다니...

도저히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어 한 마디 했다.

"저기 좀 이상한데요.
남자가 남자를 대상으로 그런 생각 자체를 품는 것, 
그 것 자체가 좀 이상하지 않나요"

하니까 계속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나 너 안 딴다니까." 
"나 바람 안 피워." 
"너 안따."
"내가 너랑 그거 하자고 여기 온 줄 아냐?"

라며 알 수 없는 이야기들만 늘어놓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발가벗은 그 형님을 강하게 밀쳐내고
목포의 모텔촌을 방황했다.
근처 허름한 작은 모텔에 들어가 방을 잠그고 밤새 잠을 못 이룬 상태로
다음날 새벽 서울로 올라왔다.



12. 계속되는 이야기 (2014)

2년이 지난 아직도 나는 솔로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더 나아지는 와중에 있다.
다이어트 했던 살은 다시 원상복구 되었고,
2년 전 샀던 옷들은 하나도 맞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한걸음씩 나아지고 있고,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 더 나아질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지난 삼십 여년을 실패만 겪었지만 서른 넷의 이 순간까지
연애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나이 서른 넷을 먹고 나서야 내 젊은 생에서 
연애가 제 일 순위가 아니게 되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금세 빠져서 허우적대는 짓은 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내 마음 속에 그려놓고 허울과 상상에 빠지는 연애는 하지 않는다.
대신에 내가 충성을 바칠 누군가를 만날 그 날을 위해,
옷과 머리와 스타일에 신경을 쓴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뮤지컬을 본다.
나는 최소한의 외면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사람을 만나겠지.
그때는 놓치지 않고 말해야지.
'사랑합니다' 라고.

사랑했다. 
내 서른 네살이여.
그리고 사랑할 것이다. 
앞으로 만날 그 사람
그리고 찌질하고 나약했지만
그 수렁같은 세월을 견디어 준 나 자신을.


---------------------------------------------------------------------

“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도사님 에피소드는 '홀ooo' 라는 연애 사이트에 한 번 이야기를 제보한 적이 있습니다.
표절이 아니고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 임을 말씀드립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