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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인듯 자랑아닌 자랑같은 취사병 썰.
게시물ID : bestofbest_2175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조세피난척
추천 : 369
조회수 : 34961회
댓글수 : 73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5/08/28 12:52:35
원본글 작성시간 : 2015/08/27 23: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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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저는 306보충대-xx사단 신병교육대-xxx포병 대대-알파포대로 갔습니다. 

거기서 일병이 된 후 자원으로 취사병이 되었습니다. 
독립포대 이기 때문에 주특기로 온 취사병 따위는 없었죠. 
그냥 군생활에 적응 못하는 관심사병, 흔히 말하던 삐리한 병사를 취사병 으로 보내 버리는 곳 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남에게 요리를 해 주는걸 좋아했고 군대에서 나오는 맛 없는 밥을 더 맛있게 만들어 전우들에게 대접하고 싶은 욕심에 취사반을 지원하게 되었고요.ㅋㅋㅋ
포반에서 흔히 얘기하는 A급 신병(포대 내 주특기 탑) 이었기에 포대장은 포반에 남으라고 하셨고 행보관은 이제 취사반도 바뀔 때가 되었다며 취사반으로 보내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3개월 간 장교와 부사관의 줄다리기가 있었고 저는 포대장 과의 1대1 면담을 신청하여 제 진심을 얘기해 그것이 통해 결국 취사반으로 가게 되었네요. 끼약!!  

취사반에는 제가 취사 도우미로 몇 번 내려갔을 때 정말 인간적으로 대해줬던 선임이 있었고 성격, 스타일, 취미 등 거의 모든것 에서 공감대를 느껴 정말 친구처럼(나이는 동갑) 재밌게 잘 지냈습니다.  
지금도 종종 연락하고 있어요. 
이 친구는 정육점에서 고기 썰고 있고요.ㅋㅋ  

이선임도 완전 A급 이었는데 일병휴가 때 큰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가 완전히 으스러졌고 의가 전역 하라는 권유를 거절하고 3개월의 수술과 치료를 받은 후 부대에 복귀 했습니다. 
다리에 보조기구를 차고 절뚝 거렸기 때문에 포반 생활은 불가능 하다고 판단하여 취사반으로 보내졌지요.  

사건은 일병 혹한기 행군이 있는 날 생겼습니다.  

취사반 막내였던 저는 전우들 행군이 반환점에 도착할 때 닭죽을 끓여 배달 및 배식 임무를 맡았어요. 도
착해 배식 후 전우들과 함께 그 곳에서 닭죽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제 이름을 외치며 상당히 다급하게 찾더라고요. 
아차 싶었습니다. 
닭죽에 문제가 생긴거구나 하고요. 

간부들 마저 뛰어 다니며 저를 찾았고 저는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뛰어갔습니다. 
그랬더니 저 위쪽 큰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빨리 가 보라고 하더군요.  
그 곳엔 군용 레토나 1대가 서 있었고 영문도 모른 채 그 곳으로 갔습니다. 
다가가자 젊은 간부 1명이 조수석에서 내리더니 "니가 ooo이냐?" 하더군요.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생각하면서 그 간부 모자를 보니 중령이네요.ㄷㄷㄷ;; 
속으로 '이렇게 젊은 사람이 중령이라니. 우리 대대장 하고 비교되네. 얼굴이 동안인건가?' 생각 했지요. 

근데 갑자기 디카를 꺼내더니 "야. 너 저기 가서 똑바로 서봐." 그리곤 사진을 몇방 찍습니다. 
너무 불안한 마음에 처음 입을 열었습니다. 
"근데 무슨 일 이십니까? 혹시 제가 무슨 잘못을 한 겁니까?" 했더니 그냥 실실 웃으면서 대답을 안 하시더라고요. 

순간 짚이는 구석이 있었어요.  

아버지 ㅂㄹ친구분이 파워있는 곳에 근무 하시는데 계급도 높으신 분이 있거든요. 

"혹시 저희 아버지가 보내신 겁니까?" 했더니.
"니네 아빠? 니네 아빠가 누군데?" 그래서.
"아..아닙니다." 했습니다. 

이번엔 수첩을 꺼내 이것저것 물어 보더군요. 
"너 컴퓨터 좀 하냐?" 
"잘 못 합니다." 
"너 pc방에서 일 했었다며?" 
"스타크래프트만 잘 합니다." 
"ㅋㅋㅋㅋㅋ. 취사반엔 왜 갔어? 니가 가고 싶어서 간거야?" 
"네. 그렇습니다." 
"요리 잘해?" 
"좋아하고 더 배우고 싶습니다." 
"그래? 그람 사단장님 관사로 가자." 
"???????????" "싫어?" 
"근데 진짜 저희 아버지 아시는 분 아닙니까?" 
"아. 이 새끼가 아니라니까 자꾸.ㅋㅋㅋ" 
"사단장님 식사를 직접 하는겁니까?" 
"아니. 가면 밥하는 아줌마들 따로 있어." 
"그럼. 저는 뭐 합니까?" 
"넌 그냥 있다가 아줌마들 하고 같이 시장가서 밑반찬이나 사다가 그릇에 예쁘게 담으면 돼." 
"아..그게 끝 입니까?" 
"응." 
"죄송한데. 안 가겠습니다." 
"뭐? 왜?" 
"저는 요리를 더 배우고 싶고 병사들한테 요리를 해주고 싶어서 취사반에 간 겁니다." 
"이새끼.ㅋㅋㅋ야.임마.사단장님 관사 나오면 나중에 호텔 같은데로 가고 사단장님 이랑 친해지면 사회 나가서도 탄탄대로야." 
"아..죄송합니다." 
"이거 완전 꼴통 이구만.ㅋㅋㅋㅋ" 
"죄송합니다." 
"그래. 뭐 평양 감사도 지가 싫으면 그만이지. 알겠다. 군생활 잘하고 아버지 만나면 안부나 전해줘." 
"??????아버지 아시는 분 맞습니까?" 
"간다~밥이나 마저 먹어라.ㅋㅋㅋ" 
그러더니 차를 타고 갔습니다. 

 간 후에도 상황 정리가 안 되고 혼란이..ㅠㅠ 
다시 닭죽 먹으러 가자 포대장님을 비롯한 여러 간부들이 몰려와 이것저것 캐물었고 전 있는 사실 그대로 얘기 했습니다. 
간부들 얘기로는 아까 그 중령이 사단 감찰반 어쩌고 하던데. 
그리고 저는 다시 차를 타고 부대로 복귀했고 밤이 되어서야 행군을 마치고 전우들이 연병장으로 모이더군요.

포대장이 사열을 하는데 거기서 제 얘기를 딱!! 
대충 "우리 ooo이가 말이야. 사단에서 좋은 곳으로 데려간다고 했는데도 말이야. 단칼에 거절하고 말이야. 우리 포대와 전우들곁에 남기로 했단 말이야. 포대장은 이런게 바로 진정한 애국심이고 끈끈한 전우애라고 생각한단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다같이 박수!!" 
실제 포대장 말투가 저럼.ㅋㅋㅋㅋ  

헐....일병 나부랭이가 이런 얘기를 듣고 박수를 받는다는게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얼굴은 빨개지고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따졌습니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제가 얼마나 쪽 팔렸는지 아냐고. 다시는 그런 부탁 같은거 하지 말라고.  
아버지는 오히려 저한테 화를 내시더라고요. 
너 생각해서 어렵게 친구한테 부탁했는데 건방지게 거절했다고. 
그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줄 아냐고.  
결국 말싸움만 하다가 끊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13년 가까이 지난 얼마 전 아버지와 친구들이 점심 먹는다며 저희 가게로 찾아 왔는데. 
그 친구(지금은 예비역)분도 같이 왔더라고요.ㅋㅋㅋ 
그리고 그 때 제 얘기를 하시면서 아버지 친구가 제 칭찬 엄청 하더라고요.ㅋㅋㅋㅋㅋ  

그 때 당시는 거절 당한게 조금은 서운했으나 생각해 보니 도움 없이 혼자서 군생활을 해 나가려는 모습이 너무 기특했다고. 
진짜 남자다운 새끼구나 생각했다고. 

사실 주변에서 그런 부탁이나 청탁 엄청 들어오는데 솔직히 보기 안 좋았다고 하시더군요. 
근데 저희 아버지는 워낙 친해서 거절 안하고 도움 주려고 했는데 막상 아들새끼 한테 보기좋게 거절 당했다며 호탕하게 웃으시네요.ㅋㅋㅋ  

사실 저희 형은 처음 간 자대에서 (물론 구타, 가혹행위가 심하긴 했지만) 적응 못하고 아버지한테 도와달라는 편지 써서 아버지가 그 친구분한테 편지 내용을 얘기했고 얼마 뒤 다른 부대로 전출시켜 줬거든요. 
구타, 가혹행위 간부,병사들 싹 다 조사해서 영창 갔고요. 
생각해 보면 그 아저씨도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그 자리까지 가신건데 일반 병사들 2년 군생활 하면서 힘들다고 부모님한테 얘기해서 또 자기한테 부탁하게 만들고. 
별로 안좋게 보였겠지요.  

무튼 저는 그렇게 병사들의 어머니로 불리며 새로운 메뉴 개발, 골치인 쌀국수 비빔국수로 바꿔서 처리하기, 삶은계란 계란말이로 대신해서 인기메뉴 만들기 등으로 사단에서 까지 벤치마킹 하러 오고 표창장과 포상휴가 등 정말 의미있고 즐거운 취사병 임무를 수행하고 전역 했습니다.
물론 주특기는 여전히 포병이고요.ㅋㅋㅋㅋ  

군대에서 배우고 연구하고 경험했던 요리를 바탕으로 현재 동네에서 작은 실내 포장마차를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친구분이 가시면서 그러더라고요. 
oo이 너는 분명 잘 할거라고.  
그 때 병사들 생각하던 마음으로 손님한테 진심으로 대하라고. 

 뿌듯 했습니다.ㅋㅋ 

 끝-
출처 02군번 취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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