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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 박사님이 해왔던 일들
게시물ID : bestofbest_1933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카우보이액슬
추천 : 293
조회수 : 19262회
댓글수 : 29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5/01/14 12:38:05
원본글 작성시간 : 2015/01/11 00:45:11
예전 역사게시판에 올려서 베오베 갔던 게시물인데

오늘 그것이 알고싶다 보고 다시 올립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마지막에 나오면서 괜히 제가 흐믓해지더군요 ㅎㅎ 

회사 직원 그 아무도 유일한 박사님 후손들이 뭘하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니 ㅎㄷㄷㄷ

유한양행을 본받는 기업들이 많아지면 우리나라는 행복한 나라가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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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국내 기업의 역사중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분 
유일한 박사님 입니다.

어릴적부터 미국 유학을 가서 혼자의 힘으로 자수성가하여 대학을 졸업,사업을 성공하고
귀국후 유한양행을 설립했던 ,애국자이자 교육자이자 기업가

그의 말도 안되는 ㅎㄷㄷ 한 일화들


-1915년 고등학생때 미식축구 선수로 활약 (아마 동양인 최초가 아니었을까 싶은)

-대학교 졸업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ge에 입사.(에디슨이 세운 회사 )

-노이즈 마케팅의 효시인 인물로 숙주나물 사업을 하던 당시 광고효과를 노리기 위해 배달차를 일부러 가게 쇼윈도에 박아버림. 
이 일이 뉴스에 보도가 되면서 자연스레 숙주나물이 홍보가 됨.숙주나물 사업 대박이 남 (이 회사가 아직도 미국에서 존재. 중국 식품 전문회사 라초이 http://www.lachoy.com/)
 
-1919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한인 자유운동으로 독립운동에 참여를 시작 
  이후 일본이 패망을 보이던 40년대 중반에 cia의 전신인 
  oss대원으로 국내 침공작전에 대비 첩보훈련을 받았음 이때 그의 나이 50

-회사사원들에게 비밀리에 이 사실을 알리고 유사시에 회사사원들과 자금으로 독립운동에 지원할 계획이었음이 후에 드러남

-유한양행을 설립후 국내 최초로 광고에 제품의 이름과 용도를 밝히는 것은 물론, 의학 박사와 약제사의 이름을 실어 제품을 증명했다.

-유한양행설립후 자신이 설립한 회사의 약임에도 일일이 자기 돈을 내고 약을 사먹었음

-1929년 국내최초로 종업원 지주제실시(사원들에게 주식을 배당하여 사원들의 회사의 주주가 되는 제도)

-친일파에 독재자인 박정희는 알아서 돈을 가져다 바치는 기업에 특혜를 주거나 국가사업에 참여시켜 로비를 안할수 없게끔 만듬
(대표적인 수혜자 현대그룹) 헌데 독립운동가 출신 사업가인 유일한이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가만둘리 없었음.
엿먹어 보라며 강도높은 세무조사를 연달아 벌였는데 탈세를 하거나 장부에 틀린것이 한군데도 없고 오히려 세금을 더 내는것이 포착. 
오히려 모범납세자로 선정 동탑산업훈장 수상

-근로기준법을 다른 기업인보다 철처히 준수함. 실제로 어느 노동자가 열약한 환경으로 노사간의 대립이 이어지자 분신자살을 하려 했을때 이상하게 여긴 유일한이 사측 협상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 있느냐 묻자 그런건 사문화라고 답했던 사측 인사 전원을 다음날 전원 해고해버렸다 ㅎㄷㄷ

-국내 최초로 전문경영인에게 기업을 물려주고 은퇴. 

-1971년 죽기전 손녀에게 등록금,딸에게(아들은 이것도 거부했었음) 유한공고 땅을 상속. 자신의 남은 전재산 401억원을 사회기증하라고 유언을 남김 (현재 싯가로 대략 7085억 정도) 

-재산을 상속받은 자식들도 자신의 전재산을 환원하고 사망 .

-그리고 오늘 드러난 ' 자신의 친척,관련된 사람들을 회사에서 물러나게 함, ㅎ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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