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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베 간 '자지가 사라졌다' 를 읽고
게시물ID : bestofbest_2199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카잔차키스
추천 : 277
조회수 : 51547회
댓글수 : 66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5/10/02 14:52:18
원본글 작성시간 : 2015/10/01 23: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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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베오베를 간 '자지가 사라졌다' 라는 놀라운 소설을 접하였습니다.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19889

글을 정독하고 몇 가지 관점에서 느낌을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하철에서 뻘글을 양산하기에 이르렀고...완성하였습니다..;;

텍스트를 읽는 것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고, 오로지 관점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관점 안에서도 정답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교과서적인 해석을 하려 한 것은 절대 아니며 아~ 이렇게 읽은 사람도 있구나 하면서 그저 재미로 봐주셨으면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독자반응 비평과 구조주의적 비평에서도 말할 것이 많지만...쓰다보니 엄청난 양의 텍스트가 나올 것 같기에, 

마르크스주의적 비평, 정신분석학적 비평의 두 가지로만 생각하여 적어보았습니다. 왜 했는지는...저도 모릅니다....ㅋㅋㅋ

좋은 글을 써 주시고 생각할 것들을 던져주신 '자지가 사라졌다' 저자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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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마르크스주의적 비평


1.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의 피해자이자 대표자

문학이 현실적 환경에서 생성되고, 그러한 환경들에 반응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본 소설은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게끔 독자를 유도한다고 볼 수 있다.

계약직 회사원인 박씨는 자신의 자지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출근시간에 늦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손으로 더듬대며 확인하느라 5분을 허비했다’
'아침으로 항상 먹던 삼각김밥을 생략했다. 오늘 먹으려던 김밥을 내일로 미뤄야할지, 아니면 내일 메뉴로 넘어가야 할지를 전철에서 고민해 봤다’ 

위 독백으로 보아 주인공은 자지가 사라진 것이 아닌 자신의 일상적인 출근에 방해를 받은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의 개인적 삶은 사라지고, 오로지 회사의 정시출근만이 그의 관심 대상일 뿐이다.

그는 또한 실적에 따른 강압적 근무환경에 시달리고 있기에, 자신의 돈을 회사 통장에 넣어야 한다. 이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수반되는 실적 지상주의의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이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옳지 않은 이데올로기는 억압적인 의제들을 부추기면서, 이것이야말로 세계를 이해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사람들의 동의를 이끌어내려 한다. 가장 성공적인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로 여겨지지 않으며 그것에 동조하는 사람들에 의해 자연스러운 세계 인식으로 생각된다는 주장으로 볼 때, 주인공은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철저하게 이용당하는 인물인 것이다.

'나는 바지를 벗은 채로 사직서와 또 월급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위로금 수령증에 서명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3년을 일한 퇴직금은 없었다. 모든 근로계약은 6개월에 한 번 갱신이 원칙이었다.'

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되도록 만든 회사의 인사 구조 또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부정적인 측면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으로 시작되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보아도, 그는 이데올로기에 조종당하는 사회 구성원의 대표자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감옥에서 TV를 보는 에피소드 또한 이러한 주장을 강화시킨다. 

'전문가 패널로 나온 백발의 변호사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 귀족노조의 불법파업에 관한 격렬한 비난이었다. 난 그걸 가만히 보다가 이내 채널을 돌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구성원으로서, 현 사회에 저항할 유일한 방법은 저항 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패널의 코멘트에 분노하지 않는다. 그는 불행하게도, 혹은 당연스럽게도 자신이 사회경제적 계급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2. 인간 존재의 상품화

상품화란 사람이나 물건을 교환가치 또는 교환가치 기호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그곳에 세워진 온갖 종류의 고급 수입차들을 둘러봤다. (중략) 내가 평소에 딱히 열등감에 시달리는 인간이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가치있는 물건들이 나와 똑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 즐거워졌다. 그것은 이상하리만치 배설의 쾌감에 가까운 즐거움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열등감에 시달리는 인간이라고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물과 비교함으로써 인간존재를 사물로 치환한다. 이러한 상품화는 김이사가 주인공에게 관계?를 맺은 후 주는 20만원에서도 나타난다.

'샤워를 하고 나온 그녀가 내게 20만원 짜리 수표 두 장을 건넸다.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수표를 받아들었다.'

화폐경제가 생긴 이래로 매춘굴이 생겨난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으며, 그것은 성적 대상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인공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돈을 받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 박씨는 자신이 교환가치의 대상이라는 것을 쉽게 인정한다. 이 또한 자본주의가 인간 정신에 미친 악영향이라 볼 수 있다.

3. 공공연한 사회경제적 계급

민주주의에서 ‘민주’라는 것이, 우리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이 아님은 명백한 사실이다. 경제적 조건 속에서 경제 권력은 언제나 사회적, 정치적 권력의 구조를 결정지었으며, 자본주의는 이러한 구조를 강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한다.

'서 과장은 나보다 두 살이 어린 김 이사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라는 대사에서, 독자들은 경제적 계급이 곧 사회적 권력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다. 이 사실은 이어지는 대사에서 즉각적으로 강화된다.

 '어른 앞인데 뒤를 돌아서 벗어야지! 사회 생활이 아주 기본이 안 돼 있어!'

자신보다 두 살이 어린 김 이사라고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어른’ 앞에서 뒤돌아 벗어야 한다며 호통을 받는다. 이처럼 소설에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경제적 계급은 연령마저 초월한다.

결국 본 소설은 ‘자지’가 사라지는 에피소드를 통해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현대 사회에서 작동하고 있으며, 그 부정적 영향은 무엇인지를 독자에게 환기시킨다.



II.정신분석 비평

본 단편의 주인공은 정신분석 비평을 시도하기에 적합한 인물이다. 특히 불안정한 자기감각, 죽음에 대한 충동과 두려움, 성욕, 거세불안에 대한 직접적인 독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거세의 상징적 의미와 남근 선망

마르크스주의적 비평에서도 말했듯이, 주인공은 경제 권력을 획득하지 못했기에 사회-정치권력 또한 갖고 있지 못한 인물이다. 무력한 위치로 전락해버린 주인공을 상징하는 것은 바로 ‘자지’가 사라진 ‘거세’이다. 
거세 불안은 결국 여성이 속한(가부장적 체제 하에서의 여성을 의미하는) 무력한 위치로 전락하는 데 대한 남성의 두려움이다. 주인공은 이미 사회경제적 권력을 잃어버린지 오래인 것으로 추측된다. 힘과 권력의 상징인 ‘자지’가 사라졌음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말이다. 
이 단어가 에로티시즘을 암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오히려 적나라한 단어 '자지'의 잦은 구사는 사회적으로 ‘고자’가 된 그를 강화하는 텍스트이다. 

작품에서 주인공과 대비되는 인물은 김 이사이다. 그녀는 여성이지만 사회경제적 권력을 획득한 인물로 묘사된다. ‘남근 선망’은 쉽게 말해 ‘권력 선망’으로 읽을 수 있는데, 작품 또한 이러한 텍스트를 강화한다.

'그녀는 경험많은 야구감독이 선수를 다루듯, 구체적이고 명확한 지시로 나를 움직였다.'
'그녀는 짐승처럼 크게 울부짖고는 이내 축 늘어졌다. 잠시 후 그녀는 다시 일어나, 내 여백에 코를 처박았고,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하며 그녀는 세 번을 더 울부짖었다.'

둘 사이에 일어난(혹은 김 이사의 일방적 지시로 인해 일어난) 에로티시즘적 묘사에서, 김 이사는 흡사 남성처럼 성행위를 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남근 선망’은 ‘권력 선망’ 으로 이어진 인과관계를 넘어서, 텍스트는 ‘권력’이 바로 ‘남근’ 이라는 도식을 강화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또각또각’하는 하이힐은 ‘달리지 못하는 여성’ 이라는 하이힐의 억압적 관념에서 벗어나 ‘여성의 남근적 상징물’로 역전을 꾀한다. 김 이사의 '손톱을 길게 기른 손가락' 또한 사회적으로 획득된 남근을 암시한다.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 하에서 남성과 여성의 권위 획득은 전통적인 성적 차별에 기인한 ‘원초적 힘’이 아닌 '사회적 권력’에 의해 획득될 수 밖에 없다.

'김 이사가 또각또각-하며 다가오더니 내 앞에 쭈그렸다.'




2. 불안의 요소

현대 사회에서 부각되는 핵심 문제는 바로 불안이다. 주인공은 '낮은 자부심'과 '불안정한 자기감각’이라는 불안의 요소가 병존하는 상태의 인물로 진단할 수 있다.

낮은 자부심은 삶에 주어지는 어떠한 보상도 누릴 자격도 없다는 생각과 연관되며, 실제로 종종 어떤 식으로든 살아가며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자신을 여기게 된다.
얼마 안되는 위로금만 받고도 당연하다고 여기며, 이것으로 끝난 걸 다행으로 알라는 김 이사의 말에 시종일관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주인공. 그리고 20만원을 받고(그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한 대가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그의 모습은 낮은 자부심의 전형을 보여준다.

두번째는 불안정한 자기감각인데, 이는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인지하는 감각을 지속시킬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주인공의 불안정한 자기감각은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독백으로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난 정말 오만했구나. 내겐 허무조차도, 여백조차도 없었던 거구나. 비어 있는 것조차도 나는 갖지 못했었구나. 정말 빈 자리는 차라리 주변을 그릇으로라도 만들어줄 수 있겠지, 그러나 내겐 정말 아무 것도 없었던 거였구나. 없는 것 조차도 없었구나.'

하지만 불안은 결국 억압된 것의 귀환을 수반하게 된다. 불안해 하는 이유는 억압한 무엇인가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으며, 나는 그것을 계속 억압한 채로 두고 싶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마지막에 이르러서 사회적으로 거세되고 억압되었던 ‘남근’을 귀환시키며 김 이사에게 ‘사정'한다.

많은 에로티시즘적 묘사가 있었으나, 마지막 장면만이 주인공이 성욕을 느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성욕이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부분이라 단언하였다.
“성욕으로 표현하거나 행하는 것의 의식적, 무의식적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남근의 귀환과 동시에 일어난, 그러나 일시적일 수 밖에 없는 정체성의 귀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체성의 귀환과 동시에 주인공은 사형(죽음)을 확정받을 수 밖에 없다.

결국 본 텍스트는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 억압된 인간 개인의 정체성은 어떠한 비극적 결과를 맞이하는지(정체성을 찾든 못찾든)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려 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출처 대부분은 머릿속. 몇몇 틀은 <비평 이론의 모든 것>이라는 도서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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