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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수능 본 3수생입니다. 칭찬해주세요ㅠㅠ
게시물ID : bestofbest_1883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수인생
추천 : 341
조회수 : 29556회
댓글수 : 53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4/12/04 18:52:42
원본글 작성시간 : 2014/12/03 12:46:21


제목 그대로 올해 시험친 3수생입니다

고3부터 지금까지.. 체감 시간은 별로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제가 벌써 3수였네요

점수가 잘 나와서 자랑하고 싶은데, 차마 친구들한테는 못하겠고..그래도 칭찬은 받고 싶어서 이렇게 올립니다.

하고 싶은 말도 있고요

조금 길고 장황한 썰을 풀어놓을까 하니, 보실분들만 봐주세요





2013년 433557 (이때는 3과목일 때여서 근현대사 국사 법과 사회)
2014년 33365 (이때는 교육과정이 바뀌어 한국사 법과 정치)

작년까지의 제 성적은, 딱 봐도 적당히 공부한게 티가 나는, 부끄러운 성적이었습니다

실제로 제 자신이 다시 돌아보아도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았었고요

재수를 끝내고 성적표를 보는데, 비용을 대주신 부모님께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그냥 점수나온대로 대학에 가라고 저에게 말씀하셨지만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저는 3수를 하겠다고 떼를 썼고, 기숙학원에 들어가겠다는 조건하에 3수를 허락받을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무슨 자격으로 저런 말을 했는지 스스로도 참 철이 없었지 싶어요



말을 저렇게 했지만, 막상 학원에 가면서도 저는 불안했습니다. 

내가 일년 더한다고 과연 더 좋은 학교에 들어갈까...그만큼 노력은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저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던 모양인지 이내 마음을 다잡고 살면서 해본적 없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기숙학원이라고 하지만 흔히들 알고 있는 대형 기숙학원이 아닌, 그냥 지방에 있을 법한 소형 기숙학원이었습니다

전교생이 다해서 한 100명 남짓 될까요...

부모님은 좀 더 크고 이름있는 학원에 들어가는게 어떻느냐 하셨지만

성적도 성적이고, 기숙사가 2인1실이면서 학원이 아담하며 포근한게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참 철없던 짓인거 같긴 한데...그래도 컨디션 관리가 참 중요하니까..ㅋ 멋대로 합리화 할래요



학생수가 적다고는 하나, 결코 만만한 학원은 아니었습니다

생각보다 좋은 성적 나오는 아이들도 많이 있었고요

무엇보다 군필자 분들이 꽤 계셨는데 하나같이 열심히들 하셔서 저도 탄력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분위기 덕분일까 4월쯤 되고, 슬슬 학원 분위기에도 익숙해 질 즈음 저는 한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거 마음 빡세게 먹고 올해는 서울대가 가자!

내 목표는 전과목 만점, 이 이름없는 학원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자! 라고요ㅋㅋㅋ

혼자서만 다짐하면 또 작심삼일로 끝날 것 같아 괜히 다른 애들에게도 떠벌떠벌하고 다녔습니다

아마 그 애들 기억속의 저는 나이값 못하는 허세꾼이라고 남아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상관없었습니다. 올해 중요한건, 내가 성공하는 것이었으니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9개월이 지나고

어느새 저는 수능 시험장에 앉아있었습니다

3번째여서 그런지, 이번에는 그렇게 긴장이 되진 않았습니다

그냥 새삼스럽게, 아 내가 3수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 정도일까요



쪼꼬렛 까먹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기어이 국어 시험지를 필 시간이 왔습니다

저는 문학부터 푸는데 첫 페이지를 피자마자 지문이 아차 관동별곡...

3년전부터 나온다 나온다 하면서 안나온 그 지문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미리 공부하지 않은 스스로를 저주하면서 한문제 한문제 풀어갔습니다

문학->비문학->화작 순서로 풀고 이제 문법을 풀 시간이 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시간이 5분 남았답니다

하나의 과장도 없이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군요

허겁지겁 마킹을 하고 푸는둥 찍는둥 겨우 시간을 맞췄습니다



시험지를 내고서 밀려오는 멘붕

주위 아이들도 모두 같은 반응이었으나 저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쉬는시간, 피지 않으려 했던 담배를 물면서 시험장을 나갈까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결과도 나오지 않았고, 다른 것을 잘보면 된다고 애써 스스로를 타이르며 수학을 응시했습니다



그 뒤로 수학은 너무 쉬웠고, 영어도 너무 쉬웠고, 한국사와 법과 정치는 기존 유형과 너무 달라 당황했으며, 일어는 문법을 모르겠었습니다

하지만 그런건 전혀 상관없었습니다

제 생각은 오직 망쳤다고 생각되는 국어시험에 치중되어있었습니다

어떡하지...부모님한테 뭐라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지...올해는 진짜 끝인데 이제 난 어쩌지..내 3년은 대체 뭐였지?

이런 생각이 내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더군요



어느새 시험은 끝나있었고, 저는 반쯤 죽은 표정으로 학원에 돌아와서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같은 방이었던 애가 같이 가채점을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국어는 70점 이상 맞으면 잘 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어찌되었든 언젠가는 부딪혀야 될 벽이라는 생각에 채점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걸 국어가 90점대가 나왔더군요

솔직히 처음에는 90점은 넘었지만 그래도 등급이 안나올테지..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저한테 오더니

어 형 국어 90점대 맞았냐고, 지금 보니깐 국어 1등급컷 90점대 초반이라고 말하더군요

기쁜 마음으로 다른 과목도 채점을 해보니 전부 2등급은 될 성적들이 나왔습니다

무엇보다도 믿을 수 없었고, 또 다른 한편 이제는 오히려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만약 마킹을 실수해서 실제로 이 점수가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하고요

그런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불안함을 지우고 싶어 여기저기 설레발을 치며 제 마음을 다스려가다가

결국 오늘 결과가 나왔습니다

2015 수능 성적표.jpg

아 여러분, 제 3년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고3, 재수때, 그리고 3수때조차 그렇게 기대받는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어디에나 있을법한 적당한 성적 나오는 중위권 학생으로

고3때 적당한 대학 갔을때 재수 한다고 했더니 선생님에게 '재수 뭣하러 하냐, 그냥 붙은 대학이나 가지'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실력도 뭣도 없었지만, 근거 없는 자존심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인생에 몇가지 예외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안된다고 할 때 그걸 이루어버리는 사람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이번에 저는 그걸 이룬 것 같아 정말 스스로가 자랑스럽습니다



조금 더 솔직히, 냉정하게 말하자면

상위권의 입장에서 보면 그냥 평범하게 잘 나온 성적이고

3수생의 성적 치고는 그다지 잘 본 것 아닌 편이라는 것, 저도 압니다 

(저보다 망치신 분들껜 죄송합니다, 하지만 여기선 꼭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어디까지나 제 기준이니 신경쓰지 말아주세요)

하지만 저로써는 지금까지 본 시험들 중에서 가장 잘 맞은 시험에 속하기에

저는 이 점수에 만족합니다

수시를 아직 기다려봐야 알지만, 건국대 정도는 갈 수 있겠죠

어떤 대학을 가던 목표했던 서울대보다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제 후회는 없습니다

나는 정말로 열심히 했으니까

이제부터는 미뤄왔던 이과 공부나, 토익, 토플, 운전면허, 여행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아 볼 생각입니다

벌써부터 가슴이 막 설레네요



베스트 구걸은 아니지만....아니 툭까놓고 말해서 베스트 구걸이 맞습니다

저는 이 글을 더 많은 사람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수능 망친 고3들 재수생들, 혹은 이제부터 수능을 준비하기 시작할 고2들

다양한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일말의 희망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노력은 그 노력을 한 사람을 절대 배신하지 않아요

설령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도 언젠가는 반드시 도움이 됩니다

실패 또한 인생에 있어 중요한 밑거름이 됩니다

저는 고3에서의 실패를 통해 자신의 자존심을 깨닫게 되었고

재수에서의 실패를 통해 각오를 다지는 법을

그리고 3수의 쓴맛에서 나름 공부를 하는 방법을(나름, 나름의, 나름!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이렇게 배웁니다. 여러분들은 더더욱 큰 가능성이 있고요

널리널리 자랑을 하고 싶구나,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솔직히 익명 자랑글이 뭐 그리 대단한 거겠어요

저는 이런 마음이 더 큽니다



이 글을 쓰다보니 문득 신승범 선생님이 정신교육(아는 사람들만 안다는ㅋ)에서 하신 말씀이 기억나네요

"나는 지금까지 십수년동안 강사 생활을 해오면서, 단 한번도 지각을 한적이 없다

지각을 하긴 커녕, 언제나 수업이 시작하기 15분 전에 교실에 들어와있다

멀리살아서 일찍오는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십수년간, 눈이 오나 비가오나 몸이 아프나 단 한번도 이 룰을 깨트린 적이 없다

단 한마디,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성실하게 살아라!"

저는 이런 삶의 자세를 존경합니다

자, 이제 제가 극복해야 할 것은 남들보다 늦었다, 라는 인식이네요

진짜 고3때 대학간 사람들 못지않게 열심히 살아서

한 5년 쯤 후에는 자신있게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회에 몇년 늦게 들어가는거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봐라!"



일부러 시간 내서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두에게 좋은 결과 있길 빌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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